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대화할수록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에서의 두 번째 상담을 받을 때였다. 높은 층수의 건물에서 탁 트인 정경을 마주하고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의 얼굴보다 창 밖 구름의 모양을 더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상담사는 화술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도와주었다. 나에 대한 오해도 바로 잡아주었다.
“새싹씨는 본인이 우유부단하고 의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제가 만나는 새싹씨는 주관이 명확하고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에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것도 확고하고요.”
“제가요?”
“새싹씨는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어요. 다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오래 걸리는 것뿐이에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나다울 수 있을 때와 그러지 못할 때가 분명하게 나뉘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 앞에서의 나와 사회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때의 내가 달랐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 후자의 모습을 선택했다.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당위성이 너무나 강력해서 나답게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우울증은 나를 잃고 방황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었다.
“새싹씨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새싹씨는 이기적이지 않아요.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무기력해지는 거예요.”
내가 나대로 하지 못할 때 ‘무기력’해진다. 그것을 아주 오랜 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것만 같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야?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어차피 내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고, 어떻게 전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내 감정을 무시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나는 이미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주관이 뚜렷하고 포불호가 강하며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사람이다. 게으른 것이 아닌,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의견이 희미한 사람이 아닌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만 내가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고 나를 오해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걸 하는 게 맞다. 타인의 눈치 보지 말고 하자. 나는 원하는 대로 살아야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