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1 Viva Voce
10월 말에 한국에 갔으니, 근 석 달만에 영국행이다. 아직 모든 것이 익숙하지만 이번에는 최종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영국의 박사과정 마지막 관문은 Viva Voce라고 하는 구술시험이다. 미국에서는 디펜스라고 한다고 들었다. 대부분 줄여서 '바이바(Viva)'라고 하는데, 약 2~3시간가량 전방위적으로 떨어지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해야 한다. 아무리 잘해도 완벽히 통과하는 경우는 없고 대부분 '일부 수정(Minor correction)' 결과를 받는다. 그러나, 좀 흠결이 있거나 부족하다고 판단이 되면 '중대 수정(Major correction)'을 받고, 완전히 수준 미달일 경우 '탈락(Fail)' 하게 된다.
논문을 읽고 또 읽고, 취약점에 대한 질문 리스트를 만들고 디펜스 논리를 개발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다. 그러기를 며칠..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2시 반으로 예정된 바이바를 연구실에서 차분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떨리진 않았지만 긴장이 되었고,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연거푸 물을 들이켰다. 결국 40분이나 일찍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혹시나 바이바 장소에 무슨 장치들이 있나 싶어 오전에 다녀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입은 정장은 생각보다 불편했고, 발에 꽉 끼는 구두는 마음까지 옥죄는 듯했다. 쉼 호흡을 하면서 논문의 구성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2시 20분쯤 지도교수님, 외부 심사자(External examiner)와 내부 심사자(Internal examiner)가 도착했다. 두 심사자들이 자리에 앉는 동안 복도에서 지도교수님이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고 귀띔을 해주셨다. 지도교수님은 딸을 데리러 자리를 비우셨고, 두 심사자들은 내게 밖에 잠시 나가 있으라고 양해를 구하고는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마 무슨 질문을 할 것인지 사전에 조정을 하는 듯이 느껴졌다. 유리창 안 블라인드 사이로 교수님이 펴 놓으신 페이지가 보였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갑갑했다. "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는 별 질문을 안 한다는 것인가? 뭘 물어볼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복도에 서 있었다. 1시간 같은 10분 정도가 지나자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15명은 충분히 들어갈만한 세미나실에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다. 두 분이 나란히 앉으시고는 내게 와서 앉으라고 하셨다. 서서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기에 약간 난감했으나, 2시간 이상 하게 되면 다리가 아플 수도 있겠다 싶어 한편으로 맘이 놓였다. 내부 심사자인 Kerry 교수님은 내가 1년 차 때 받았던 confirmation seminar의 심사자(examiner)이기도 하셨기 때문에 좀 친숙한 느낌이 있었지만, 뉴질랜드 특유의 억양과 빠른 말투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외부 심사자인 Caporale 교수님은 이태리 분이셔서 혹시나 질문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늦출 수 없었다.
전반적으로 잘 됐다는 상투적인 인사말과 함께 바이 바가 시작되었다. 일단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논문에 대해 전반적으로 간략히 설명해 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을 하셨다. 기왕이면 길게 하자는 전략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상세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논문의 모티브부터 구성, 방법론, 결론을 설명했다. 10년간의 업무 경험도 같이 설명하면서 단순히 아카데믹한 논문보다는 실제 정책 집행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논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내 느낌에 약 20분가량의 설명이 끝나고서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논문에 대한 질문은 대부분 평이했다. 답변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문제는 두 번째 논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논문이 가장 약한 부분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한참을 실랑이하시더니 갑자기 질문이 던져졌다. 비선형 방법론은 왜 쓴 건지 경제학적으로 답변하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선형 방법론으로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하기 위해 비선형 방법을 썼습니다. 당연한 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놓았는데, 잘 이해가 안 된다. 잘 납득이 안된다. 굳이 왜 이 방법이 필요하냐에 대해서 더 설명해보라고 하시는데, 어떤 답을 해도 마치 철벽을 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때부터 '중대 수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긴 밀당이 끝나고 나서 세 번째 논문으로 넘어갔다. 내심 가장 자신 있었던 논문이었는데, 교수님들 관점에서는 완성도가 높지 않아 보이는 듯했다. 내부 심사자 교수님은 이론적 배경이 거의 들어가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지적을 하셨다. 외부 심사자는 논문에 등장하는 트레이더들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 물어보셨다. 질문을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합리적이라 대답하면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구조가 타당성을 잃고, 비합리적이라 얘기하면 투자자들의 예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 초고난이도 질문이었다. 게다가 이론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그냥 좋은 테크닉이 있으니 한 번 적용해본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논문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혹평에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해졌다. 