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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Oct 31. 2023

엄마 입장에선 젊어지면 더 좋은 거 아냐?-아리어록4

은행나무를 보다가

오랜만에 둘이 카페에 앉았는데, 격자무늬 창밖으로 가을이 흘러가고 있었다.

왼쪽 나무도 분명 은행나무 같은데... 채 20미터도 안 떨어진 오른쪽에 미 온통 노래진 나무의 시간과 그의 시간은 너무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신기했다.



나 : 아리야, 쟤도 은행나무 같은데, 오른쪽 애랑 너무 다르다 그치~ 오른쪽에 햇볕이 더 많이 드나 봐~

아리 : 음~ 그런가?

나 : 참 신기하네. 바로 옆인데 저렇게나 차이 나다니. 아리는 어떤 게 좋은 것 같아?

아리 : 음~ 여름이랑 가을 말이야?

(초록 은행나무는 아직 여름을 보내고 있고, 노래진 은행나무는 먼저 가을을 맞았다 생각한 듯)

나 :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근데 엄마가 물어본 건, 남들보다 먼저 노래지는 것과, 남들보다 천천히 노래지는 것 중 어떤 게 낫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거야.

아리: 아~~ 근데~ 엄마는 초록이 더 좋은 거 아냐? 더 젊어지잖아~~~ ㅋㅋㅋㅋㅋㅋㅋ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생각한 거냐?

아리 : 엉. 엄마 입장에선 젊어지면 좋은 거 아냐? ㅋㅋㅋㅋㅋ

나 : (남들보다 먼저 전성기를 누리고 빨리 지느냐, 좀 느리더라도 천천히 자신의 속도를 지키느냐... 뭐 이딴 것에 대해서 딸과 약간은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인데...... 한방 먹어버렸다.)

야 이것아! 너는 뭐 평생 젊을 줄 아느냐?!!? 나도 너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있기만 해도 예쁘던 시절이 있었단다. 이것아!! (안듣고있다..)


믿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정말

정말이란다.


마침내

완연한,

찰나의,

가을이구나.


흩뿌려진 안개처럼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린 나의 초록은 내 눈앞에서 새롭게,

연둣빛으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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