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당 서현역 근처의 파스타집으로 향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가던 곳이다. 덕순이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그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각자 파스타를 주문해서 서로 맛 보라며 포크로 돌돌 말아 상대방 그릇에 올려줬다. 그러던 중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어색함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결혼해줬으면 좋겠어."
결혼하자면 하자고, 하지 말자면 말자지, 해줬으면 좋겠어는 뭘까. 말하고 나니 쑥스러워서 눈과 코를 번갈아 보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프로포즈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같이 독일 가서 살자."
그녀가 나와 결혼해 함께 독일로 갈 것이라는 확신이 80% 정도는 있었다. 왜 독일로 가고 싶은지, 어디서 일 할 것인지, 비자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설명했다. 현실적 상황을 그녀가 정확히 알고 대답해 주길 원했다. 그리고 다행히, 덕순이는 날 받아주었다. 나와 결혼도 하고, 독일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평소의 대화로 돌아왔다. 당시 그녀가 흠뻑 빠졌던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이야기를 했다. 연인인 동시에 친구같은 느낌이 좋아 덕순이와 결혼하고 싶었다. 화려한 이벤트도 감동의 눈물도 없어서 정말 이걸로 된 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분명히 답을 해주었다.
내 안의 80% 확신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언젠가 각자의 결혼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깊은 의미 없이 그저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말했다.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식은 생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어도 각자의 공간이 뚜렷하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마도 이 때 덕순이와의 결혼을 확신했던 것 같다.
나 또한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다. 결혼식은 생략하기로 자연스레 의견이 맞춰졌다. 서운해 할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는 마침 급히 독일로 가게 되었다는 좋은 핑계도 있었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큰 반대 없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다. 대신 아예 생략하는 것은 아쉬우니, 가족들끼리만 모여서 치르는 것으로 정했다. 친구들과는 따로 만나 밥을 사주며 배우자를 소개했고, 친척들에게는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결혼식은 양가 가족들이 모여 결혼 예배와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식사만 하면 허전할 것 같아 결혼 예배를 제안했는데(우리집은 기독교 집안이다), 덕순이 집에서도 찬성해 주었다. 사회는 교회 목사님이신 나의 외삼촌이 맡아 주었다. 장소는 평소에 가 볼 일 없는 근사한 중식당의 별실이었다. 넓은 테이블에 다같이 둘러 앉아 있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서로가 대화할 만한 주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다. 독일 이야기와, 덕순이와 나의 연애가 주로 거론되었던 것 같다. 다 함께 기도를 하고, 덕순이의 손을 잡고,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니 눈물이 났다. 원래 결혼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신부 아니었나? 그 자리의 모두가 우리를 축하해주는 모습에 감동했다.
"울었대요~!"
덕순이는 나를 놀렸다. 요즘도 가끔 놀리곤 한다.
식사 후 덕순이와 나는 가평으로 신혼 여행을 떠났다. 원래는 펜션에 짐을 풀고 아침고요수목원을 갈 예정이었지만, 둘 다 너무 피곤했다. 결혼식과 운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깔끔히 지우고 실컷 낮잠을 잤다. 저녁이 되니 시원한 여름 바람이 불어왔다. 발코니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이제 부부였다.
"독일에 가서도 같이 밥 먹고, 치우고 하겠지?"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뒷정리를 같이 하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를 봤다. 덕순이와 밥 먹고 설거지 하고 영화를 보다니. 같이 사는 부부였다. 머릿속에 독일에서의 신혼 생활이 자연스레 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