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신이 새싹을 금지옥엽 아끼고 계신가 봐.

by 흙땅

삶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엉킨 실을 풀려고 애를 써도, 오히려 더 엉켜 들어간다. 내게 일어날 법한 모든 불행이 순번 없이 달려든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고 반년 간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돌아갈 곳이 사라져 버린 느낌에 자정이 넘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길을 걸었다. 입김이 새하얗게 퍼지는 겨울에 세상은 서로를 부둥켜안아주고 있는 것 같고 나 혼자 외따로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외로움은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내가 어느 곳에 있어도 어떤 것을 해도 어떤 감정을 느껴도 사라지지 않았다. 침대 위에 누워 혼자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외로움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의 가족은 또 다른 가정을 이루었고, 다른 관계를 이루었고 그 안에 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밤이 되고 어둠이 찾아오면 하나둘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미래로 나아가기도 했다.


난 내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홀로인 채 영원히 살아가게 될까 두려웠다. 내 손을 잡아주고 나를 안아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8살, 어쩌면 그 이후의 일이다. 나는 방과 후 홀로 하교하는 일이 많았다. 내가 가진 불안증은 나를 고립되게 만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나무에게 매일 기도했다. 무성한 나뭇잎을 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했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제게 친구를 주세요. 같이 대화하고 웃을 수 있는 친구를 갖게 해 주세요.”


그 이후 나는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외로움은 가시지 않았다. 대화를 하고 웃을 순 있어도 여전히 내 마음엔 불안과 외로움이 가득했다. 가족도 친구도 반려동물도 채워줄 수 없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을 연인에게서 찾으려 했다.


그 어린 시절 나뭇잎에게 소원을 빌던 것처럼, 나는 신에게 소원을 빌었다.


“제 외로움을 없애줄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제발 저를 외로움 가운데 두지 마세요.”


그 어리석은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더욱 매달렸다. 옳지 않은 소원에 매달려 흐느끼고 있노라면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기도는 단순히 배우자를 달라는 간단한 소원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전체를 관통하는 외로움에 관한 기도였다. 그것을 단숨에 해결해 주길 바라는 아주 철없는 기도였다.


몇 달간 그렇게 기도하던 나는 이 고민을 한 사람에게 털어놓을 일이 생겼다. 그녀는 나보다 직책이 높았고 겉으로는 까다롭고 예민하게 보였지만 실제로 대화해 본모습은 그와는 반대였다.


공감과 사랑이 있는 분이었다. 그녀는 나의 고민을 잘 들어주었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비웃지도 않았다. 나는 내 고민이 옳지 않다는 위축된 마음이 있었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사고에 휩싸인 상태였다. 그녀는 그런 내게 말했다.


“신께서 새싹을 금지옥엽 아끼고 계신가 봐.”


“네?”


“그러니 아무에게나 주지 않으려는 것이겠지.”


그녀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신께서는 나를 금지옥엽 아끼고 계신다. 그 말 한마디였다. 그 말이 내 안에 있던 원망과 부정과 슬픔을 솜사탕처럼 녹여버렸다. 봄 햇살이 서리가 앉은 대지를 단숨에 녹여내듯 그렇게 따스하게 내 마음을 녹아버렸다. 그 말은 내 마음에 순풍을 불러일으켰다.


금지옥엽이란, 금으로 된 가지와 옥으로 된 잎사귀란 뜻으로 귀한 자식이나 소중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나를 내버려 두고 홀로 두었다 생각했으나 그 반대로 너무나 소중하여 아무에게나 붙여주지 않았다고 그녀는 그리 말해준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그 말이 나를 얼마나 위로했던지. 내가 나를 여름철 날파리처럼 귀찮게만 여겼다면, 그녀는 나를 금지옥엽, 귀한 사람이라 감싸주었던 것이다.


가끔 나는 나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다가도 ‘금지옥엽’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내가 나를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귀한 사람이다. 가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금지옥엽, 아끼고 사랑할 때 비로소 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진부하고 당연시되는 말이지만 이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아주 오래 살아도 이것을 지킬 수 있는 날이 몇 날이나 될까.


내가 아주 나이 들고 볼품없고 아주 외롭고 비참하고 추워도 신께서 나를 금지옥엽 아껴주고 계시다는 것처럼, 내가 나를 귀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준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바란 ‘사랑’이 바로 그러한 것일 테니까.


신이 새싹을 금지옥엽 아끼고 계신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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