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두려움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든다. 정말 하고 싶은 일도, 다니던 직장도, 좋아하던 친구도 다 끊어내게 만든다. 그 일이나 친구가 싫어서가 아니다. 내 안에 쌓인 감정에서 심한 악취가 나서 나 자신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나 자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도망친다. 자그마한 말에도 칼에 베이듯 큰 상처가 난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동굴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소통 창구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한 번 메일을 주고받는 친구였다. 멕시코에서 학교를 다니며 가끔 그 일상을 전달해 주는 그 친구는 나에게 있어 ‘자유’와 같았다.
타국으로 이민을 간 그 친구는 내가 벗어나고 싶은 현실을 벗어나 유토피아로 떠난 것만 같았다. 나는 종종 하교 후 도서관에서 그 친구에게 메일을 적었다.
별거 아닌 말들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좋았다.
“안녕, 잘 지내고 있니? 난 잘 지내지 못해.”
“나는 이런 것들을 하려고 이런 건 참 어려워.”
“내 생각은 그래. 네 생각은 어때?”
“거긴 어때? 여긴 힘들어.”
나는 그 친구를 참 좋아했다. 학교 쉬는 시간에는 식물도감을 봤고 선생님이 묻는 말엔 수줍어하면서도 기발한 답을 내놓았다. 휴지로 작은 아기나 동물을 만들기도 했고 그림이 그려진 편지를 서너 장 적어 주기도 했다. 길에서 주웠다던 인형을 가방에 매달고 다니기도 했다.
그 친구는 모든 불안이 비껴간 사람 같았다. 물론 그 친구와 다시 만났을 때 그게 나의 상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땐 그랬다. 자유나 행복, 편안함, 여름날의 나른한 오후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9년의 세월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어두운 우물 속에서 올려다보던 빛과 같은 친구였다. 그 친구와 나눈 수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가 떠오른다.
나는 그 친구 앞에서도 가끔 두려움에 떨었고 불안해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피하고 있는 그걸 별거 아니라고 업신여기란 말이야.”
이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났다. 방금까지 내가 진지하게 고심하던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업신여겨라. 심각하게 바라보지 마라. 내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이 실은 엄청나게 하찮고 별 게 아닌 것 아닐까.
그 친구는 유머가 있었다. 심각한 순간에도 살며시 웃는 친구였다. 그 입술 사이로 교정기가 보였다. 그게 익살스럽게 느껴졌다.
가끔 그 친구가 내 머리 안에서 말한다.
‘그거 지금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다른 걸 생각해.’
물론 그 친구는 격려도 잘했다.
‘알아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리곤 식 웃으며 말하는 것이다.
‘야, 뭐가 그렇게 심각해?’
그러면 나도 그 미소를 뚱하니 바라보다 따라 웃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네 앞에서 뭘 고민하니. 별 게 아닌데.
그 친구는 아주 심각한 문제도 별 게 아닌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알려주었다. 그 문제를 이길 힘은 그 문제가 두렵지 않다는 마음부터 시작임을 알려주었다.
“네가 피하고 있는 그걸 별거 아니라고 업신여기란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은 무거운 짐덩이를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진다. 그 친구는 내 곁에 없지만 그 친구의 말은 내 안에서 종종 울린다. 그 익살스러운 웃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