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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Sep 29. 2023

머리론 안좋아하는데 몸은 좋아할수  있어?-아리어록3

California Dreaming -  Mamas and Papas

최근, 2학년인 아이 영어 공부 겸, 차로 픽드랍 해주는 시간 (하루에 1시간 가까이 되기도..)에 같이

노래 부르려고 가사와 멜로디가 좋은 영어노래 몇 개를 선별해 가사를 프린트해서 뒷좌석에 던져두고, 내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둔 후 차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틀었다. 무심하게 엄마가 영어로 따라 부르고 싶어서 그런 것처럼.


내 의도가 잘 맞아떨어져 아이는 영어노래들을 따라 부르고 Just the way you are라든지 where you are, what you are 같은 표현들은 그냥 익히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묻기도 했다.

하루는 내가 집에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하다가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두었는데, 알고리즘에 의해 한때 좋아했던, 그리고 추억이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있는 노래, Mamas and Papas의 <California Dreaming>이 흘러나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Yh87974T6hk

나는 이 노래가 영화 <중경삼림>에 나오는 노래인지 몰랐다!!!!!!! 

그 유명한 영화를 안 봤기 때문인데, 홍콩영화가 붐이던 시절은 80년대 학번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겠지 아마??(모름)

왜냐하면 나의 막내고모 찬희 씨가 80년대 학번이고 그녀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길렀으며, 내가 초등, 중등생이었을 무렵 내 사촌들과 함께 그녀의 부산 모라동 집에서 이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우린 그게 무슨 노래인지도, 마마스앤파파스가 누구인지도 당연히 모른 채 커다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그 웅장한 구절을 가진 노래에 맞춰 원시 부족처럼 방을 둥글게 빙빙 돌며 이상하고 웃긴 춤을 추곤 했다. 그 장면은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서 35년이 다 된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 노래는 All the Leaves are Brown~~~~ 이라며 매력적인 도입부로 시작하는데, 나는 그 가사가 그런 것인 줄은 지금까지도 꿈에도 몰랐다. California Dreaming~~~~~~~~ 하며 소리를 내지르는 그 유명한 후렴구 부분만 가사를 알았지 다른 지점은 따라 부를 생각도, 가사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25년을 보냈다는 소리이다. 정말 우연하게도 라디오 가사에서라든지 블로그 글에서도 그 가사를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게 신기한 우연인데,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런 글을 쓰려고 그랬나? ㅎㅎ


또 서두가 길어졌는데, 그 알고리즘이란 것 때문에 아이와 함께 차에서 부르는 영어노래 목록에 갑자기 California Dreaming을 추가하고 싶어졌다. 이제야 제대로 된 가사로 불러보고 음미하고 싶어져서이다. 가사를 프린트해서 프린트물에 같이 집게로 묶어두었다. 아이가 좋아하게 된 노래를 같이 두어 곡 부르고 나면 자연스럽게 운전하며 그 노래도 틀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질색팔색했다.


"난 이 노래 안 부를 거야!"


"응~ 그래그래. 엄마 좀 듣게 기다려줘. 니꺼 들었짜나!"


"칫..."


그러길 서너 번...

어느새... 2016년생 아이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에 자신도 모르는 새 캘며들어버렸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이 피부로 느껴지던 어느 날의 밤, 자기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누며 식탁에 둘이 앉아있었는데

아이가 대뜸, 이 글의 제목인 문장을 말하는 것이다.


"엄마... 머리론 안 좋아하는데, 몸은 좋아할 수 있어?!" (표정 근엄진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야 제발 깜빡이 좀 넣고 말해라. 니 머릿속에서 굴러가던 이야기의 일부만 말하지 말고 맥락도 함께 설명해 줘야지............ 엄마 오해하잖아......


"무슨 말이야 갑자기 ㅋㅋㅋ 주어가 뭔데? ㅋㅋㅋ 우리 딸. 뭔가를 싫어하는 척하고 싶은데 실제론 좋아졌나 보구나."


"아니야아~~~! (small 버럭) 그게 아니고, 캘리포니아 드리밍. 그 노래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녀는 All the leaves are brown~~~~ 으로 시작하는 첫 소절은 나처럼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따라 부를 맘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California Dreaming~~~~!! 하며 내지르는 그 대목에서 그걸 따라 부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긴 어려워진 모양이었다. 그런 걸 누가 해내냐고. ㅋㅋㅋ

나도 모르는 새 딸의 머릿속에 어떤 욕망을 심어준 셈이었고, 아이의 그 표현 덕분에 나는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런 밤이 하나 더 더해졌다.


또한 이런 일련의 사건은 이 사건의 전말이라고 할만한 나의 막내 고모, 찬희 고모, 너무 이른 나이에 먼저 떠나버린 내 아빠의 막내 여동생을 떠올리게 했다. 내 부산대학교 선배이자, 내 초중 시절의 과외선생님, 그리고 아직 젊디 젊은 두 청년... 남겨진 두 사촌동생의 애틋한..돌아가신 엄마.

언젠가... 내 유년시절에 얼기설기 깊숙하게 얽혀있는 그녀에 대한 글도 쓰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California Dreaming을 들으며 서늘하고 외로운 가을밤이 이미 내 옆에 와있음을 느꼈다.

내 안의 이야기를 언제 다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또다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건강이 우선이다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천천히, 천천히 하자. 다 할 수 있을 거다. 나를 믿으니까.



출처: 그림책-엄마가 수놓은 길- 재클린 우드슨 (주니어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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