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크고 작은 벽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가령 부부끼리 의견이 달라 한쪽만 원한다든지, 공교육 기관인 학교와의 문제가 생긴다든지, 경제적인 문제나 부모의 건강상태를 비롯한 많은 돌발상황.
나에게도 닥친 것이 있었는데…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대반전 반응!
큰아이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이야기드릴 때는 다행히 무사통과였다. 사실 말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라고 가볍게 생각해보려 했으나, 앞서 이야기했듯 평범치 않은 선택이라 말씀을 드렸다.
주로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나(엄마). 그래서 친정에서는 “힘들지 않겠니?”라는 이야기로 시작해, 교육열 높은 나의 엄마의 우려로 끝났다.
시어머니는 잠시 근심하시는 듯하다가 “기도하겠다”라고 하셨고, 시아버지는 “잘해나가면 된다”며 격려해 주셨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제주도 세 달 살기 이후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한 달여간 시가에 머물게 되었다. 시아버지의 눈에는 그 시간이 탐탁지 않게 보이셨던 것 같다.
나도 안일했다. 제주에서의 세 달은 여행 자체가 공부라 생각해 마음껏 즐기고, 마음껏 놀면서 교과 공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온 뒤에는 시가로 친정으로 떠돌이 생활 중이다 보니 어설픈 환경에서 아이에게 공부를 각 잡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동생들과 맘껏 놀고, 자유롭게 책을 보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게 편했다.)
그렇게 나의 자부심이었던 계획서와 시간표, 동화책 프로그램, 차근차근해나가던 영어 시간, 무엇보다 함께 나누던 말씀 읽기 시간들이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시아버지의 말씀이 떨어졌다.
“어렸을 때 배운 건 평생 가는 거다. 나도 어릴 적에 아버지가 서당에 보내주셔서 천자문을 배웠는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잘 가르쳐라.”
(결국 모든 잔소리는 학교를 보내라는 부드러운 협박?이다ㅋㅋ)
나도 어디서든 어떤 상황이든 자로 잰 듯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시아버지의 말씀이 내 마음에 뚝, 하고 떨어졌다. 다 맞는 말이라 이 상황이 더 안타까웠다.
그래도 우리의 집에서만큼은 해낼 수 없는 환경임에는 분명해 계획을 전폭 수정하고 조금씩이라도 첫째를 중심으로 아이 셋을 데리고 다시 작은 학교를 꾸려나갔다.
홈스쿨링은 ‘나만의 확실한 주관’ 없이는 정말 하기 힘든 일이다.
누가 뭐라 해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강한 확신이 필요하다.
그 확신이 있어야 흔들릴 때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완벽하게 정상화된 건 아니다.
우리 집이 아닌 곳에서, 제대로 된 책상도 없이, 완벽한 환경도 없이, 나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과 공부뿐만 아니라, 아이가 삶 속에서 배움을 만나고, 신앙으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키워갈 수 있도록.
어쩌면 홈스쿨링은 매일 흔들리고 다시 붙잡는 일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더 깊이 알게 된다.
오늘도 흔들리지만, 다시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또 한 발짝 내딛는다.
그게 우리가 걷는 홈스쿨의 길이다.
물론, 시아버지의 잔소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 보내야지. 네가 너무 힘들잖아.”
“요즘은 교육도 다 체계적으로 돼 있잖니.”
하실 때마다 마음 한켠이 쿡쿡 찔린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나도 힘들고, 때로는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더 속상하다.
하지만 그럴 때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도 저… 교사 자격증 있거든요, 아버님…?’
혼자 피식 웃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