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스윗한 상사는 왜 옆옆팀에만 있나요?
전쟁 같은 하루를 해치우고 진이 다 빠져버린 오후 4시, 인자한 모습의 외국인 남자 상사 한분이 내 자리 쪽으로 화분을 하나 가지고 오셨다. '최근 복직하신 내 옆자리 선생님을 환영하려고 오셨나?' 화분을 한번 흠칫 보고 다시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Happy Women’s Day!”
그분은 내게 화분을 안겨 주시며 말했다. 너무 얼덜덜했던 나는 정말 나한테 주는 거냐고 연신 물었다. 화분을 받아 내려놓으니, 이번에는 커다란 초콜릿 상자를 내 보이며, 여기서 원하는 초콜릿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뭐가 뭔지 어리둥절했으나, 마치 눈앞 마술사에게 홀린 듯 그가 말하는 대로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Thanks for being the way you are.”라는 말을 남기시고 내 자리를 떠나셨다. 함께 화분 수레를 끌고 온 직원분께 무슨 일인지 여쭤보았더니, 이걸 모두 사비로 직접 준비하셨다고 한다.
‘아니 저렇게 스윗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심지어 우리 팀도 아닌 옆옆팀이라 오가며 얼굴만 몇 번 봤던 이름도 잘 모르는 외국인 상사다. 같은 층에 있는 몇개 부서를 직접 돌며, 이렇게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산타가 되셨다고 한다. 옆에 또 다른 직원분께 물으니, 작년 여성의 날에도 화분을 손수 나누어 주셨다고 한다. 몇몇 직원들은 이미 두 번째 받아보는 이벤트였으나, 작년에 아마도 휴가나 재택이어서 올해 처음 이 상황을 경험하는 나로선, 이 감동스러운 이벤트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잠시동안 화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상에나 화분에 제작 스티커도 붙어있다.
새로 오신 열정과다 우리팀 직속 상사님은 요즘 내 스트레스의 주범이다. 작년에 그가 한국으로 부임한 이후 내 삶은 모두 안녕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날도 업무 스트레스로 점심 식사도 생략하고 괜스레 이직 사이트를 소심하게 기웃거렸던 하루였다. 그 긴 하루의 끝에 이런 깜짝 이벤트라니!! (이렇게 좋으신 분은 왜 왜 왜 옆옆팀에만 계시나요?)
가뜩이나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뭐 하나 스스로 맘에 드는 게 없는 요즘. 며느리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의 모든 역할이 다 버거운 나에게, 지금 내 모습대로 그대로 있어주어 고맙다 고 그는 말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다소 진부한 표현일 수 있으나, 진심이 담긴 그의 말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스윗한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이런 여유와 배려가 묻어나는 걸까?
50대의 내 모습을 아직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지만 오늘 내게 위로가 된 누군가처럼, 그땐 나도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으면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며 나누는 여유로운 삶" 스윗한 옆옆팀 상사 덕분에 한가지 버킷 리스트가 또 추가되었다.
Photo by Pixabay/하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