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나를 싫어할까. 이다지도 비난할까. 왜 수치심으로 손끝이 시려올까. 발은 곱아들고 마음마저 얼어붙을까. 시종 배가 쿡쿡 쑤시고 괜한 헛기침을 하게 될까. 매번 몸을 웅크리고 살았던 것만 같다. 그때의 나는 개미에게도 기죽었을 것이다.
그 매끈하고 옹골찬 몸으로 더듬이를 움직이며 나아가는 개미, 얼마나 부지런한가. 인간보다 많은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90도의 나무에도 오르락내리락한다. 내가 어찌 개미를 이길 수 있을까.
어쩌다 몸을 쭉 펴고 몸을 바로 세워 움직여도 나는 좀처럼 잘 걷지 못했다. 내 페이스를 잃고 매번 멈추거나 넘어졌다. 사람이 걸려 넘어지는 것은 작은 돌부리라고 하더니 내 앞에는 왜 이리 돌부리가 많은가?
우연히 tv에서 한 어린아이의 말을 들었다. 신이 자신에게 무엇을 넣어주었는가. 그것에 대한 답이었다.
“신께서는 저한테 남김없이 다 주신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이 답변은 참으로 탁월하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도출할 수 있는 현명한 답이다.
이 답변이 나오기 전 어른들은 답한다. 신이 자신에게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한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답을 할 때도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리 답한다.
그러나 그 아이는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분명히 안다는 말투로 그리 답했다. 남김없이 다 부어 주셨다. 그리 말한다.
개미가 나를 비웃듯 말한다. ‘네가 받은 것을 봐라. 나보다 거대한 몸과 돌과 계란을 구분할 줄 아는 지능을 가졌는걸. 진달래와 철쭉도 비교할 수 있지.’
신은 나에게 남김없이 모든 것을 주셨다. 다만 내가 살아오며 잃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 이 마음을 어느 시점, 어느 곳에서 잃었는지 모르겠으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은 수백 수천 개이나 그것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음으로 나는 멍청이처럼 살았다. 마치 수백억 자산가가 자신의 금고 열쇠를 잊어 빈털터리로 살아간 것과 같은 것이다.
감사의 마음이라는 열쇠를 갖지 못하면 삶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인간의 신묘한 7개의 구멍, 눈과 귀와 코와 입의 구멍 그리고 우리를 지탱해 주는 12개의 갈비뼈 그리고 척추, 다른 이를 안아줄 수 있는 두 개의 팔과 흙과 풀 그리고 털이 난 고양이를 어루만질 열 개의 손가락.
신선한 심장 박동 소리를 들어보자. 아주 힘든 날 옥상에 올라가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코로 숨을 내쉬며 혈액이 온몸에 휘몰아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은 뺨을 손에 댔을 때 느껴지는 온기이다.
나의 몸은 나를 위해 살아간다. 그것도 갖은 노력을 다해 애쓰며 살아간다. 내가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이다.
신이 만들었다는 나의 몸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살아라. 살아라. 내가 모든 것을 남김없이 네게 주었노라.”
신께서는 저한테 남김없이 다 주신 것 같아요.
신께서는 저한테 남김없이 다 주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