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유서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하루종일 고민을 했나..

by 곰스토리

"유서"라는 단 두 글자만 새벽에 써놓고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출근했다가, 종일 일과가 끝이 난 뒤 돌아와, 저녁시간 다시 컴퓨터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니 유서스럽게 처연하게 보이는 글자 두 개만 달랑 써져 있다. "유서" 다른 사람의 유서를 본 적은 있어도 커뮤니티의 유서 쓰기를 하더라 등등의 이야기만 들었지 내가 유서를 쓰는 건 처음이다.


뭐라고 써야 할까 어떤 말로 처음을 시작해야 할까? 가족에게 써야 할지 모든 대중을 놓고 써야 할지 가족이 나의 유서를 본다면 어떤 아픈 상처가 될지에 대한 생각이 막 떠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뭐라고.. 그저 조용히 마흔하고 여덟 해를 살다 가는 나를 위해 울어줄 이 있을까? 온갖 감정에 휩싸여 쉽사리 쓰여지지 않는 유서 쓰기다. 혹 유서 쓰기에서 베스트셀러 같은 글을 쓴 사람은 혹시 있나? 어떻게 썼길래.. 그런 생각을 해보며 조용히 쓰기에 몰입해 본다.


결론은 내 맘대로 써보기 마지막을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앞두고 어떤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할까라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생각하지 않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야 정신이 차려지는 듯하다.


먼저 꼭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내 피붙이 언니에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우리 언니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픈 언니! 사업에 실패 후 많은 아픔을 혼자 감당하며 살아가는 언니에게 얼마 전 모진 소리를 해댔던 못난이 동생을 용서해 줘! 마치 나 혼자만 언니에게 다 준 것처럼 말해서 미안해.. 나만 힘든 줄 알고 살아서 미안해.


생각해 보니 난 엄마가 나만 없는 걸로 살았더라고 어느 날 문득 4살 아이에게 그야말로 엄마는 전부였을 텐데 방금까지 함께 했던 엄마가 나로 인해 세상을 떠났을 것을 그 어린 나이 원망하는 법도 몰랐을 언니, 그때부터 어린 나이에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했던 언니의 삶이 언제부터 인지 더 가슴 아팠지. 오뚝이처럼 잘도 견뎌준 언니가 고맙고 그랬어. 사업에 실패 후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언니 모습에 많이 안타까웠지만 동생인 나 역시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내 마음 원하는 데로 돕지 못해 미안해. 훗날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내가 언니가 되었든 동생이 되었든 되어서 이 세상에 제일 좋은 동생 혹은 언니가 되어줄게. 왜 죽을 날 앞두고 이런 말을 할까?


그리고 내 남편에게.. 어제 교회 다녀온 뒤 예배시간 중에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고 풀지 않아서 교회에 있을 시간을 모르는 남편이 아니기에, 충분히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시간에 부재중 5통의 통화 버튼을 눌러야 했던 남편님. 놀라서 전화했더니 "내가 내 각시 목소리 듣고 싶을 때 전화해도 맨날 전화도 안 받는 거 성질이 난다"라며 소리치는 남편님아! 그 말이 아리송하게도 좋은 말인지 혼나는 말인지, 분간이 안 되는 무딘 나랑 살아줘서 난 결론이 너무 행복했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당신이 만들어 놓은 어장에서 신나게 마음 편하게 놀게 해 주고 싶다던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프러포즈라고 한다며 구박 들으며 하던 그 말 지금까지 생각해 보니 내가 그렇게 살았더라고 당신 때문에.. 마음만큼은 편하게 해 준다더니 사실 편하진 않았어.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당신 덕분이지 뭐 고맙게 잘 살다가 고마워.


그때 언젠가 내가 천국에서 행여 만나거든 아는 채 하지 말라고 하면 죽여버린다는 말 죽이진 않겠다고 지난번 편지에서 썼잖아 그 말 여전히 유효해. 천국의 멋진 카페에서? 아님 당신이 좋아하는 순대 국밥집이 있으려나 싶지만 내가 먼저 가서 찾아볼게 좋은 곳에서 기다릴게.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들 끝까지 마무리하고 가지 못한 삼 남매 잘 부탁해.


