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으로 집 구하기

by 맨오브피스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마친 우리는 머리를 맞댔다. 베를린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작전을 짰다. 거주할 집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가지 시행착오도 겪어야 할 것이다. 둘이서 고생하는 것보다 혼자 고생하는 게 낫다. 그러니 일단 내가 먼저 독일로 떠나 자리를 잡고, 6개월 후에 덕순이가 합류하는 계획을 세웠다.


먼저 나 혼자서 6개월간 살 집을 물색했다. 베를린 월세난이 얼마나 끔찍한지 본사 동료들에게 가끔 들어보기는 했다. 들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실제로 검색을 해보고 현실을 깨달았다. 외국인 주제에 3개월치 급여명세서조차 없는 녀석은 후보자 명단 최하단에 위치한다. 베를린은 외국인 유입이 활발한 도시였고, 방을 구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집주인들이 굳이 나를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6개월 동안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서 지내볼까 생각도 했지만 돈이 문제였다. 글을 쓰는 지금도 베를린의 월세난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한국인의 정으로 어떻게든 비벼볼 수작으로 베를린 한국인 커뮤니티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다 벼룩시장 게시판에서 ‘WG 들어올 사람 구합니다’라는 글을 찾았다. WG는 한 집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사는 방식을 말한다. 룸메이트를 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원룸이나 부모님 집에서 사는 게 일반적인 한국과 달리, 베를린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집에서 방만 따로 쓰는 경우가 흔하다. 글을 올린 사람은 한국인 부부였다.


나는 그 부부에게 메일을 썼다. 꼭 나를 세입자로 뽑게 하고 싶어서 메일에 힘을 줬다. 그냥 ‘방 구합니다~’로 끝내지 않고, 나에 대한 정보를 빼곡히 담았다. 독일로 가는 이유, 이름, 성별, 나이, 회사 주소와 홈페이지, 희망 거주 기간, 개인 페이스북 주소까지 전부 적었다. 물건을 깨끗히 쓰는 성격이고, 하루의 대부분은 일하러 나간다는 내용도 넣었다.


그리고 나는 기적처럼 간택받았다. 부부가 메일로 방 사진을 보내 주었는데, 대학시절 자취방보다 훨씬 큰 방이었다. 창문도 널찍해 시원해 보였다. 낡은 집이었지만 그만큼 운치있었다. 월세는 월 500유로에, 보증금 500유로로 나쁘지 않았다. 위치도 사무실과 가까웠다. 직접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방을 빌려주다니. 나를 신뢰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분명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메일에서도 신뢰가 느껴졌다. 신뢰라는 것이 참 주관적인 것이긴 한데, 어쨌든 있었다. 운이 좋다고 느꼈다. 본사 동료들에게 집을 구했다는 소식을 전하니 거짓말하지 말라며 믿지 않았다.


내가 독일에 도착하는 날짜와 입주 날짜 사이에 2주 차이가 있어서 그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에어비앤비에서 지내기로 했다. 한국 휴대폰과 적금을 해지하고, 환전을 하고, 물건을 정리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공항에서 덕순이와 포옹을 하고, 눈물을 삼키며 보안검색대로 들어갔다. 덕순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뒤돌아봤지만, 입구에 세워진 벽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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