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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하고 싶어요

첫 번째 하고 싶은 것

by 정말로 Jung told

친구가 가족들과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며칠 만에 출근을 했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30대 후반이 되고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평일 오전 9시와 오후 6시 사이의 시간대에 오가는 메시지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아마 내 나이, 친구들의 보통의 일상에서 회사에 출근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더 자유롭고 편안해서겠지.


아무튼 친구는 그 일주일간의 휴가기간 동안 너무나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어서 오히려 출근한 지금 순간이 편안하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 푸념들 사이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친구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아, 나도 일하고 싶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던 시절, 누구보다 빠르게 취업에 성공했다. 대학시절부터 꼭 가고 싶어 했던 세 곳의 회사 중 한 곳이었다.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나는 부지런한 대학시절을 보냈고, 다양한 도전을 해내 상을 받고 인정을 받았기에 누구보다 훌륭한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지런했던 나의 대학시절 결과물을 바탕으로 원하는 회사에 취업한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돌보아야 할 것이 많은 일이었다. 그러나 잘 해내고 싶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짐을 내가 대신 졌다. 무거웠고 또 버거웠다. 어떤 날은 출근을 위해 회사 계단을 오르는 데, 내 두 다리의 무게가 각각 50kg쯤은 되는 것 같았다.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늘 깊은 한숨이 앞섰다. 그러나 내가 무거움을 느끼며 앞을 향해가는 것에 비해 원하는 만큼의 보상은 돌아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첫 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지금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기다려보자.”


그래서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리고 더 잘 해냈다. 더 많은 일을 했고,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경력이 쌓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아졌고, 해야 할 일도 더 많아졌다. 여유가 생길만하면 새로운 일이 또 벌어졌다. 그래, 그런 것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렇게 계속 내가 살아가도 괜찮을까?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맞을까?’ 하는 고민들이 몰려왔다. 두 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금까지 정말 고생 많았어. 잘해왔으니까 다른 부서로 이동해서, 좀 새로운 경험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해 볼게. 조금만 더 기다려봐.”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렸다. 새로운 곳,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게 되면 나아질 것 같았다. 새로운 커리어가 쌓이고, 다양한 기회를 통해 좀 더 나은 내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같은 동료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내 삶을 바꿔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직을 했다. 더 큰 회사, 더 좋은 직책으로. 그리고 세 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 거기에 합격했어? 아 주임이나 대리가 아니고 과장으로 가는 거야? 이야. 대단하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좋은 사람이었는데, 더 챙겨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네.”


그리고 마지막 사직서는 수리되었다. 그렇게 2010년 11월 3일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2019년 12월 31일 첫 사회생활을 마무리했다. 9년 2개월 동안 세 번의 사직서를 제출했고, 마지막의 순간의 사직서는 결국 수리되었다.


그 사직서가 수리될 수 있었던 성공적인 이직이라 여겼던 회사에서는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둬버렸다. 나는 첫 번째 사회생활을 통해 닳고 닳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닳지 않았던 것이다.


더 큰 회사로 옮겨와 더 대단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같은 업계에서 9년을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경력직 과장으로 이직을 했으나, 결국 나는 내 밑 대리에게 일을 배워야 하는 과장에 불과했다. 나는 그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나 자신이 몹시 못마땅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이라 믿었는데, 나 자신이 초라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다. 늘 지하철 막차 시간에 퇴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해냈다. 커다란 행사의 진행을 맡고, 회의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여전히 과장이라는 이름표가 부끄러운 순간들도 불쑥 찾아왔다. 차가운 12월의 밤공기를 느끼며,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 맞는지, 나 스스로 왜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지, 이 회사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서술형의 답은 찾지 못했지만, 단답형의 답은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요’.


이직한 회사에서의 사직서는 몇 명과 면담을 끝내고 쉽게 수리되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일하던 주임은 내가 퇴사를 앞두게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커피 한 잔 하며 말했다.


“과장님, 저 사실 그동안 과장님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매일 야근하고, 일에, 사람에 시달리면서도 늘 웃으셔서요. 정신력 진짜 대단하다 싶었거든요. 근데 요 며칠 과장님 얼굴이 너무 안 좋으셔서, 걱정했었거든요. 과장님, 저 알죠? 미국에서 멘탈트레이닝 전공한 사람이잖아요. 이제는 과장님도 많이 힘드시구나 싶었는데, 퇴사라니. 그래도 저 이해해요. 과장님 진짜 고생 많았어요. 이렇게까지 힘들게 일하지 마세요. 남은 일 생각하지 말고 푹 쉬어요.”


그랬다. 나는 이직한 그곳에서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다. 지쳐있었다. 더 이상 버텼다가는 내 영혼이 갉아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성공적인 이직이라는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나 자신이 이토록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나는 10년간 내가 머물던 세계에서 단단히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세계였지만 결국 나 스스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쫓겨난 기분도 들었다. 자의든, 타의든 나는 달라져야 했다.


그렇게 나는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다.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한 기분으로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 학교에서 발버둥 쳤다. 그렇게 지독하게 괴로운 날도, 무척이나 지겨울 때도, 때로는 버거움에 서러웠던 회사생활을 그만두었지만, 지난 10년의 시간과는 달리 여유가 넘치던 대학원 생활에서도 나는 여유를 온전히 만끽하지는 못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얻을 수 있었던 나의 신분이 그립다. 적다고 핀잔하더라도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과 가끔 삶에 숨통을 틔워주던 보너스도 그립다. 늘 쌓여있던 해야 할 일들을 시간 맞춰 끝내고 한숨 돌리며 퇴근하던 그 순간도 그립다.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나가며 나 스스로에게 효능감을 느끼던 그 감정도 그립다. 무엇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마무리하고 맞이하게 된 휴일과 며칠간의 휴가를 이용해 훌쩍 떠났던 그 여행길이 그립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열심히 일하지 않은 나는, 현재 어떠한 여행길에서도 그전에 비해 더 훌륭한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학원생이 되어 학업에 정진하는 것이 단순히 노는 것은 아니지만, 10년간의 직장생활에서 맛본 치열함은 까마득해진 것 같다. 치열함에서 벗어나 느끼게 된 여유의 순간이 나는 그리 편안하고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일 하고 싶다.

치열한 일상을 보내며, 하루하루 다시 긴장하며 보내게 되겠지만, 적당한 긴장감을 즐기며 적당한 스트레스를 삶의 자양분으로 여기며, 그렇게 하루하루 더 성장하는 나를 느낄 수 있도록 이제는 일해야겠다.





지치고 상했다 생각한 내 영혼에게 회복이 찾아왔다는 신호가 온 것이다. 40대가 되기 전에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싶다. 다시 첫 사회생활을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겠다.


두 번째 버킷리스트.

□ 내년에는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내 삶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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