게다가 두 분의 질문 내용이 엄청나게 긴 데다 답변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이 질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한, 두 분의 질문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리서치 질문에 답하기 전 이론적 배경을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니 결론이 아무리 의미가 있더라도 학술논문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즉답을 피하면서 역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투자자의 합리성에 대해서는 1960년도부터 학자들 간 활발한 논의가 되어 왔고 아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 시장에서는 합리적인 투자자와 비합리적인 투자자가 동시에 상존한다. 그 누구도 완벽한 합리성 또는 비합리성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투자자들이 동일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치가 형성되는 과정은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즉 투자자들의 예상이 형성되는 과정은 합리성을 가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예측이 형성된 이후 투자자들의 투자행동이 실제로 일어나는 과정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상존한다. 내 논문은 행동을 관찰하는데 집중하고 있으므로 합리성/비합리성에 대한 가정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나오는 대로 떠들어댔다. 다행히 교수님들은 끝까지 내 답변을 경청해주셨다. 그렇게 3년 2개월을 평가하는 2시간은 막을 내리고 잠시 밖에서 대기하라는 내부 심사자 교수님의 지시가 있었다. 초조했다. '중대 수정'을 받을까 봐, 만약 그렇다면 한국에서 과연 할 수 있을까? 회사 복직은? 초조함이 쌓이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 되었을 때 지도교수님이 나타나셨다. 어땠는지 이야기해보라고 하셔서 그대로 이야기했다.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하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다 들어오라고 하신다. "Congratulation! you passed, 12주 안에 수정본을 완성해서 제출하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끝났다는 안도감도 들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마치 힘에 부치는 상대와 2시간 동안 계속해서 씨름을 하고 진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교수님들의 전반적인 평가는 '테크닉적으로는 거의 완성된 듯해 보인다. 다만, 영어 라이팅은 많이 부족해 보이고, 최종본은 전문 교정 서비스를 받아야 할 것 같다'였다. 외부 심사자 이태리 교수님 말씀을 그대로 옮겨 본다. "그냥, 타이포 몇 개 정도의 문제가 아냐. 문법도 엉망이고 표현도 제멋대로라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꽤 있어. 그리고 관사는 아예 다 빼놓고 쓰더라."
그래도 난 통과했다. 아내에게 결과를 알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박사과정의 마지막 관문을 가까스로 지나왔다.
박사과정 어드미션 레터를 받았던 날이다. 새벽 한시쯤 되었던 기억이다.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고 있었던가, 영어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메일 하나를 받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가슴이 벅차 집으로 뛰어갔다. 그 날을 기념하고 싶어 편의점에 들러 새우깡 한 봉지 콜라 한 병을 샀다. 다들 자고 있는 시간이라 누구 하나 깨우지 않고 아무도 없는 방바닥에 앉아 새우깡과 콜라를 먹으면서 배시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소리 죽여 웃었다.
아침에 깨어난 아내는 사정을 듣고 방바닥에 널브러진 새우깡 봉지와 빈 콜라병을 보면서 정말 지지리 궁상맞은 합격 축하파티라며 독설을 날려주고는 서둘러 출근했다. 바이바를 통과하면 그 의식을 다시 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 새우깡과 콜라병을 놓고서 혼자만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데, 급하게 시티센터로 가느라 학교에서 새우깡을 사지 못했고, 중국 마트에서는 그 날따라 새우깡은 보이지 않았다.
논문을 대신 제출해준 박사과정 후배 부부에게 밥이라도 사고 싶었는데, 집에 음식이 많다면 마침 그날 저녁 초대를 받은 터였다. 6시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을 테니, 부랴부랴 아이 옷을 파는 숍을 찾아 시티센터로 가는 바람에 학교 매점에서 새우깡을 사는 것을 까먹었다. 중국 마트에라도 팔면 샀을 터인데, 3개월 전만 해도 다른 건 다 없어도 새우깡은 있던 그곳에서도 그 날따라 안 파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후배네 집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후배는 원래 지도교수님을 대접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약속이 깨지는 바람에 엉뚱한 내가 대접을 받게 됐다. 마침 시간이 되신 한인교회 집사님도 자리를 빛내주셨다. 불고기를 중심으로 잡채에, 쇠고기 뭇국에, 삼겹살 구이에, 제육볶음에,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분 좋게 헤어졌다. 물론, 바이바 통과를 축하한다는 이야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듣고 말이다.
호텔로 가는 길에 문득 든 생각인데, 어떤 메시지가 담긴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나는 분명히 마칠 때도 시작할 때처럼 혼자 기뻐하는 의식을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천덕꾸러기 같이 불쌍하게 혼자 새우깡이나 주워 먹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과 멋진 저녁식사로 마지막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절대로 혼자 있지 않다고... 그렇게 인색하게 즐기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메시지는 아닐까?
후배네 집으로 걸어가면서 젊은 백인 친구들이 무리 지어 걸어오는 장면을 보게 됐다. 나도 모르게, 만약 우리가 바스에서, 또 영국에서 만났던 귀중한 인연들 없이 우리 가족만 바스에 떨어졌다면, 이 아름다운 바스가 지금처럼 그렇게 아름다울까? 우리가 사랑하는 이 바스를 지금처럼 사랑하게 되었을까? 아니라는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나오더라.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만큼 값졌던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하고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