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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Sep 21. 2023

<작가의 시작>을 읽다가

난 아직 아닌 게 분명해...

최근 장강명 작가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재밌게 읽었는데 그 속에서 추천했던 책,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을 읽고 있다. 바버라 애버크롬비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이며 이 책은 어떤 매거진에서 '작가들을 위한 최고의 도서'로 뽑혔다고 한다.

아직 책 초반부를 읽고 있지만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일단 재밌다. 그리고.. 뜨끔하는 부분도 많다. ㅎㅎ

예를 들면 이런 부분.

진짜 작가란 출간이나 등단 여부보다는 어떤 경우에서든, 그저 묵묵하게 또는 어쩔 수 없이 써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라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아닐까? 이것이 작가란 직업의 기준이라면 나는 군말 없이 바로 탈락이다.

에세이 두 권을 내고 그 이후에도 계속 이렇게 브런치에도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꾸준히 쓰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뭔가 좀 쓰고 나면 한동안은 쓰고 싶지 않아다. 그러 넷플릭스나 책 읽기에 한동안 몰두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손이 근질거리고, 머릿속 정리되지 않아 써갈겨야할 것 만 같은 복잡한 상태가 되기 시작해서야 다시 쓰기 시작한다. 가끔 그 간격이 몇 달이 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몇 달 만에 뭔가 일기스러운 쉬운 글이라도 쓰게 되면, 정말로 손이 좀 굳고 머리가 굳은 기분이 든다.

작가라면 글을 잘 쓰고, 유려한 문장을 써내고, 그런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주 타고난 글쟁이의 재능 영역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쓰면 어느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꾸준히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꾸 유명한 작가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하기만 하는 것을 요즘 들어 좀 반성하고 있다. 반성을 한다고 했지 그들처럼 열심히 써보겠다고 다짐을 하지는 않았다.... 아니 아직 못했다. 다짐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ㅎㅎ


어떤 사람은 글 하나를 쓰기 전에 글의 구조나 생각을 다 정리해야 글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떠오른 글감이나 단상 같은 걸 첫 문장으로 일단 시작하다 보면 그것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정리가 된다. 머릿속에 그저 떠돌아다니던 구름 같았던 것들이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인 언어의 형태로, 흰 종이 위에 까만 글씨로 도식화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구체화되는 것이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 귀한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그래서 굉장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게 뭐든 뭔가를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최근 인스타툰으로 시작해 책으로도 출간된 수키도키 작가님의 책 <인생은 내 적성이 아닌가 봐>에서도 이런 비슷한 내용을 보아 공감했다.

'생각은 형식을 따라가며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이다. 생각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선 스스로의 언어를 발전시켜야 한다.'라는 문장이 내 생각과 아주 같다. 언어를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에세이 두 권을 출간하고 나서, 새로운 에세이 출간을 해보려고 도전하고 투고도 했는데 쉽지 않았다. 내가 써온 글들이 유난히 최근에 많이 출간되고 있는 우울증이나 mbti 관련 글이었고 이미 유명한 작가가 쓰거나 팔로워가 많지 않은 이상 하루에도 우르르 신간이 쏟아지는 출간시장에서 눈에 띄기 쉽지 않거나 (눈물이 나지만..ㅜㅜ ㅋㅋ ) 내 글이 특별하게 좋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뒤로 남편의 입을 빌려서 남편화자시점으로 자전적인, 하지만 소설의 형태를 띤 <김 과장의 서바이벌 헬조선>을 브런치에 연재했다. 이 이야기도 소설적 재미도 좀 떨어지고, 해외 현지채용인의 삶이라는 비주류 이야기인 데다 소설 형식이라 출간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 것보다는 에세이 형식의 글만 써보다가 어쨌든 소설의 형식으로 습작을 해본 것이 나에게는 큰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브런치에 연재하진 않았지만, 자전적 경험을 담은 단편소설 하나를 더 썼다. 여기에도 자전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김 과장의~> 보다는 훨씬 더 소설의 형태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지금은 어쨌거나 진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계속 키우고 있다. (드라마 시나리오도 여전히 써보고 싶긴 한데 소설작법이랑은 또 완전히 다르니까 소설 쓰기가 좀 더 익숙해지면 도전해볼까 한다.)

꿈이 현실이 될지 안될지는 시간이 흘러봐야 알겠지만, 그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바버라 애버크롬비가 말하는 '진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쓰게 될 습작소설들이 출간될지 안 될지를 따지며 쓰기보다, 바라기만 하기보다, 그저 나는 작가이니까 계속해서, 끊임없이 쓸 것. 그것이 내가 진짜 작가로 살아가는 단 하나의 방법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쓰는 시간이 재밌고 즐겁기도 하지만 쓰는 시간의 많은 경우는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경우이다. 써버야지만 편해지는 마음이나 생각들이 머릿속에 많이 떠다니는 종류의 사람이다. 쓰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진짜 작가로 살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쓰기만 하면 되는 거다. (다짐중...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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