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 《김정한 단편선-사하촌》(문학과지성사, 2004)
구체적 현실이 모여 성립된 추상을 개념이라 한다. 개념의 정의상, 절대적으로 고정된 의미를 가진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구체적 현실이 드러나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구성되는 개념만이 존재할 뿐이다.
‘민중’ 개념도 그렇다. 절대다수의 피지배계급을 아우르는 말로 통용되어 온 민중 개념은 양가적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는 저항이다. 이때의 민중은 압제자에 맞서 저항하는 자들의 집단 정체성 형성에 개념적 토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저항자 정체성으로서의 민중이 단단한 토대를 획득하는 순간, 또 다른 위계가 생겨난다. 민중의 의미가 절대화되고 민중 내부의 동질성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김정한 소설은 민중의 양가적 의미를 잘 드러낸다. 그는 식민 시대부터 근대화 시기까지 늘 억압받는 피지배계급의 입장, 즉 민중의 입장에서 글을 써온 작가다. 그의 소설들은 우리 역사에서 민중이 어떤 처지에 놓여 왔는지, 어떻게 저항의 토대로 작동해왔는지, 언제 어쩌다 기재로 활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김정한의 작품은 때때로 감동적이었지만, 종종 우려스럽기도 했다. 김정한이 우리 역사의 궤적에서 그려낸 민중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그물〉(1932), 〈사하촌〉(1936)은 식민지 시절 농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당시 농민들은 일제의 식민 권력과 조선의 지주 모두에게 버림받은 채, 비참한 삶을 꾸려나갔다. 뼈 빠지게 일했지만 간평看坪, 소작료, 빚 등으로 굶어 죽을 걱정을 했다. 그들의 모든 노동은 가진 자들을 배 불리기 위한 일로 수렴될 뿐이었다.
돈과 땅의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추산당과 곁사람들〉(1940)의 주인공 명호는 먼 집안 어른인 추산당이 위독하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추산당은 형편이 넉넉지 않은 명호를 일본 유학까지 보내준 사람이다. 하지만 명호는 병문안 가기를 꺼린다. 오늘내일하는 추산당 곁에 조그마한 콩고물이나 얻고자 모여 앉아 있는 사람 중 하나처럼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명호는 더 이상 병문안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추산당을 찾는다. 하지만 추산당은 금세 죽어버리고 가족들은 그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추한 모습을 보인다. 가족들뿐만이 아니다. 추산당을 묘에 묻기로 한 인부들은 슬쩍 눈치를 보다 죽은 추산당의 두개골을 이리저리 굴리며 금니를 뽑는다. “명호는 인간의 더러움에 정신이 아찔하였다.”(141) 명호의 아찔함은 그 역시 추산당이 자신에게 조그마한 논이나 남겼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는 사실에 더 깊어진다.
시대의 부조리를 그대로 방관할 수 없었던 김정한은 소설로 저항을 모색한다. 그가 찾은 답은 피지배계급이 공유하는 경험·감정을 매개한 집단성, 즉 민중 정체성이다.
그러나 또쫄이, 들깨, 철한이, 봉구-이들 장정을 선두로 빈 짚단을 든 무리들은 어느새 벌써 동네 뒤 산길을 더위잡았다. 철없는 아이들도 행렬의 꽁무니에 붙어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들어댔다.
〈사하촌〉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리저리 뜯기기만 하던 또쫄이, 들깨, 철한이, 봉구와 마을 아이들은 농민에게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는 악덕 지주에게 향한다. 내내 막다른 길로 몰리기만 하던 이들이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자 분노로 하나 되어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항진기〉(1937)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주의 횡포로 경작하던 논을 빼앗길 처지인 두호네 가족을 지켜주는 것은 바로 동네 농민들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품앗이해오던 전통으로 두호의 논을 지켜낸다. 두호네 논을 가로채려던 손 씨가 손쓸 틈도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두호네 논을 경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손 씨와 그가 믿는 구석인 마름은 얼굴을 붉히며 두호를 꾸짖지만, 두호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응수한다.
이래 못 사나, 저래 못 사나 못 살긴 일반 아뇨. 그런데 도대체 당신은 뭐건대 툭하면 남을 보고 사느니 못 사느니 하고 다니오?
두호네 가족만 맞섰을 때는 어림도 없던 일에 마을 사람들이 동참하자 상황이 반전된다. 큰소리치는 것은 두호고, 당황하여 쫓기는 것은 지주의 대리인이다. 마름은 나중에 후회하라고 말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다. “이윽고 남정들의 너털웃음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나 일손들은 한결 잽싸졌다.”(114) 서로 품을 팔던 마을 사람들이 함께 노동했다는 공통의 경험을 근거삼아 저항하는 집단으로 거듭난 것이다.
