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커피를 즐기는 취향에 따라
오늘은 유독 일찍 눈이 떠졌다. 침대에서 아이가 깰까 봐 조심히 일어나서 서재방 문을 열었다. 싸한 공기가 방 안을 감싸돈다. 커피포트에 물을 데우니 하얀 수증기가 날려 금세 방 안이 따듯한 느낌이 들었다. 따듯하지 않지만 내가 느끼는 체감이 더 따스하게 느껴질 때처럼.
자연스럽게 드립백을 꺼냈다. 불과 세 달 전만 해도 드립백 커피는 한 달에 1번 겨우 마실 정도였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모닝리추얼을 통해 커피 맛보다 커피 향을 맡는 게 좋아졌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 향을 맡으면 아침잠을 깨는 기분이랄까. ‘내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건 분명한 사실’ 팩트지만... 커피를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되는 건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찬빈 님의 ‘모닝커피 글쓰기’를 지난 11월 월부터 두 달간 참여하면서, 아침에 커피를 마신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이라니.. 찬찬히 나를 돌아보니 카페에 가면 아인슈페너, 비엔나커피를 즐겨마셨다. 예전엔 카푸치노를 참 좋아했다. 아이스 카푸치노를 잘하는 집을 쫓아다니기도 했었다. 나만의 방법으로 커피를 좋아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임신할 때 즐겨마셨던 루이보스차를 꺼냈다. 루이보스차는 2007년 프라하 여행차 민박집에 머물 때 현지인들이 즐겨마시는 국민차라고 소개받고 처음 마셔봤다. 이후 요가를 다시 시작하면서 요가 선생님께서 극찬한 음료가 루이보스차였다. 몸에 무리가지 않은 차라 보리차처럼 마시기에 편한 음료였다. 마침 임신할 시기라 태아에게도 좋은 음료라고 추천받아 매일 자주 마셨다.
내 몸이 받아들이는 날에만 드립백을 꺼냈다. 일상의 소소한 사치를 누리는 것처럼. 드립백 하나에 가격이 2천 원 정도 하니. 마시는 맛보다 펄펄 끓는 물을 따르기 전에 잠시 맡은 커피 향을 더 좋아하게 됐다. 미각으로 느끼는 커피맛보단 물을 따르기 전 드립백을 뜯으며 커피 향을 맡는 후각과 드립백에 물을 부을 때 나는 소리, 청각. 커피를 따를 찻잔을 고르는 재미.. 시각적인 효과까지. 그 짧은 아침시간에 누리는 나를 위한 가치로운 시간이었다.
지난달에는 사는 도시에서 커피 잘하기로 유명한 커피숍 3곳에 들러 드립백을 종류별로 사놓고 마셔보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프릳츠 컵에 엘사바도르 엘 리모 파카스 사치모르 블랙허니 드립백을! 이름이 참 길다. 이름만큼 베리, 체리, 포도, 사과, 잼, 초콜릿 맛이 난다는 커피라는데, 가공방법이 블랙허니.. 아직도 커피는 잘 모르겠다.
퇴근 후 내 서재방의 책상을 쳐다보는 그는 커피를 다 마시지도 않으면서 드립백을 꺼낸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렇다, 인정한다! 드립백을 여는 건 사치가 맞다. 다 마실 수 없는 커피 드립백을 꺼내서 마셨으니. 그래도 짧게라도 맛을 음미하고 향을 느끼는데 충족한다. 커피 맛보다 커피향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유일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니. 새로운 경험에 시도를 해본 노력이라도 했으니 괜찮다. 매일 도전할 수 있는 끈기라도 생겼으니.
미각으로 느끼는 커피맛보단 물을 따르기 전
드립백을 뜯으며 커피 향을 맡는 후각과
드립백에 물을 부을 때 나는 소리, 청각.
커피를 따를 찻잔을 고르는 재미..
시각적인 효과까지.
그 짧은 아침시간에 누리는 나를 위한
가치로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