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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Sep 14. 2020

아이와 안전거리두기

자립할 수 있는 날을 위한 예행연습


안전거리가 있어야

우리가 성장할 수 있다


지난달부터 아이가 말문이 조금 트이면서 가족과 타인의 만남을 가진 후 헤어질 때, 그 사람이 어디 갔는지 묻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고 있다. 늘 내 품에 있는 자식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행방을 묻다니. “아빠 어디 갔지”, “할비 할미 어디 갔지”, “이모(엄마 친구) 어디 갔지” 또렷한 문장으로 물어보는 건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로 눈빛과 손짓, 그들의 호칭을 대며 내게 물어본다. 그리고 헤어지기 아쉽다고 울상을 짓는 일도 빈번해졌다.


그럴 때마다 섭섭한 마음이 앞섰다. 인성이 형성되는 만 세돌이 될 때까지 엄마 품에서 자라야만 아이의 정서적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는 지론을 가졌는데. 생각보다 아이는 엄마 없이도 잘 지내(었)고, 가족과 타인에게 이쁨 받는 방법을 잘 알고 즐기는 아이였다. 열 달간 내 몸에 있었기에 내 품에만 두려는 이기적인 소유 본능이...아이의 사회적 관계를 확장시키는데 부정적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우려스럽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 없이 잘 지내왔었다. 아이는 너무나 순하고 웃음도 많고 건강한 편이라 잔병치레 없이 수월하게 돌을 맞았다. 그런데 돌이 지날 무렵, 활동성이 눈에 띄고 높아져서 아이의 움직임에 쫓아가느라 내 몸과 마음은 늘 휘청거렸다. 육아에 집중할수록 나의 체력과 인내는 밑바닥에 다다랐다. 도저히 아이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오자, 온몸에서 불평들이 늘어났다. 내 마음의 부정적 감정들은 요동치며 매일 휴식을 원했다.


아이와 ‘안전거리 필요하다는  느꼈다.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육아는 말 그대로 장기전이라 엄마 개인 시간을 가지며 엄마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시간은 꼭 필요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엄마라서 내 개인 시간을 원하는 엄마라서 매우 운이 좋았다. 자연스레 아이와 나 사이에 시공간적 ‘거리두기’가 생겨났다.그 개인 시간에  엄마는 남은 에너지를 고갈하지 않게 충전할 수 있었다.


누구나 각자의 삶을 가지고 있고 그 삶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점차 아이는 2차 성징으로 물리적으로 나와 거리를 두게 되고, 성인이 되는 시기엔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해야만 할 때가 다가올 것이다. 부모의 마음은 혼란스러울 아이를 위해 그 과정을 대신 겪어주고 싶지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곁에서서 응원하고 지켜보는 조력자 역할 뿐이다. 그렇게... 세상을 버텨가는 힘은 각자에게 가지고 있다고 본다.

오늘 모닝리추얼로 아침 산책하며. 운동이 필요했던 나는 열심히 걸었고, 낮잠이 필요한 아이는 유모차에서 평화로이 잠들었다. 우리는 안전거리를 지키며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출산과 육아로

무뎌진 ‘안전거리’ 되찾기


너무나 가깝고 친밀한 거리에 다다르면, 되려 아픔과 상처를 주는 관계를 빈번하게 경험했었다. 가족 간에도 타인에게도. 아주 친밀한 관계일수록 '안전거리'  필요했다. ‘내가 너를  안다는 시선’.  시선은 어찌 보면 상대를 평가하는 나만의 잣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과 성향은 변할 수 없을지라도, 어떤 사안에 대한 마음은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빈번했기에.


타고나게 독립적인 성향인지라 누구에게나 ‘안전거리’를 원했고, 20대엔 가족과 타인에 대해 ‘안전거리’를 철저히 지켰다. ‘나 홀로의 시간’을 많이 지내며 나에 대해 탐색하는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그 덕에 ‘혼자노는 방법에 도가 트게 된 사람’이 되었다.


이직이 잦아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반년 간 경력단절이 갑자기 찾아올 때도 내 삶에서 집중해서 살 수 있는 ‘안전거리’를 만들어놓았기에 그 시간들이 모여 30대의 진로를 결정해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가 되어보니 모두의 삶에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오지랖이 늘고 타인의 삶에 언질도 많아지고 ‘안전거리’를 지키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출산과 육아로 내가 겪은 모든 아픔과 고생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내 아픔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 아픔을 들어주지 않은 사람을 소외시키는. 애초 내가 잘 지키는 나의 ‘안전거리’는 무뎌져 갔다. 아이에게도 말이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모든 사물엔 거리를 두고볼 때와 다른 흠이 보일 때가 많다. 참 아름다운 것에도.


5년 전, 저녁 약속을 기다리며 슈어 매거진 10월호에서 마주한 배우 지진희 인터뷰 문구를 오늘 우연히 들춰보았다. 그가 말하는 결혼생활에서 사랑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안전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상대를 너무 많이 알려하지 않고 자연스레 조금씩 알아보는 . 서로의 몰랐던 부분을 알고 여러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는 . 살아가는 과정이기에 서로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 모든 관계에서 통용되는 지침일지도 모른다. 원체 잘 지키던 ‘안전거리’를나를 위해 아이를 위해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 지켜봐야겠다.


슈어 :
나이가 들수록 사랑이라는 감정에 무뎌지기도 해요.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나요.

지진희:  
제 생각으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노력은 상대방을 다 알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상대에 대해 다 알려고 하면 시간도 부족하고 자기 생활이 없어요. 그리고 너무 많은 부분을 다 알아버리면 그때부터 상대가 재미가 없고 지겨워지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조금씩 알게 되는 게 좋아요. 서로에게 몰랐던 면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사랑의 감정도 끊임없이 생겨요. 그게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이 아닐까 해요.  

슈어:
실제로는 가정적인 분으로 유명하죠.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 가정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가장 잘 사는 삶 같다"라고 말한 바 있고요.

지진희 :
쉽지 않은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굉장히 존경스럽고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다들 절제하고 노력하면서 살잖아요. 망가질 때도 있지만 가족들이 껴안아주고 다시 노력하고. 이 모든 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각자의 삶을 가지고 있고
그 삶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점차 아이는 2차 성징으로 물리적으로
나와 거리를 두게 되고,
성인이 되는 시기엔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해야만 할 때가 다가올 것이다.


산책 중에 만난 자연풍경이 그림같았던 9월 13일 일요일 오전. 1시간 넘게 산책하며 ‘안전거리’에 대한 짧은 소견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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