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歪): 더 카르텔〉, 〈당신의 한 표가 위험하다〉
〈건국전쟁〉의 감독 김덕영이 연출한 〈당신의 한 표가 위험하다〉와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왜歪: 더 카르텔〉은 모두 2020년 4‧15 총선이 부정 선거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선거 시스템이 취약하고, 중국과 그들의 사주를 받는 세력이 선간위 해킹을 묵인하고 득을 본다는 것이 영화의 골자다. 〈당신의 한 표가 위험하다〉는 부정 선거론자의 핵심인 민경욱의 내레이션으로 독일, 대만, 미국을 오가며 한국 선거 시스템의 ‘형편없음’을 고발한다. 한편 〈왜: 더 카르텔〉은 그들이 부정 선거의 ‘증거’라 주장하는 것들을 더 상세히 소개한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해서 두 영화를 봤다. 그리고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이들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두 영화 모두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제작 의도와는 다른 목적에서다. 영화가 부정 선거를 고발하는 대목에서, 나는 종종 실소하고 말았다. 부정 선거의 증거라기보다는 상상력의 결과로 보였기 때문이다. 선관위에서 만들었다는 해명 영상과 대법원 판단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이 음모론의 허술한 토대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제2의 6‧25전쟁’(〈당신의 한 표가 위험하다〉)과 같은 표현과 두 영화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중국에 대한 노골적 적개심 등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사실을 따지기보다는 이념 전쟁을 하는 중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부알못’, ‘부잘알’, ‘부부충’으로 나눈다(〈왜: 더 카르텔〉). 각각 부정 선거 알지 못하는 사람, 부정선거 잘 아는 사람, 부정 선거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벌레)의 준말이다. ‘부부충’인 나는 개별 증거보다는 그들의 세계관과 그 세계관이 등장한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고 싶다.
그들은 부정 선거가 제도화되었다고 주장하고, ‘거악의 카르텔’이 이를 감춘다고 믿는다. 4‧19로 민주주의를 구한 세대가 세월이 흘러 다시 부정 선거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섰다고 말한다. 2023년 제작된 〈왜: 더 카르텔〉은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부정 선거 음모론을 언급한 윤석열이 이 모든 비리를 밝혀줄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그가 ‘진실’을 파헤치기를 외면한다면 그 역시 심판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그들의 바람을 현실화하려는 ‘구국의 결단’을 내렸고, 그들의 ‘꿈’을 실현하려는 이 실패한 시도는 한국 보수에 종언을 고했다.
음모론은 원래 약자의 것이다. 약자는 공식 권력 기관을 장악하지 못했기에 부당하다고 느끼는 현실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빈틈을 추론과 상상력으로 연결한다. 그 결과가 음모론이다. 흥미로운 건 이제 한국에서 음모론의 주체가 진보가 아니라 보수라는 점이다. 보수의 주류가 된 ‘아스팔트 우파’라는 표현이 대변하듯, 모든 국가 시스템과 기관의 한가운데에 있던 보수 세력이 이제는 자기 말을 들어달라며 광장에서 호소하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상식은 바뀌었다. 그 상식을 담지하는 주류 세력도 마찬가지다. 도전하는 자와 도전받는 자의 위치 역시 완전히 뒤바뀌었다. ‘건국’과 ‘산업화’의 유산으로만 연명해온 사람들은 그들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어린 ‘민주화’에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두 세력 모두 바뀐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기민한 보수라면 〈건국전쟁〉의 흥행에 기뻐하기보다는 위기감을 느꼈어야 했다. ‘영광스러운’ 과거의 향수에만 젖은 세력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성과를 다룬 수많은 ‘좌파’ 영화 역시 마찬가지 아니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번,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는 건국과 산업화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젊다.
나는 모든 음모론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극단적 음모론자의 ‘망상’이 ‘진실’로 드러나는 경우를 상상하며 종종 쾌감에 젖기도 한다(아마 어느 고집스러운 꼴통이 홀로 진실을 추구하는 인상적인 영화 〈왓치맨〉을 본 이후부터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 선거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정치 지형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변화다. 우리는 지금 주류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소란스러운 혼란기를 지나고 있다. 이 소란 끝에 주류의 자리에 확고히 자리 잡을 세력이 자신들이 표방하는 가치의 진정한 의미를 잊지 않고 현실에서 구현해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