김정한은 〈사하촌〉과 〈항진기〉의 농민들이 집단적 저항 이후 어떻게 됐는지를 다루지 않는다. 엄혹한 시대에 비춰봤을 때, 아마 그들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립된 분노를 집단적 저항으로 전환했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피지배계급이 언제든지 동질적 경험을 토대로 집단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여인이 시집가서 집안을 넉넉히 꾸리고 일구다 부처를 만나 열반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삶 곳곳에 배어있는 역사의 질곡을 다룬 〈수라도〉(1969)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가야부인은 고단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꾸려나가고 그 가능성을 주변으로 확장시킨다. 〈수라도〉는 〈사하촌〉과 〈항진기〉처럼 저항의식이 두드러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한 여인의 꿋꿋한 삶이 어떻게 모두와 연결되어 단단한 토대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결국 피지배계급이 공유하는 퍽퍽한 삶의 경험이 핵심이다.
김정한에게 ‘이론’은 해답이 아니다. 〈항진기〉의 주인공 두호의 형 태호는 사회주의자다. 하지만 태호에게는 다른 피지배계급과 공유할 일상의 경험이 없다. 태호는 허구한 날 계급 운운하며 “빈둥빈둥 자빠져 놀기만”하며 “백발이 다 된 아버지가 … 허둥대는 양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모른 채 방바닥에만 엎쳐 있다.” 사회주의자 태호는 온 가족이 분노하는 대상이자 조롱거리다.
기어이 사회주의를 하고 싶거든 우리 집에서부터 해보자꾸나. 노는 놈은 먹지 말라는 그 좋은 말을 왜 다른 데 가서만 하지 말고 우리 집에서도 더러 해 봐.
태호를 향한 아버지의 일갈, 즉 사회주의를 향한 김정한의 일갈이다. 김정한은 사회주의를 현실에 발 디디지 않은 허울이라 보았다. 노동하는 사람에게는 이론보다 공통의 경험이 더 유효한 저항수단이라 판단한 것이다. 결국, 다시 한번 중요한 것은 핍박받는 자들의 공통 경험이다.
김정한의 문제의식은 해방 후에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이번에는 근대화의 혜택에서 비껴 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모래톱 이야기〉(1966), 〈제3병동〉(1969), 〈인간단지〉(1970)는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는 근대화가 과연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묻는다.
〈모래톱 이야기〉(1966)의 주인공 ‘나’는 학교 선생이다. ‘나’는 어느 날 제자 건우 네로 가정방문을 간다. 건우는 조마이섬에 사는 학생이다. 건우와 건우의 어머니, 할아버지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조마이섬의 역사는 기구하다. 조마이섬의 주민은 단 한 번도 섬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 식민 시대에는 일본인이,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이, 그 이후에는 유력자가 조마이섬의 주인이었다. 정작 조마이섬에 거주하며 농사와 어업으로 먹고사는 주민들은 늘 ‘진짜’ 주인의 위세와 변덕에 억눌려 숨죽이고 살아왔다.
‘나’는 조마이섬과 주민들의 이야기에 점차 이입한다. 낙동강의 푸름을 예찬하기만 하는 신문에서 보지 못한 ‘진짜’ 낙동강의 삶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진다. 큰비가 몇 날 며칠 쏟아지자 건우 할아버지를 비롯한 조마이섬 주민들은 둑이 터져 섬이 가라앉는 걸 막기 위해 미리 둑을 허물고자 한다. 그러나 둑의 주인인 유력자의 수하가 그들을 막아선다.
“이 개 같은 놈아, 사람의 목숨이 중하냐, 네놈들의 욕심이 중하냐?” 건우 할아버지는 분노에 차 몸싸움을 하다가 유력자의 하수인을 살인하기에 이른다. 기구한 조마이섬 역사 그 자체였던 건우 할아버지가 살인죄로 잡혀가자 섬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9월. 새 학기가 되었지만 건우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황폐해진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整地한다는 소문이 돈다. 평탄해질 땅 밑에는 단 한 번도 땅의 주인인 적이 없다가 섬에서 쫓겨나기 직전에야 자기 목소리를 냈던, 그러나 이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삶과 목소리가 묻혀있을 터였다.
〈모래톱 이야기〉가 도시 외곽의, 도시와 동떨어진 섬사람들이 근대화의 폭력에 짓눌린 이야기를 다뤘다면, 〈제3병동〉은 근대화 시기 도시의 비참한 삶을 그렸다. 아픈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도시의 병원으로 온 강남옥은 마음 여린 의사 김종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어머니를 입원시킨다. 돈 없는 환자들이 몰려 있는,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을 수 없는 제3병동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제3병동은 죽음 충동과 삶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너무 아프고 비참해 차라리 퇴원하여 죽고 싶다가도 병원을 나가면 진짜 죽을 것이기에 나갈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제3병동이다. 제3병동은 환자들에게 “결국 3등 인간이란 자학”만 남기는 곳이며 가난이야말로 그 어떤 병보다 무서운 병임을 깨닫게 하는 공간이다.
