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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박사 Jun 29. 2020

무엇을 얻었는가?

마무리 #2 박사과정은 무엇을 주는가?

어찌 보면 인생 전체를 두고 가장 큰 버킷리스트이자 이십 대부터의 꿈인 박사학위를 마친 것은 꿈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위 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사십을 목전에 둔 직장인이자 맞벌이 아빠에게 약 삼 년 반이라는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비용을 요구됐다. 특히, 자신의 커리어를 많이 희생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해 준 아내에게는 그 충격이 엄청났다. 회사에 복직하고 보니, 그 기간 동안 회사에서 열심히 업무에 집중했던 동료들보다 나는 현업의 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들은 영어를 얻었지만 그만큼 한국 사람으로서 발전했을 많은 부분들이 뒤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인생을 길게 놓고 보았을 때 박사과정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이 그 기간 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을 상쇄할 수 있을는지 주판을 놓아 봐야 했다. 과연 난 박사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을까? 학문적으로 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내가 얻게 된 유익은 무엇일까? 


학위를 마치고 나서 얻게 된 가장 큰 유익 중 하나는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는 훈련을 한 것이다. 논문은 쉽게 말해 하나의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삼 년간 세 개의 논문을 쓴 셈이니 하나의 문제에 일 년을 전적으로 투자해서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도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적어도 학위 과정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문제 정의와 해결과 유사한 하나의 유익이 더 있는데, "결국 문제는 풀린다."라는 경험을 통한 확신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며칠을 몇 달을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경험들이 있다. 애써 짠 코드가 돌아가지 않아 며칠 째 구글링을 했다, 지웠다 다시 짰다를 반복하다 결국 돌아가던 그 순간... 해결 방법을 못 찾아 고민하던 밤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 문제를 해결한 논문을 발견한 순간... 밤새 고민하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서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 "많이" 힘들었지만, 결국 문제는 풀렸다. 앞으로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많이 힘들어도 그 문제들도 결국 풀릴 것이다.


문제는 결국 해결될 것이다. 비록 지금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지라도...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럴 터인데, 우리는 꽤 많은 편견을 갖고 산다. 자라면서 아버지께서 "음악은 타고나야 한다"라고 무심코 하신 말씀에 나는 음악에 전혀 재능이 없다고 평생 살아왔다. 어쩌면 진짜 재능이 없을지 모르지만 덕분에 음악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이 살았다. 그런데, 최근에 만난 친구 덕에 나는 하루에 10분씩 피아노를 치고 있고, 여전히 재능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 10분을 매일 기다리고, 또 즐기고 있다. 코딩도 그랬다. 나는 학위를 시작하기까지 코딩은 컴퓨터 전공자들의 영역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코딩을 조금씩 배우고 익히면서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는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편견은 금물인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세상은 넓고 목적지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같은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푸는 논문을 많이 접했다. 많은 논문에서 강건성 점검(Robustness check)이라는 것을 하는데, 내가 사용한 방법론 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줘서 결론이 적절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식이다. 회사에서는 빠른 결론을 원하기 때문에 하나의 접근법이 맞다면 그것만으로 빨리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인생은 그렇지 않다. 좀 시간이 더 걸리고 덜 걸리는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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