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을 마친 교장이 학생에게 상장을 건네고 악수를 청했다.
청중들 사이에 있을 부모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교장과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한 뒤, 해당 학생은 무대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수 소리가 이어지고 다음 수상자가 호명되었다.
아들의 초등학교에서 열린 조회 겸 시상식 자리였다. 수상자 명단에 오른 학생의 부모도 시상식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초대되었다.
다들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는데 나 혼자만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나만 이 상황이 이해 안 되는 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처럼 강당 뒤편 벽면을 따라 두 줄로 빽빽하게 배치된 의자에 앉은 학부모도...
내 앞으로 한 발짝 정도의 여유만 남겨놓고 강당 바닥을 가득 채우고 앉은 학생도...
저 멀리 무대 아래 특별석에 앉은 교감과 그 주변을 둘러싼 교직원까지...
다들 진지한 표정이었다.
고양이를 구조하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요 이웃을 도와주다 다친 것도 아니다. 불편한 몸으로 학교를 다니면서도 타인에게 모범을 보였다는 등 그럴싸한 이유도 없었다. 단순히 팔을 다친 상태에서 학생의 본분을 했을 뿐이지 않은가. 누구나 학창 시절 기억 속에 떠올릴 만한 급우의 모습이요 여느 학교에서나 마주칠 법한 인물이다. 격려는 해줄 만 하지만 굳이 상까지 수여할 정도인가?
이날 저녁, 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의 반응에 놀랐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 박수를 쳤던 이유가 있구나.
아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조심히 건네는 내 말에도 일리가 있다 여기는 표정이었다.
다시...
같은 날 시상식으로 돌아가자.
깁스상을 받은 학생에 이어 새롭게 호명된 학생이 한 명씩 무대로 올라가 예의 학생처럼 교장으로부터 상장을 받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 되풀이되었다.
이런 식으로 큰 반향 없이 조용히 끝나겠거니 했던 시상식 분위기가 갑자기 돌변했다.
상장에 적힌 시상 내역을 낭독하던 교장 선생님을 시작으로, 이를 묵묵히 듣고 있던 학생과 학부모까지 한꺼번에 대놓고 웃음을 터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깁스상을 받은 학생에게는 당연하다는 듯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이 말이다.
다름 아닌 내 아들이 상을 받을 때다.
학교에서 몇 주간 정치 수업과 토론을 실시하던 때다.
모든 초등학교의 정규 교육 과정인지 혹은 다가올 총선에 맞춘 일회성 행사인지는 모르지만, 아들이 이런 자리에서 맹활약한 건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BBC 뉴스를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들은, 선거철 집으로 배송되는 후보자들의 유인물을 꼼꼼히 챙겨보며 유권자인 부모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우연히 들른 도서관에서 상담 중인 남성을 발견하고는 우리 지역 국회의원임을 알아차렸다. 어디, 현직 국회의원뿐이랴. 길을 걷다가 동네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지역 시의원 후보자도 알아볼 정도다. 이게 초딩이란 말인가.
영국인 중에는 감탄하리만치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이도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매일같이 언론에 공개되는 얼굴임에도 각 당의 대표도 구별 못할 만큼 무관심한 이도 있다. 하물며, 어린이에게 정치라는 주제는 어렵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이 정치 토론에 참여하여 상까지 받은 사실이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나 보다. 아들의 학교에서는 전례 없는 상인 셈이다.
물론...
영국의 초등학생에게 주어지는 상에는 전례가 필요 없다.
앞서 나온 상장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학사 일정에 따라 수상 내역은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 남이사 웃건 말건 아들은 당당했다.
나름 칭찬해 줄 업적임에도 그토록 웃긴 건지 솔직히 나로서는 와닿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한 일도 아니었다.
진짜 웃을만한 상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 4학년의 마지막 날, 아들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장이다.
수상 내역이 무어냐 하면...
Last to leave (then needs the toilet) is awarded to
교실에 가장 늦게까지 남았다가 막판에 화장실 가는 상
이를 받아 들고 두 모자가 크게 웃었다.
아들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채비를 할 때마다 급우들에 비해 굼뜨는 성향이 있었다. 단순히 행동이 느려서라기보다는 너무 신중하게 소지품을 챙겨서라고 봐야 한다. 복도 옷걸이에 걸린 모자와 사물함에 들어간 도시락 가방을 챙기고 선생님에게 받은 안내문과 미술 시간에 만든 작품도 가져가야 하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 갈 준비가 느려지고 다들 빠져나간 뒤 썰렁해질 무렵 교실문을 나서곤 했다.
참, 그게 끝이 아니지.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아들이 한 마디 던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엄마, 화장실 급하다요'라고 외치는 아들 때문에 이미 걸어온 하굣길을 두 모자가 되돌아가는 일을 반복한 경험이 있다.
하교 시간의 우왕좌왕에 지친 내가 교실 앞에서 '화장실 다녀오렴'이라고 아들에게 선수를 치곤 했는데 이런 우리 두 모자의 과거가 이번 수상에 한몫했으리라.
5학년이 되어서도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Mr 'can I go on the laptops?'
노트북에서 검색해도 돼요? 상
이 무렵 기본 컴퓨터 사용법을 익힌 뒤 코딩에까지 재미를 붙인 아들은 수업 도중 필요하다 싶으면 선생님에게 건의해 학급에 비치된 노트북으로 자료를 검색해 조별 과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이제 막 컴퓨터 기본 기술을 익히느라 자판도 제대로 못 치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건 당연하다. 아들의 이런 열정이 되려 주변 사람을 귀찮게 한 건 아닐까 의심도 되었다.
참...
같은 날, 아들의 반 친구가 받은 상을 떠올려 보니 그다지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Nataliya Vaitkevich on Pexels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