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얼 Oct 04. 2021

바리스타와 원두, 지독한 놈들

바리스타,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 | 원두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는 여러분들은 원두를 직접 구매하시나요? 전에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원두를 찾는 방법은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10화 바리스타의 은밀한 홈카페 - 커피원두 어떻게 고르지? (brunch.co.kr)) 그렇게 구매한 원두는 어떻게 보관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리고 원두는 얼마큼 구매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알맞을까요? 그리고 바리스타들이 원두를 구매하면 그들은 원두를 어떻게 보관할까요? 예상컨데, 아마 여러분들은 제가 원두를 보관하는 방법을 보고 나시면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10화 바리스타의 은밀한 홈카페 - 커피원두 어떻게 고르지?


"지독한 놈"




우리가 직접 원두를 사고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내 취향에 맞는 나만의 커피를 직접 만들어서 마시고 싶다. 2.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내 취향에 맞는 데일리 커피를 즐기고 싶다. 두 가지 이유 모두 내 삶의 취향과 일상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커피를 최대한 신선하고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커피 한 잔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메인 재료인 커피 원두를 잘 보관해야겠지요. 여러분들이 손에 들고 있는 갈색의 커피 원두는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나옵니다. 최대한 간결하고 재미있게 설명해드릴 테니, 부디 조금만 참고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커피나무의 시작

기본적으로 우리가 소비하는 커피 원두는 '씨앗'입니다. 실제로 커피 체리 안에 있는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게 되고, 그 싹이 점점 자라서 커피나무가 되는 것이지요. 약 3~4년 정도 자란 커피나무는 열매, 즉 커피 체리를 맺을 수 있으며 그것을 수확하여 가공할 수 있습니다. 


2. 수확

커피 체리를 수확하는 과정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계로 한 번에 수확하는 방법, 두 번째로 사람이 직접 수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두 가지로 갈리는데, 사람이 직접 커피를 수확할 때 커피 체리 하나하나 익은 것만 골라서 따거나 아니면 어떤 특정한 도구로 커피나무에 있는 모든 체리를 털어서 선별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기계로 수확할 경우, 노동력과 비용이 매우 줄어들고 편리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심한 커피 선별이 힘들고 충분히 익지 않거나 과하게 익은 커피가 선별되지 않은 채로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요. 반면, 손으로 직접 수확하면 세심한 선별이 가능하고 훨씬 더 좋은 품질의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싼 노동력과 오래 걸리는 시간은 감수해야만 합니다. 


3. 가공

이렇게 딴 커피 체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공됩니다. 체리의 과육을 벗겨내고 그 씨앗이 약 11~14% 사이의 수분 함량을 가질 때까지 건조한 다음 그 씨앗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을 벗겨내면 드디어 상품성을 가진 녹색의 '생두'가 되는 것입니다. 보통 수 주(weeks)의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 가공 방법에는 정말 여러 가지가 존재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4. 수출과 로스팅

산지에서 수출되어 로스터에게 도착한 커피는 로스팅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땐 녹색의 생두에 직접적으로 열(heat)을 가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두에 화학적 변화가 생기면서 우리가 아는 갈색의 커피 원두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로스팅 때문에 커피 원두를 보관하는데 많은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로스팅을 하면서 열이 가해진 커피콩의 표면은 화학적 변화를 거치면서 미세하게 수많은 틈이 존재하는 다공질의 성질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커피 원두 안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와 향미 성분이 빠르게 휘발합니다. 심지어 그 커피 원두가 갈려져 있는 상태라면 더 빠르게 휘발되겠지요. 


이런 커피의 성질을 알고 있는 바리스타들은 커피의 향미와 신선도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그에 따른 원두 전용 보관 제품(예: 밸브가 달린 캐니스터)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신선식품인 커피는 다른 음식 재료와 마찬가지로 조심해야 할 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직사광선, 온도, 습도. 크게 총 세 가지입니다. 따라서 커피를 보관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환경은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서늘하고 건조한 곳입니다. 부엌의 어두운 찬장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밀폐 여부가 중요합니다. 매우 휘발성이 강한 커피의 향미 성질 덕분에 공기와의 접촉을 되도록이면 피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집에서 커피를 일주일 안에 소비한다고 하더라도 총 3중의 밀폐 과정을 통해 공기와의 접촉을 방지합니다. 먼저 커피가 담겨 온 원두 봉투를 잘 닫고 그것을 지퍼백에 넣어서 공기를 잘 빼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한번 적당한 크기의 락앤락 통에 넣고 뚜껑을 닫아서 서늘한 곳에 보관합니다. 



일을 그만두고 맛있는 커피를 계속 마시기 위해서 약 2년 가까이 매달 1kg의 싱글 커피 원두를 받아서 소비하는 '커피 구독' 시스템을 사용해왔습니다. 약 한 달 동안 먹을 커피이기 때문에 그 기간 내내 모든 커피를 꺼내 둘 순 없습니다. 때문에 커피 종류를 잘 살펴보고 제일 먼저 마시고 싶은 커피 종류 몇 가지를 소분해서 꺼내 놓습니다. 나머지는 가정용 진공 포장기를 사용해서 진공 및 냉동고에 보관합니다. 


참 지독하다고 말씀하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심지어 많은 바리스타들이 저처럼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저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커피를 관리하시는 분도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커피에 진심인 바리스타들 모두가 나름의 방법으로 원두를 대하는 진지한 방법과 자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더라도 더 세심한 관리를 통해서 더 오랜 기간 동안 커피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잠재력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스타에게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됩니다. 그저 가볍게 집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구매하는 커피조차도 말이지요. 어떻게 보면 직업병 또는 하나의 강박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게 더 마음이 편안하기까지 합니다. 누군가는 저 지독한 인간, 괜히 유난 떠는 인간이라고 불리더라도 말이지요. 


여러분들에게는 남들과 다르게 유난히 신경 쓰는, 그리고 귀찮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런 것들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여러분들이 진심인 것들을 한 번씩 생각해보고 공유해봐도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2화 Bar: 바리스타와 손님을 구분하는 경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