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식빵 Mar 12. 2021

무슨 일 하시는데요?

이제 작가라도 말해도 되려나...

나는 미용실 가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헤어스타일을 바꾸면 기분전환이 되어 좋긴 하지만, 꼼짝 않고 한참을 앉아 기다려야 하는 게 싫기도 하고, 미용사 분들이 나름 고객 서비스, 어색함 타파를 위해 막 아무 대화나 시도할 때 말주변이 없어 하하호호 같이 떠들 성격이 못되어서이기도 하다. (그 시간이 영겁같이 느껴짐 ㅋㅋㅋ)

그런데 작년에 히피펌이란 걸 했다가 너무 부스스해져서 너무 보기가 싫어 참고 참다가 미용실에 게되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오전 10시에 찾은 미용실은 나 이외에 한 명의 손님밖에 없었다.

평일 오전 10시에 혼자 미용실에 온 30대로 보이는 여자 손님.

직장인이라면 평일이니 연차를 썼거나 아님 전업주부이거나 낮은 확률로 프리랜서일 것이다.

20대로 보이는 내 머리 담당 미용사는 예의 그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커트를 하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직장인이세요?"

내가 싫어하는 질문이다.

내가 직장인이었던 시간은 대학 졸업 후 단 3년뿐이었고, "아니오. 그냥 주부예요."라고 말하는 것은 왠지 싫고(가정주부 비하 아님)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손님에게 영혼 없이 하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짱구를 굴려야 하는 나의 소심한 성격도 싫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뭐라고 대답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그냥 그렇다고 하거나 아니라고만 대답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왠지 있어 보이게 "아니요. 프리랜서예요."라고 대답해보았다. 그녀가 더 이상 그에 대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녀는 한 치의 침묵과 어색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아~무슨 일 하시는데요?"

(3초간 침묵)

"음... 글... 써요...^^;;;"

어디 가서 무슨 일 하느냐는 질문에 글 쓴다는 대답은 처음 해보았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냥 프리랜서라고 대답했었지만, 사실 프리랜서라면 비정규적이지만 어느 정도 최소한의 밥벌이는 할 정도의 돈은 벌어야 프리랜서라도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책 한 권을 내고 받은 수입은 글을 쓴 시간에 비하면 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고, 책을 낸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일, 정기적으로 글을 써서 수입을 번다든지, 강연을 한다든지의 다른 수입원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 주제에 대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우와~ 작가님이시구나. 어떤 책 쓰시는데요?"

젠장......... 괜히 글 쓴다고 했다.

글로  벌어먹고 사는 것도 아닌 주제에.

나는 에세이를 쓴다고 수줍은 척 대답했다가 그녀가 이번에도 집요하게 파고들며

"우와, 제목 뭔지 여쭤봐도 되나요?"라고 하기에

어색한 웃음으로 그것만은 밝히고 싶지 않음을 내비쳤고, 그녀는 약간 민망해하며

"하하하... 좀 그런가요?"라고 대답하곤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휴.

책을 내긴 냈으니 내가 작가라는 것이 되긴 한 것이 맞지만 왠지 그 호칭은 아직도 어색하고 쑥스럽고 민망하다. 그리고 진짜 '작가님'이라고 불리려면 최소한 책을 5권 이상은 냈거나, 글만 써서도 충분히 밥벌이를 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라 불릴만한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다.

주변에 나 같은 신인작가님들을 보면 아직 유명하지 않으니, 대부분 글은 취미생활 정도로만 쓴다. 대부분 본 직업이 따로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처럼 배우자의 경제능력에 의지해야 하거나 원래 부자여서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거나 본캐(원래 직업)는 따로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참 가난한 직업(혹은 부캐)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내가 꿈꾸던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지만 아직도 어디 가서 당당하게 "글 써요."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다.

유명해져서 책만으로 돈방석에 앉거나, 여기저기서 글 좀 써달라고 하는 이름난 작가가 되는 것보단

일단 5권쯤 내는게 훨씬 빠를것 같으니 스스로의 작은 기준이라도 충족시켜봐야겠다. ㅋㅋㅋ

이제 겨우 2권 낸 작가지만, 책으로 돈은 못 버는 작가지만,

그래도 시간이 흘러 최소한 5권쯤 출간하면 내 직업이 작가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p.s. 그래서 말인데요. 두 번째 책 곧 나오니까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

내용은 페미니스트 아내의 좌충우돌 결혼생활에 대한 것입니다. ㅎㅎ


이전 10화 책 읽기,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의 특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