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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Feb 22. 2019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의 나이는 내게 시계가 되었다


 '내가 환갑일 때 해품이는 스물여덟 살이겠지.'

아이를 가지고 난 뒤 늘 버릇처럼 아이와 나의 나이 차이를 계산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부모님과 아이의 나이를 셈하기도 했다.


 '어라..... 내가 60대가 되면, 부모님의 나이는 아흔.'

내 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부모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부모님과 마주할 수 있는 기간이 기껏해야 30-40년이 최대인 것이다. 열아홉에 부모님 품을 떠나 지금까지 객지 생활을 하며,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이 성인이 되면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마음가짐이 180도로 달라졌다. 부모님 품에 떠나봐야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품은 온실 속 화초 같았던 삶이었고, 세상은 매우 각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괜스레 열심히 버텨왔던 20대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은 겪어본 경험만큼 가치관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대에 지금과 다른 행로로 걷고 있었다면, 난 어떤 삶을 택하고 살았을지 가끔 궁금하긴 하다만... 다시 열아홉으로 돌아가면, 자신은 없다. 그간 앞만 바라보며 걸어왔기에 다시 그 시간에 돌아가 버틸 힘이 없었다. 그렇게 버텼던 15년의 객지 생활은 나를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병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의 깊이는 배가 되기도 했다.


  깊이를 채울  있었던 것은 임신 막달과 출산  백일의 시간이었다.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다가온 시간이었다. 되찾고 싶었던 시간을 아이의 출생으로 선물 받은 것이다. 아이 덕에 간곡히 바라던 시간이 생겼다. 내 몸을 조리하고 다시 세상과 맞닿으며 살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고향에서 부모님과 지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든 시간을 지내보기 위해서 그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추억을 만든다. 굳이 사진을 들춰보지 않아도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눈을 감으면 그때로 돌아가는 꿈을 꿀 수 있는... 추억의 시간여행. 영원히 잊지 못할 꿈을 아이가 만들어줬다.


 만약 내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10대 유년시절이 아닐까 싶다. 아이 옆에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니 부모님 얼굴에 세월이 비껴갈 수 없었다. 지금보다 더 젊은 부모님을 잠시 마주하며 말없이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에 경청하며 ‘착한 딸’이 되고 싶다. 지금도 가능하지만, 부모님 말씀을 다 따르기에 내 머리가 너무나 커 버렸다. 지금 남은 시간이라도 건강하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아이와 새롭게 만들 ‘미래’를 계획하며 충실히 살아야 한다. 부모님의 시계는  나이가  것처럼, 아이의 나이는 내게 시계가 되었다. 아이의 생일이  삶의 객관적인 수치가 되어줄 것이다. 달력을  시간도 없이 일상에 몰입하게 되더라도.





부모님의 시계는 내 나이가 된 것처럼, 아이의 나이는 내게 시계가 되었다. 아이의 생일이 내 삶의 객관적인 수치가 되어줄 것이다.





다시 돌아온 고향의 바다가 알려준 시간의 무게


매년 고향에서 열리는 불꽃축제를 작년에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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