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런던 프라이드>(2014)
대처의, 보수주의의, 경찰의, 언론의 타깃이 바뀌었다. 동성애자에서 광부로. 동성애자 마크는 자신이 다시 타깃이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광부를 지지하는 동성애자 모임인 LGSM(lesbian and gay supports the miner)을 조직했다. 그렇게 오래된 편견의 적대를 녹이는 일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게이도 광부도 반대했다. 게이들은 마초들에게 두들겨 맞았던 기억 때문에, 광부는 게이와의 연대가 수치스러웠기 때문에 반대했다. 그러나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포옹을 나눈 후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들의 관계는 추상적 집단을 개별적 얼굴로 변화시켰다.
그들은 서로의 욕망을 일치시키려 하지 않았다. 어떤 이성애자 남성 광부는 좋아하는 여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게이에게 춤을 배운다. 어떤 중년 여성들은 게이 포르노 잡지를 본 후 수십 년 전 과거를 떠올리며 깔깔댄다. 무엇보다 게이들은 밤새 클럽을 밝혀줄 전기가 필요하다. 광부가 캔 석탄에서 나오는 전기가.
이토록 다양한 욕망, 마음, 생각'들'. 연대는 그 복잡한 것들이 포개지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그 겹침의 자리가 엉망인 세상을 돌파하는 힘을 낳는다. 서로의 욕망을, 감정을, 삶을 존중해야 한다는 소박한 원칙에서 강력한 저항의 힘이 태동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내 희망을 꺾는다. 지극히 게이스러운 방식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자들이 희망을 말하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이들은 가족과 불화하고, 폭력에 시달리며, 에이즈로 죽는다. 그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미래가 없는, 꺼져가는 삶.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광부들이 있다. 광부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그들은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게이에게 미래가 있다면, 게이도 미래를 벼려낼 수 있다면 시작점은 바로 여기다. 미래 없이 죽어가는 삶을 기억하고 함께 나눈 누군가로부터, 우리의 미래는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