사랑해서 낳은 아이들 아빠를 많이 좋아해. 그런데 당신 일만 하느라 제대로 대화도 많이 못 한 녀석들 매일 사랑한다고 못해도 이틀 아니 삼일에 한 번씩만 해주라. 부탁할게 첫아이라고 멋모르고 태어난 우리 큰아들 자존감 떨어지지 않게 많이 내 몫까지 아빠가 많이 높여줘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아들 최고라고 그냥 아들이 하는 말 들어주기만 해 줘. 이제는 다 커서 제대하면 본인의 앞가림 위해 분주하겠지 뒷방 노인네 되는 거 시간문제니 아들한테 잘하길 바라.


딸아이 우리 집에 소중한 보물이잖아 딸 없는 집안에서 딸을 낳았다고 정말 기뻐하시던 시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당신이 그토록 예뻐하는 딸 요즘 한껏 사업가가 될 거라는데 우리가 봐도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고 그렇잖아? 마음이 예쁜 놈 잘 골라서 시집 잘 보내줘. 딸을 낳은 후 내 가장 큰 버킷 친정엄마가 되는 거였는데 끝내 못하고 가게 되었네. 친정 아빠 노릇 우리 아빠처럼 하면 진짜 천국 문에서 기다리다가 진짜 안 볼 거야!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예쁜 말만 딸에게 해줘 그것만 하면 되지 않을까?


사랑하는 우리 막내 어떤 사람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또 어떤 사람은 아빠 판박이라고 묘하게 우리 두 사람을 요술 판박이처럼 닮았어 그렇지? 딸인 줄 알고 낳았다가 그때 당신 수술실에 대실망하는 모습 진짜 웃겼거든 누구 맘대로 딸 하나 더 낳을 때까지 낳는다고 큰소리치더니 막상 넷째 생길까 봐 무서워하던 당신 그럴 때 딱 쫄보가 어울렸지.


우리 막내의 꿈 잘 이룰 수 있도록 좀 많이 도와줘 고등학교 때 교복 입은 여자친구 결국 사귀어 보도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게 생겼다고 아쉬워하는 엉뚱 새끼 우리에게 늘 사랑스럽게 살가운 우리 막내가 제일 마음에 걸려. 엄마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고 막둥이가 종종 말했었거든 잘 살펴줄 거지?


마지막으로 내 사랑하는 내 새끼들에게..

엄마는 너희들 때문에 너무나 행복했다. 그래서 미련도 없는데 너희들을 두고 간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해 하지만 애들아! 비록 엄마는 48년의 삶이었지만 너희들은 100살까지 엄마가 아빠가 조금 부족하지만 주었던 사랑의 열매를 맺어 주길 바란다. 엄마가 너희들 안에 꼭꼭 심어 두었던 그 사랑의 씨앗들이 잘 자라서 훗날 큰 열매로 풍성한 삶이 되길 엄마가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 사랑하고 고마워.

그리고 집안에 모든 곳곳에 엄마 물건들 엄마가 정리하고 갈게 또 하나 너희들에게 줄 유산으로 남긴 필사 성경 말이지. 새벽마다 쓰던 성경 한 권 남기고 간다.


흑흑..

가상으로 써보는 유서였지만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죽음을 예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집안 곳곳 깔끔하게 한눈에도 내가 없어도 바로 찾아 쓸 수 있도록 정리도 하고 미루어둔 아이들의 사진 정리도 하며, 또 직장에서는 매일처럼 내가 하던 업무들의 파일들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결국 모든 삶이 정리가 필요하겠구나였다.

정리된 삶을 살다가 천국으로 떠나야 하는 날 휠 휠 떠나는 죽음을 준비하는 삶. 삶이란 잘 죽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오늘 유서 쓰기를 하며 얻은 것이다.


오늘부터 당장 유서에 쓴 대로 하나씩 정갈하게 정리해 가며 아쉬웠던 말들도 사랑들도 미련 없이 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잘 살아 보련다. 유서처럼..

쓰는시간-gom_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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