강남옥은 가난한 시골과 화려한 도시, 화려한 도시 안의 허름한 병원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에 아찔함을 느낀다.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공간을 오고 가는 강남옥은 “기차가 다니는 길 변두리들만 그러지 말고 자기네들이 사는 늘밭골 같은 농사곳에도 그렇게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하지만 이루어질 리 없는 소망이다. 공간의 위계는 곧 그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의 위계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낮은’ 공간에 사는 강남옥은 ‘낮은’ 사람이다. 빠르고 거대하며 위세 당당한 근대화의 흐름에 ‘낮은’ 사람이 낄 자리는 없다. 강남옥과 그녀의 어머니가 제3병동에서조차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처지임이 이를 증명한다. 낮은 자리에라도, 낮은 인간으로서라도 존재할 수 있음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삶. 이것이 화려한 근대화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강남옥이 의사 김종우와 나란히 서있을 수 있는 순간은 그가 그녀를 욕망할 때뿐이다. 어머니의 병이 옮은 강남옥을 치료하던 김종우는 그녀에게 “야릇한 충격”을 느낀다. 작품 내내 김종우가 강남옥에게 전달하는 연민의 감정은 대체로 생기 없고 칙칙하지만, 성욕을 느끼는 순간에만은 그렇지 않다. 성욕의 대상이 되어서야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은 희망보다는 절망의 정서를 자아낸다.
〈인간단지〉 역시 근대화에서 소외된 ‘문둥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허울뿐인 시설에서 생활하던 한센병 환자들은 우노인을 중심으로 “문둥이 공화국”, “인간 단지”를 만들고자 한다. 평생 국가의 존재를 가까이 느껴본 적이 없던 그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건설할 생각에 벅차오른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센병 환자들이 마을을 만들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인근 주민들이 무기를 갖고 와 그들을 쫓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우노인과 동료들은 이들에게 용감하게 맞서지만 수적 열세에 밀려 끝내 쫓겨나고, 근대화의 여정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자리는 없음을 비참할 정도로 강렬하게 깨닫는다.
물론 〈모래톱 이야기〉, 〈제3병동〉, 〈인간단지〉에도 희망의 씨앗은 있다. 다만 일제 시대 농민들의 삶과 저항을 다룬 〈사하촌〉, 〈항진기〉보다는 그 크기가 작다. 〈모래톱 이야기〉에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던 조마이섬의 삶에 점차 이입하는 지식인 ‘나’가 있다. 〈제3병동〉에는 끝내 어머니가 죽고 어머니의 시체조차 제대로 모시지 못해 슬퍼하는 강남옥을 위로해주는 병원의 가난한 인부가 있다. 〈인간단지〉에서는 “밤새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쇠붙이 두들겨대는 소리”에 잠 못 드는 공장 노동자가 우노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준다.
요컨대, 근대화에서 비껴 난 삶을 공유하거나 이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세 좋게 지주를 골탕 먹이는 식민지 시대의 민중들과는 다르다. 건우 할아버지는 ‘살인죄’라는 사법적 죽음을 선고받고, 강남옥의 어머니는 가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우노인은 인근 마을 사람에게 맞아 죽는다.
이들이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와 공감했다는 것에서 희망을 읽을지, 그 순간이 죽기 직전에야 온 것에서 비참을 읽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다만, 식민지 시대의 민중을 다룬 작품보다 근대화 시대의 민중을 다룬 작품의 분위기가 더 우울하다는 것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읽어내야만 한다.
김정한이 그리는 민중의 삶이 점점 더 척박해지고, 희망의 크기는 작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근대화가 식민지 시대에 움텄던 민중의 가능성을 짓밟아버렸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안타까움은 민중을 향한 연민이 아닌 답답함과 불만으로 발현되었다. 그는 민중이 '민중답게' 저항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삼은 〈위치〉(1975)와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1977)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위치〉의 주인공은 안정적인 선생 자리를 두고 민족 신문인 동아일보 지국장의 자리를 맡는다. 하지만 당국의 방해로 신문사 운영은 어렵기만 하다. 심지어 얼마 못가 폐간령이 난다. 폐간령을 접한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보자.
양대(兩大) 민족지가 강제 폐간을 당한 날이라면, 항의 데모는 없을망정 무언가 다른 기색쯤은 있음직한데, 거리를 지나가는 동포들의 걸음걸이나 표정들에서 그런 빛은 전연 느껴지지 않았다. … 저러고서도 행여 해방이라도 되는 날엔 “내가 애국자다!” 하고 뻔뻔스럽게 얼굴을 쳐들고 대중 앞에 나서는 놈들도 있을 테지? 틀림없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김정한은 수동적 무기력에 사로잡혀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분노와 답답함을 느낀다. 왜 민중은 분노하지 않는가? 왜 민중은 저항하지 않는가? 김정한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민중에 걸었던 희망의 크기만큼, 무기력한 민중을 향한 실망도 컸다.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 일본의 농장으로 건너간 딸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일본의 근면함과 한국의 무기력을 대조한다.
