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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Apr 25. 2024

영국에 오기만 하면 영어가 줄줄 나올 거라 생각했어요

"너한테 맡기려다 내 부서 쫄따구한테 그냥 시켰어."


친구의 미니홈피를 방문했다가 또 다른 친구인 A에게서 들은 말이다.


직장을 다니며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A는 영문 초록을 두고 고민하던 중 내 존재를 알게 된 모양이다. 내심 나의 도움을 받았으면 하면서도 당사자인 나에게가 아닌 공통의 친구, 즉 내가 방문했던 홈피 주인장에게 넌지시 글을 남겼더랬다. 


"숙진이에게 내 초록 번역 맡겨볼까?"


나도,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는 글이었다. 이를 읽고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자신은 소극적인 태도로 나온 이유는 모르나, A의 의도를 가늠할 겨를도 없이 이미 번역을 끝냈음을 알려왔다.


나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여러모로 마음이 답답했다. A는 해외 거주자와 번역 자체에 대해 오해하는 듯해서다.


우선, A는 내가 영국에 거주한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영어를 전공하고 번역가로 일한다는 사실은 모른다는 점이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뒤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다가 우연히 친구 홈피에서 만나 서로 근황만 전했기 때문이다. 즉, 영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영어 번역을 맡기려 한 셈이다.


"영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영어를 잘할 테고 그럼 논문 초록 정도는 번역하겠지."


이런 생각으로 나에게 요청하려 하지 않았을까. 


다른 답답한 점은, 설령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전공과 동떨어진 분야의 문서를 그것도 논문 초록을 번역하는 건 무리라는 사실을 A가 모른다는 점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가 따로 존재하듯, 번역가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구분해 놓고 일을 한다.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나 전공과 무관한 분야라면 내용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텐데 번역을 어떻게 하며, 한 개인의 독창적 연구 결과물의 핵심 내용이 담긴 초록이라면 더 말해서 무엇하겠나. 



"영국에 오기만 하면 영어가 줄줄 나올 거라 생각했어요."


영국에서 1년간 안식년을 보내는 남편을 따라 영국에 온 B의 말이다.


악명 높은 영국 날씨를 크게 걱정했건만, 거주하는 1년 동안 이상 기후(?)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날씨는 화창했고, 집 주변이 사계절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이는 풍경이 연일 계속되었다. 또한, 영화에서만 보던 고풍스러운 영국식 주택과 화려한 정원까지 B의 마음을 사로잡은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면에서의 만족과는 달리, 기대했던 영어 실력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대문만 열고 나가면 길거리, 공원, 마트까지 온통 영국 사람뿐이니 어디에서나 영어를 활용할 기회가 무궁무진하리라... 누구 하나 붙들고 말을 걸고, 친구로 삼으면 공짜로 어학원에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지...


현실은 전혀 달랐다. 


간단히 생각해 보라. 한국에서 한국어로 말하고 싶다는 이유로 아무나 붙들고 길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럴 용기가 있는가? 


영국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말을 걸어오는 낯선 사람을 아무런 경계 없이 맞아들이고 길게 대화 상대가 되어 줄 정도로 붙임성 좋고 인내심까지 강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흔하지 않다. 안면이 있는 사이라 해도 큰 차이가 없다. 언어 실력을 향상해 보겠다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이에게 시간을 내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데, 언어마저 서툴다면 어떨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에 말을 느리게 하는 사람, 외국어 억양이 섞인 사람, 천천히 되풀이해서 말해줘야 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아무리 인내심 강한 사람이라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영국인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상대의 말을 차근히 들어주는 편이다. 적어도 내가 만난 영국인은 그러했다. 그렇지만 이들과 친구가 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다수의 사람이 모인 공간에서 유독 나 혼자만 투명 인간 취급하는 사람도 있고, 영국 문화를 잘못 이해하거나 특정 단어를 엉뚱하게 발음한다는 이유로 나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인을 친구로 사귀지 말고 영국에서 영어 실력을 향상하겠다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소리가 결코 아니다. B의 경우, 영어에 대한 기대만 컸지 학원을 다니거나 개인 강습을 받거나 사교 모임을 가지는 등 실질적인 영어 공부를 위한 노력에는 시간을 쏟지 않았다.



"제이슨이랑 엄마, 단 둘만 있으면 대화도 안 통하고 뭔 재미가 있겠어."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두고 C가 하는 말이다.


부모가 모두 인도 출신으로 결혼 직후 영국에 와서 살다가 C를 낳았다고 한다. 전후 사정을 따져보면 이들이 영국에 정착한 시기는 적어도 40년은 된다. 반면, C는 자신을 철저히 영국인이라 여기는 사람으로 결혼도 영국인과 했다.


반세기 가까이 영국에 살면서도 어머니가 영어를 배우려 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큰 불편함 없이 살았다고 한다. 주변에 인도 출신 이민자가 많기도 하고 처음에는 남편의 도움을 받고 지금은 딸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대규모 한인 타운이 형성된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비록 타국에 살지만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만 주로 상대하며 지내다 보니 굳이 현지 언어를 익히지 않아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해외 거주자라고 해서 모두 현지 언어가 능통한 건 아니다. 현지 생존에 필요한 언어는 구사할 수 있겠지만, 타인의 논문 초록을 번역할 정도로 다방면의 학식과 언어 능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해외에 나간다고 외국어가 저절로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 해외에 나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저절로' 익힐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 앞서 말한 것처럼 힘들긴 하지만 - 이 방법도 때론 필요하고,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든 말든, 나를 무시하는 인간이 있든 말든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돈은 좀 들더라도 전문 강사가 있는 학원을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 


* 글에 언급된 이름은 물론 이니셜까지 모두 가명이며, 소개된 각 일화도 약간씩 각색되었습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Jopwell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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