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주말 아침 모닝리추얼
집에서 나와 10분가량 걸으면 강을 볼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할 수 있는 뒷산과 숲 놀이터도 있다. 나름 배산임수 지역인데, 8월엔 몸과 마음이 지쳐 이 좋은 환경을 즐기지 못했다. 지난 4월과 5월에는 복직 후 운동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아이에게 잠시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이른 아침시간을 선택하여 뒷산을 부지런히 걸었다. 운동을 먼저 하는 모닝리추얼과 손글씨를 먼저 쓰는 모닝리추얼을 각각 두 달씩 해보니 차이점이 있다. 아침마다 잠에서 제대로 깨기 쉽지 않지만, 손글씨를 쓰면 뇌가 잠에서 깨는 기분이고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잠에서 깨어 정화될 때가 있다. 어제의 일은 어제의 일로 두는, 새로운 아침과 하루를 선사하는 기분.
역시나 뇌를 먼저 깨우는 것보다 몸을 먼저 깨우면 건강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신체와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반복되는 리추얼(습관)은 아침에 짧게 손글씨 쓰기, 차를 마시며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 고르기, 출근길에 짧게라도 걷거나 회사 계단을 이용하기, 구독하는 아침신문을 꼼꼼히 보기 등이다. 이중 몸으로 하는 리추얼은 '지금 네 마음이 어때' 또는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돼, 지금 걷는 길에만 집중해봐'라고 내가 나를 부를 때가 있다. 다른 리추얼들은 '하는 행위'에 집중하게 만들어 다른 시선과 다른 잡념을 버리게 만드는데 비해, 확실히 걷거나 산책하거나 등산을 할 때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하여 걷는 기분이 많이 든다. 누군가가 말을 걸지 않아도, 내 마음에 있는 나를 위로해주고 말을 걸어주고 내 상태를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내가 내 마음 상태를 잘 아는 것이 일상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는 듯싶다.
'곧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하게 산책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9월이 시작되자 <모닝 글쓰기 x 달리기> 리추얼을 시작하게 되면서, 어떻게든 적극적인 몸쓰기가 필요해졌다. 가장 소극적인 몸쓰기는 집 안에서 유튜브를 통해 요가방송을 보며 따라 하거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것. 30분에서 50분 소요. 조금 더 나아간 몸쓰기는 출근길 중 가볍게 산책. 10분에서 30분 정도 소요. 강도를 더 높이는 몸쓰기는 집 뒷산을 걷거나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서 집 근처 강길을 따라 걷는 일이다. 1시간 이상 소요되기에 시간에 쫓기는 평일 아침에는 어렵고 느긋한 주말 아침에만 선택할 수 있었다.
9월 들어 강도를 높여 아이와 뒷산을 함께 '등반'했다. 어른들이야 그냥 가볍게 걷는 등산코스이지만, 아이의 시선에서는 등반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두 돌을 맞는 달 아이는 전과 다르게 온 몸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점프 실력도 늘어났다. 어느 곳에 도착하든 무조건 뛰기 시작하고 내가 다가서야 겨우 멈췄다. '걷기'자체가 그에겐 사라졌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를 데리고 마음 놓고 외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이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가 사는 곳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띄었다. 매일 해야만 하는 나의 모닝리추얼에 그를 초대했다. 특히 주말엔 일하는 엄마이기에 그에게 선심을 많이 써야 했다. 이 모든 걸 충족할 수 있는 교집합은 주말 아침 모닝리추얼 시간이었다.
우려와 달리 아이는 뒷산을 정말 잘 올라탔다.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아장아장이 아닌 투벅투벅. 산에서는 그에게 '걷기'라는 동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차분해졌다. 목적지 없이 뛰어가지 않고 앞만 보고 잘 걸어주고, 잘 뛰어줬다. 작은 산일 지라도 산이기에. 그 산은 아이의 마음을 조금 다스려주는 곳인듯 싶었다. 차근차근 걷다 보니 등산로의 모래를 만져보며 잠시 주저않기도 하고. 지나가며 풀과 나무를 쳐다보고 나무에서 나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짹짹"
이제 말을 겨우 떼는 아이가 새가 짖는 소리를 듣고 따라 했다. 동화책에 나오는 멜로디가 아니라 진짜 새소리를 들은 것이다.
최근에 비슷한 경험을 한 기억이 있는데, '물'이라는 단어를 이미 알고 있는 아이가 비 내리는 날을 보며 '물'이란 단어를 입에서 꺼냈다.
"그렇지, 물이지. 비라고도 하는 거야. 비"
이렇게 알려주고 바다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는 바다를 보고 '물'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세뇌시키려고 하지 않고 "바다가 보이네"라는 표현을 자주 해줬다. 그러자 어느새 바다를 보고 "바다"라는 단어를 꺼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하는 말과 단어, 뉘앙스까지. 아이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뒤로 아이에게 보이는 사물을 정확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주말에 아이와 뒷산을 오르고 하산할 때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아파트 단지에 살지만 집 주위에는 계속 개발하고 있는 지역이 많아서 출퇴근길에 대형트럭과 포클레인을 종종 보긴 했다. 아이는 특히나 요즘 중장비 장난감 중 ‘코코(포포)’... 아이가 발음하기 어려운 ‘포클레인’에 푹 빠져있었다. 그래서 늘 한 손에는 미니 포클레인 장난감, 또 한 손에는 레미콘과 트럭 장난감을 동시에 집었다.
이날 주말 모닝리추얼 때도 당연히 아이의 필수템을 챙겼다. 하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에 포클레인 두 대를 마주했다. 아이 손에 꼭 쥐고 있는 포클레인 장난감과 비교해서 포클레인에 가까이 다가서자, 운전석에 계신 선생님께서 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주변에 있는 분들이 아이를 태워보라고 말씀 주셨다. 기념사진까지 찍을 시간도 마련해주시고.
내 평생 포클레인과 레미콘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는데. 그나마 운전면허 실기시험 때 트럭을 운전해본 경험뿐 중장비를 타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벌써 포클레인의 정확한 용도와 쓰임을 알게 된 3살 꼬마는 버스를 태워주었던 예전의 경험처럼 최고의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갖고 있는 소유물보단 몸으로 체득한 경험은 세상을 알아가는 공부이기에.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나갔기에 그 경험은 가능했다.
포클레인을 탄 후 장난감의 운전석 부분을 가리키며 “아찌아찌(아저씨랑 같이 탔어요)” 라고 말하는 아이. 문장형으로 말을 못해도 아이의 경험을 나는 공유하고 있기에 그 단어에서 우린 추억을 나눠가졌다. 벌써 주말 아침이 다가온다. 아이가 아침잠에 깨는 시간을 기다린 후 주말 모닝리추얼에 나설 채비를 해야겠다. 어떤 경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걷기'자체가 그에겐 사라졌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를 데리고 마음 놓고 외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