그 또래의 일본 청년들은 2차대전-그들은 소위 대동아전쟁 때 그들의 부모나 가족들이 입은 피해와 고통을 언제까지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 그런 점이 성도 이름도 뺏기고, 가족이랑 이웃 사람들이 수십만 명이나 징용으로, 정신대로 끌려가 죽고 병들고 했어도 언제 그런 일들이 있었느냐는 듯이 시시덕거리게 마련인 우리나라 일부 젊은이들과는 다른 것 같은데, 그건 저의 잘못된 생각일까요?
저항하지 않는 한국의 민중은 투철한 일본의 민중과 대비되어 한심한 대상으로 재현된다. 이제 김정한을 흥분시켰던 저항의 공동체 민중은 없다. 그리고 김정한은 저항하지 않는 민중이라는 ‘모순’을 끝끝내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그토록 옹호하고 목소리를 부여해왔던 민중들을 다그치기에 이른다.
〈항진기〉의 태호가 사회주의 이론만 말하며 민중과 괴리되었듯이, 김정한은 ‘민중’이라는 개념에 매몰되어 현실 세계의 세심한 결을 꼼꼼히 살피는 일에 실패하고 만다. 그가 그토록 조롱했던 ‘이론가’ 태호의 자리에 스스로 갇혀버린 것이다.
남은 건 슬프도록 처절한 씁쓸함이다. 〈슬픈 해후〉(1985)를 보자. 〈슬픈 해후〉의 시대적 배경은 해방 후, 전쟁 전의 혼란기다. 〈사하촌〉·〈항진기〉의 시대 배경이 민중의 저항성을 드러내는 무대였고, 〈위치〉·〈오끼나와에서 온 편지〉의 시대 배경이 민중의 무기력을 비판하는 무대였다면, 〈슬픈 해후〉의 시대 배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민중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을 드러내는 무대다.
〈슬픈 해후〉의 주인공 성수는 김구의 주장에 동조하여 5·10 선거를 반대하다가 반정부 분자라는 딱지가 붙은 인물이다. 예비 검속을 피해 외딴곳의 오두막에 숨어 지냈지만 결국 위치가 탄로 나 체포된다. 성수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을 볼 수 없음을 직감하고 “겨우 들릴 듯 말 듯한 목멘 소리로 유언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데리고 부대[부디] 잘 사이소!”
정의로운 마음으로 저항했던 자의 쓸쓸한 퇴장이다. 이제 김정한의 작품에는 더 이상 저항의 쾌감이 없다. 공감과 연대도 없다. 그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는 ‘과거의 영웅’이 있을 뿐이다.
나는 김정한에게서 ‘민중’ 개념의 유효성과 불가능성을 읽어보고자 했다. 피지배 경험을 공유하는 자들을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은 분명 특정 시기에는 유효한 저항의 수단이다. 하지만 민중 개념이 획일적 경험과 무조건적인 저항을 강제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을 때, 비극은 시작된다.
〈모래톱 이야기〉의 ‘나’는 건우 할아버지에게 왜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지 않느냐고 추궁받는다.
선생도 시인 아입니꺼. 그런데 와 우리 농사꾼이나 뱃놈들의 이바구는 통 안 씨능기요? 추접다꼬? 글 베린다꼬 그라능기요?
지식인 김정한은 피지배계급의 이야기를 쓰라는 건우 할아버지의 명령에 충실했다. 그의 작품은 윤리적 글쓰기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김정한은 민중 개념을 날카롭게 벼려낸 자신의 무기가 자신의 한계가 되어 버린 비극을 극복하지 못했다. 민중에 절대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개념에 맞춰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한은 이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한 채, 〈슬픈 해후〉의 성수를 역사의 뒤안길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김정한이 풀지 못한 고민을 이어받아 그를 넘어서야만 한다. 동질적 삶과 감정은 때로는 집단 정체성의 토대로 작용하지만, 때로는 폭력으로 작용한다. 일정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삶을 훈계하려 들고 ‘계몽’시키려 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중은 저항성을 박탈당한 채 억압의 기재가 되어버린다. 김정한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단일하고 단단한 집단 정체성이 아닌 특정한 순간에 포개질 뿐인 다양한 삶의 결을 포착해야만 한다. 동질성으로 묶지 않고도 공통의 것을 벼려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폭력이 아닌 저항의 토대로서 공통의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나는 여기서 김정한의 현대성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