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 박사 Jun 29. 2020

잡마켓 소회

마무리#3 박사 이후

이 글을 써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첫째로 내가 경험한 나의 잡마켓 결과는 참패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내가 경험한 것은 정말 일부에 국한되기에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쓰기로 결정한 이유는 그렇게나마 경험해 본 사람이 무척 제한될 것이고, 나의 경험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저, 내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는 돌아갈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잡마켓은 경험 삼아 한 번 시도해 본다는 것이 문제였다. 잡마켓은 경험 삼아 도전할 곳이 아니고, 온 힘을 다해 뛰어들어야 겨우 한 두 번의 인터뷰를 볼 수 있을지 말지 한 곳이다. 


두 번째로 나는 유럽에 위치한 대학에 조교수(Lecturer) 포지션에만 지원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곳들 15곳이 내가 지원한 전부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수백 개의 대학과 기업에 지원한다고 한다. 난 그 사실을 내가 지원한 모든 곳에서 거절당하고 나서야 이곳저곳 발품을 팔다 겨우 알게 되었다.)인데 그들이 원하는 조건과 내가 갖춘 조건은 무척 달랐다.  내가 졸업한 Bath 대학은 영국 내 경제학 랭킹으로 10위권에 드는 어찌 보면 꽤 괜찮은 대학이다. Bath 대학의 조교수 모집 요강을 보면, 최소 3성급 저널 2곳 이상의 퍼블리쉬 실적을 요구했다. 명시되어 있지 않았을 뿐 내가 지원한 대부분의 학교가 비슷한 조건을 요구할 것이고 거의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그 요건을 충족할 것이다


그러나, 지원 시점의 나는 논문 출간 실적이 없었다. 많은 경우 박사 학위 졸업 직전의 학생들은 논문 출간 실적이 없다. 즉, 그 말인즉슨 좋은 대학에 교수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저 연차부터 논문 퍼블리시를 위한 준비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내가 학교에서 연구를 하던 기간 중에 Bath 대학 경제학과에서 재학 중 실제로 논문을 출간한 동료는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무도 졸업 직후에 취업을 하지 못했는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 꽤 괜찮은 곳에 취업을 하는데 가장 좋은 실적을 얻는 부류는 중국 학생들이었다. 대부분의 중국 학생들은 졸업 후 자신의 모교에 조교수로 취업했다. 본인이 아카데미아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한 친구는 상해에 있는 포드 자동차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취업했다. 그 친구는 취업을 위해 졸업 직전 3개월간 열심히 Python을 연마하더니 결국 본인이 원하던 잡을 얻었다. 또 인상 깊은 친구는 졸업 직후에는 취업을 못했지만, 1년 정도 지나 자신의 논문 2개가 연거푸 출간되면서 런던에 있는 대학에 교수로 취업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이런 경우를 지원해주기 위해 졸업 이후 1년간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비자를 연장해주는데 그 기간 동안에 좋은 직장을 구하는 친구가 많았다.


두 번째 부류는 정식 교수는 아니지만, 포스닥이나 전임 강사로 취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전임 강사로 취업을 하면 아무래도 연구를 위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중에도 연구 논문을 출간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수 있고 한 번 전임 강사로 취업하게 되면 나중에 조교수로 취업하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어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Bath 대학보다 랭킹이 높은 대학으로 갔다.


Bath 대학 외 다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는 소위 옥스퍼드, 캠브리지, LSE 같은 탑스쿨을 졸업한 학생들과 그 외의 학생들로 구분이 되는 것 같다. 그 어느 곳보다 학교 랭킹이 중요한 아카데미아이기에 학교나 지도교수의 명성이 학생들의 향후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탑스쿨의 경우 매년 졸업생들의 취업 결과(Placement)를 학교 홈페이지에 공시한다. 영국 대학 중에 취업 결과를 공시하는 학교는 위의 3 학교와 에든버러 대학 정도가 있는데 정말 다양한 곳에 잘 취업한다. 미국의 탑스쿨에 교수로 가는 경우도 있으므로 영국 대학이 미국 대학보다 못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탑스쿨 학생들의 CV를 보면 인상적인 것이 눈에 띄는데 일단 지도교수가 한 명이 아니다. 많은 경우 네댓 명까지 되는 경우도 있는데, 학위 과정을 하면서 양적으로도 풍부한 실적을 요구하는 것으로 판단이 된다.


또, 대부분의 학생들이 유명한 미국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연구한 실적이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 연계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연구 주제에 맞춰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고 그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학생이 졸업시점에 꽤 많은 논문 출간 실적이 있다.


잡마켓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학생들의 CV를 훑어봤더니 박사과정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학위를 마치는 시점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탑스쿨은 아니지만 영국 내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워릭, 더럼 등 Bath 대학과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서 연구한 학생들은 내 주변의 동료들과 비슷한 결과를 얻는 것 같았다. 레스터 대학에서 만나서 종종 안부를 전하곤 하던 친구들 중 워릭 대학과 더럼 대학에서 학위를 마친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학위를 마치고 같은 대학교에서 포스닥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모두가 군대도 가지 않으니, 이제 겨우 이십 대 후반 초입에 접어드는 친구니 벌써 교수로 임명되면 좀 빨라 보이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교수가 되고 싶은 학생이라면 일단 연구실적을 양질의 저널에 출간하는 것 만이 살 길이라는 점이다. 좋은 저널에 좋은 연구를 출간했다면, 출신이 어디 건, 영어를 잘 하건 못하건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는 코멘트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다.


그렇지만, 박사 학위를 얻게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교수가 되어야만 하는가? 그건 결단코 아니다. 같이 연구를 하던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이 공공기관으로 기업체로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연구를 하면서 얻게 되는 생각을 전개하는 능력, 데이터를 분석하는 훈련 등등은 꼭 학교나 연구소뿐 아니라 많은 곳에서 필요로 한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게 된다면 그곳이 학교면 어떻고 기업이면 어떠랴?


혹.. 이 글을 읽게 되는 박사과정을 염두에 두고 계신 독자가 있다면 학위과정 이후에 어떤 상황이 눈앞에 닥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맛보기를 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더 궁금한게 있으신 분들은 댓글을 달아주시면 성심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

이전 28화 무엇을 얻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