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by 흙땅

초등학교 때, 학교를 내려오는 긴 계단이 있었다. 산 꼭대기에 위치한 학교를 이어주는 철망이 있는 긴 계단이었다. 난 이 계단을 내려오며 많은 날을 우울해했다. 눈물이 고이기도 했고 까닭 모를 불안과 우울에 흔들려야 했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아서 길을 걷다 종종 화장실에 들어간다. 네모난 타일을 바라보면 그곳을 나의 쉼터 삼아 숨죽여 운다. 짧지 않은 시간 눈물을 흘리다 밖으로 나간다.


이 우울은 긴 마라톤 같다. 모두가 뛰어가는 긴 레이스를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로 걷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등을 바라보며 무력함과 싸워 걷는다.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모두가 힘든 이 길을 왜 뛰어가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레이스를 이탈하려고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레이스의 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포기하고 난 이후의 일도 알 수 없다.

우린 다만 뛴다. 아무도 이유는 모른다. 신께 기도하기도 한다. 주저앉기도 하며 원망과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이 긴 레이스 중 내가 가장 힘들고 홀로 되었을 때 나를 살게 한 문장이 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출 것을 염려하라.”


그 문장을 적어 둔 포스트잇. 거기엔 포기에 대한 사전적 의미도 적어 두었다.


포기

1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2 자기의 권리나 자격, 물건 따위를 내던져 버림


이 문장은 가장 힘들어 넘어지고 싶을 때 나를 움직이게 했다. 계속해서 글을 쓰게 했고 공부하게 했고 사람을 만나게 했고 운동하게 했고 웃게 했고 도전하게 했고 나아지게 했다.


견디게 했다. 아무리 힘든 날이 와도 견디게 했다. 나를 죽지 않게 살게 한 귀한 말이다. 비루하고 비참한 날들도 살아가게 했다. 정말 감사한 말이다.


‘그래, 못해도 괜찮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괜찮아. 포기하지만 않으면 돼.’


우울한 날의 나는 억지로라도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면 더 힘들고 더 우울해지기도 했다. 더 많은 상념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나가기 직전까지 더 괴롭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노력이 있어 지금의 나는 운동을 하며 우울을 풀어낸다. 감정을 풀어낸다. 걷고 또 뛴다.


저녁밥을 먹고 중랑천으로 나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부부건 커플이건 중년이건 젊은 이건, 모두가 뛰며 걷는다. 많은 사람들의 등을 보기도 하고 내가 먼저 뛰어가기도 한다.


처음엔 누군가가 나를 지나쳐 갈 때 조급해지기도 했다. 내 속도가 너무 느린 것은 아닌가 점검하기도 했다. 그러나 뛰다 보니 날 앞서나간 사람도 언젠간 걷는다는 것이고 누군가를 앞서 나간 나도 걷거나 쉬게 된다는 것이다.


기나긴 레이스 위에서 승자와 패자는 없다. 있다면 멈춘 자와 멈추지 않은 자가 있을 뿐이다.


달리기를 하는 모든 사람은 나 자신을 본다. 남들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빠르게 뛰어가는 듯해도 언젠간 걷거나 쉬게 되어 있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먼저 나아갈 필요가 없다. 내 체력이 되는 만큼 뛰고, 힘들면 걷는다. 멈추지 않고 걷고 뛰고 나아간다면 언젠가 끝이 오게 된다.


그 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아가면 분명 나아진다. 정말 더디게 느껴져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나는 나아가는 것이다.


이 포스트잇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의 방 벽에 붙어 있다. 그 주위로 수많은 포스트잇과 사진이 붙어 있지만 여전히 나에겐 이 말이 특별하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주 어리고 외로운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나는 약할지언정 포기하지 않았어. 아주 느릴지언정 포기하지 않았어. 나는 지금까지 잘 버텨왔어.”


그 사람의 삶이 뒤바뀐 아주 대단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출 것을 염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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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12화12. 네가 피하고 있는 그걸 별거 아니라고 업신여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