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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친구와의 대화가 지루해질 때

by 맨오브피스

‘허무함 극복하기’를 실천하면서 나의 관심사는 한쪽으로 쏠렸다. 어떤 삶을 살아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다. 급상승한 주식, 새로 발견한 맛집, 할인 중인 게임, 웃긴 쇼츠 영상에는 놀랍도록 흥미가 떨어져 갔다.


친구들과의 시간은 즐거웠지만 반쯤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 안 하고 놀고먹고 싶다는 친구의 푸념은 거슬리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가 재미없어졌고,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에 생각할 거리가 하나 있었다. '일 안 하고 편하게 살면 최고 아닌가?'라는 질문에 나는 확신을 갖고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는가? 그 안락함이 나에게 주어진다고 했을 때, 정중히 사양할 자신이 있는가?


편한 삶이 최고라는 건 사는 내내 들어온 말이고, 그 말을 부정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는 편하고 즐겁게 살고 싶은 게 아니야. 버러지 같은 모습도 똑바로 쳐다보면서 살고 싶은 거라고!'라면서 생각의 몸부림을 쳐도 이미 주입된 생각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에는 어떤 죄책감까지 섞여있었다. 친구랑 놀아도 신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 친구들과의 관계가 약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렇다고 내가 추구하는 바를 포기할 순 없고… 어떡하지?


비슷한 가치관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뭐가 그렇게 진지해~ 그냥 사는 거지"라는 핀잔을 듣지 않고, 속 시원히 진심을 내뱉을 수 있는 무리. 우정을 과시하기보다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부족에 가까운 집단. 나 혼자 진지빠는 것도 좋지만, 다 같이 진지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


나는 목표를 하나 세웠다. 메모장에 '의미 있는 관계 1개 새로 만들기'라고 적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대화량을 늘려갔다. 평소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 회사 동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대부분의 대화는 그다지 맞물리지 않았다. '의미, 본질, 공허' 이런 키워드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보다는 '즐거움, 행복'에 초점이 맞춰진 대화가 많았고, 탐색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분명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다 평소에 별로 접점이 없는 회사 동료 2명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왠지 그날은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집단은 말이 잘 통했다. 우리는 본질이라는 주제로 한참 떠들었는데,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마음속 공허감이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처음 술 먹는 사람들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아내 외의 사람과 진심을 나누는 대화를 한 적이 언제였던가? (공허한 마음에 대해서는 아내에게도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털어놓은 후 위로에서 적당히 마무리될까 봐.)


술자리는 새벽 3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택시 타고 집에 도착한 나는 메모장을 폈다. '의미 있는 관계 1개 새로 만들기'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날의 나는 눈꺼풀이 제대로 떠지지 않을 정도로 거하게 취했었지만,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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