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0년에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지방에서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내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COVID-19’라는 태어나 처음 들어본 질병이 탄생했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서울에 올라가면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을 실컷 보고 싶었다. 참여하고 싶었던 다양한 모임도 있었고, 매일매일 근사하고 맛있는 식당과 카페에 가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과 만나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삶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혹여 무언가를 하더라도 늘 눈치가 보이고 신경이 쓰였다.
고로 즐겁지 않았다.
돈과 시간만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돈과 시간이 있더라도 시대를 잘못 만난다면, 내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떤 여건과 상황이 맞지 않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못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을까?
COVID-19가 창궐하던 그 시절은 벌써 4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3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에 이르렀다. 단순하고 즐겁게 살고 싶었던 30대 중반, 그때의 나와는 달리 30대 후반의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고, 나와 세상에 대해서 단순한 희망만을 품고 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단순히 돈과 시간만 있다면 할 수 있었던 것들을 꿈꾸던 나는, 이제는 COVID-19가 아니더라도 쉽게 갖지 못하는 것들을 꿈꾸고 있게 되었다.
뭐든 다 할 수 있다 여기며 떵떵거리던 나는, 그 사이 세월의 풍파를 인정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더라도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고,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스물아홉의 나는, 30대에 진입하는 순간 세상이 크게 달라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서른의 순간, 나는 슬퍼했다. 그러나 그 슬픔의 순간에도, 나는 분명 자그마한 희망을 품고 있었고, 지금과 같은 30대가 되는 것을 상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 당연한 인정을 받으며 후배들에게는 든든하고 존경받는 중간관리자가 되어 있었어야 했다. 가끔 다투며 속상해하는 날은 있었겠지만 의지가 되는 남편이 있었어야 했다. 속 썩이며 고집불통이라 잔소리하다가도 또 어떤 구석 나를 쏙 빼닮아 미워할 수 없는 자식도 둘은 있어야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힘들다, 어렵다, 속상하다 하며 친구들과 맥주 한 잔 나누는 밤도 있었어야 했다. 그런 것들이 내가 당연히 되어있을 줄 알았던 지금의 내 나이, 나의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른 후반의 내가 원하는 나의 40대의 모습은, 20대의 내가 당연스럽게 상상했던 ‘내’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20대의 내가 꿈꾸던 지금의 나는 ‘직장 상사’가 되었어야 했고, ‘누군가의 와이프,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역할’의 사람이 아니라, ‘어떤 됨됨이’를 갖춘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어찌 되었든, 나는 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이유를 찾아줘야겠다. 지난날 내가 이유를 찾지 않고 상상만 했기에 특별한 목적 없이 흘러갔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바람직한 이유를 찾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되고 사람이 되어보며 분명한 목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버킷리스트를 완성해나 가보아야겠다.
첫 번째 버킷리스트.
□ 삶의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가며 브런치 매거진을 브런치 북으로 반드시 완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