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봉협상을 끔찍하게 못한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이 정도 금액을 원한다고 말하는 게 왠지 힘들다. 머리로는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데, 입술은 떨고 있다. 눈 깜빡거리는 속도도 빨라진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운 좋게도 연봉 이야기는 전부 이메일로 이루어졌다. 한시름 놓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베를린의 급여 수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검색을 해 봐도 뜬구름 잡는 정보뿐이었다. 폭스바겐 엔지니어의 연봉 정보는 있어도, 모바일 광고 회사의 고객 관리를 하는 사람의 연봉 정보는 없었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협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 베를린 본사에는 마테오라는 동료가 있었다. 비록 원격이지만, 1년 가까이 함께 일하면서 손발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둘 다 게임을 좋아해서 스카이프로 잡담도 자주 나눴다. 그에게 연봉에 대한 고민상담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약간은 장황한 메일을 보냈다. 현재 본사와 협상 중인데, 어느 정도가 현실적인 범위냐고 물었다. 회사 동료가 아닌 친구로서 묻는 것이지만 불편하다면 말해주지 않아도 이해한다는 문장도 추가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대략적인 금액 범위를 알려줬고,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마테오가 알려준 금액 범위는 내 예상보다 적었다. 독일이니까 연봉이 크게 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베를린은 독일의 다른 도시와 비교해 연봉 수준이 낮은 편이다.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은 장점이지만, 세율은 여전히 높다. 그리고 개발 스킬도 없고 컴퓨터 공학 전공이 아닌 내가 처음부터 높은 연봉을 노리는 것은 무리였다. 아쉬웠지만 일단 베를린에 자리를 잡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인사부와 연봉 협상을 시작했다. 마테오가 일러준 금액보다 조금 더 높게 불렀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의 강점을 어필했다. 본사는 내가 제시한 것보다 약간 금액을 낮추고 싶어했다. 몇 번의 메일이 오가다가, 너무 세게 주장하다가 없던 일이 되면 어쩌나 걱정될 때쯤 적당히 합의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의견을 밀어붙이지는 못 하는 편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내어주면서 윈윈하는 것을 선호한다. 사실 윈윈이 아닌 회사의 승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며칠 후 근로계약서의 최종본을 받았다. 서명은 독일에 가서 하기로 합의했다(아직 전자서명이 활성화된 때가 아니었다). 취업 비자 발급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내가 독일 도착 후 직접 수령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나 입국은 어떻게 해? 비자도 없고 귀국 티켓도 없으니 입국심사에서 날 의심스럽게 볼 텐데."
"비자는 아직 안 나왔지만 노동부에서 너의 근로를 허락한다는 편지는 도착했어. 그 편지의 스캔본을 보내줄게. 비자 대신 그걸 보여주면 될 거야."
인사 담당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스캔본만으로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걱정해서 무얼 하나. 담당자가 된다고 하니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인쇄한 계약서를 입국심사 때 보여주면 될 것이다. 그것도 안 되면 인사 담당과 통화를 시켜주면 될 것이다. 약 한 달 반 뒤에 독일로 떠나기로 일정을 잡았다.
독일 근로계약서와 노동부 편지 스캔본. 첨부 파일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 기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문서화되어 눈 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감격을 간직한 채로 퇴근했다. 늘 그렇듯이 만원 지하철이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샤워로 강남의 때를 씻어낸 후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다. 게임을 하며 머리를 비우다 금세 피곤해져서 불을 끄고 누웠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덕순이었다. 독일에 혼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간다면 꼭 덕순이와 함께 가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을 그려봤다. 한 달 반 후에는 베를린 본사에 출근해야한다. 덕순이와 함께하려면 덕순이도 독일 비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부부라면 그녀는 배우자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아니, 그전에 덕순이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프로포즈는 어떤 식으로 하는게 좋을까, 결혼은 좋은데 독일은 가기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