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내마음에서 서서히 사라질 무렵
새벽 1시, 선잠을 자다가 다시금 일어나서 노트북을 킨다. 다음날 오전까지 보고서를 마감해야 하는데,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 때문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책상 앞에 앉았지만 여전히 비몽사몽이다.
'조금 더 자고 5시에 일어날까?' 학교 다닐 때 많이 썼던 수법으로, 예정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 봉변을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학창 시절, 밤새워 시험준비나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고뇌했던 기억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어떻게든 끝내고 맘 편히 자야 하기에, 머리를 쥐어짜보지만, 자꾸만 딴짓이 하고 싶어 진다. 마치 시험공부 전 책상을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던 어느 여학생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 동안 정신은 말짱하나, 준비되지 않은 마음을 워밍업 시키느라 30분을 그냥 흘려보낸다. 그러다 어느새 끔벅끔벅 책상에 앉아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보니, 마흔 넘어서도 이 짓을 하고 있는 내가 갑자기 한없이 짠해진다.
아이를 늦지 않은 시간에 픽업하기 위해 되도록 야근은 한 시간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해결하지 못한 급한 업무는 간혹 이렇게 집으로 가져와서 일을 하기도 한다.
나를 갈아 넣지 않아도 회사는 매우 잘 돌아간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그런 이유로, 작년 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고자 브런치 글쓰기와 수영강습을 시작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회사에만 갈아 넣지 않도록 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하지만 매주 한 편의 글을 발행하기로 한 다짐이 무너지고, 어느새 한 달에 한편 발행도 힘든 수준까지 이르렀다. 함께 글을 쓰는 동기 작가분들은 독서모임, 영어 필사, 1일 1 글을 발행하시며 읽고 쓰는 삶을 꾸준히 실천하고 계신다. 하지만 나의 경우, 가족들에게 소비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느새 다시 회사로 모두 집중되어 버렸다. 나를 위한 시간들은 그렇게 소리없이 다시 사라졌다.
상사의 장기 휴가 동안 나도 어린이날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에 잔뜩 부풀었으나, 역시나 내 촉은 똥촉이었다. 예정되어 있지 않던 여러 개의 프로젝트에 갑자기 투입되었고, 계획에 없던 출장까지 몇 차례 가게 되어 그가 없는 기간에도,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한국으로 부임한 작년 가을부터 그가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해냈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지, 그는 나에게 제법 큰 개인상과 상금을 안겨주고 휴가를 떠났다.
다들 예쁘게 꽃단장하고 시상식에 참여했으나, 그날도 나는 다음날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보고서 작성으로 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번들거리는 얼굴의 기름만 겨우 제거한 후 정신없이 시상식 장소로 향했다. 숨을 헐떡이며 가까스로 도착한 내 모습을 보며, 무슨 상도 이렇게 정신없이 받나 싶어 현타가 왔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상 마저 못 받았으면 진짜 일할 맛 안났겠다 생각하니, 다시금 나를 갈아 넣어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또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정신없는 나날들 와중에도 글감이 계속 생겼다. 다 적지 못하고 서랍에 간략하게 메모만 해 둔 글들이 수십 개였으나, 왠일인지 쉽사리 글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주말에 조금 더 부지런을 떨면 분명 뭐라도 쓸 수 있을 테지만, 주말은 가족들에게 오롯이 내 정성과 에너지를 쏟고 싶다는 이유로, 조금 더 쉬고 싶다는 핑계로 그렇게 글쓰기를 내 마음에서 서서히 지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오늘 오후, 구독해 주시는 작가 한분이 댓글로 안부를 물어주셨다.
“작가님 뜸하셔서 놀러 와 봤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새 글 가지고 뿅 나타나 주세요~~”
그분의 댓글을 읽자마자 눈가에 고인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내심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켠이 불편했나보다. 게다가 얼마전 브런치 메인 화면에 노출되어 조회수가 급등한 글들이 있었으나 구독자 수가 좀처럼 늘지 않는 걸 보며, 이런 부족한 글을 계속 쓰는 게 맞는지 고민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따뜻하고 친절한 댓글은 내 마음문을 다시 한번 활짝 열어주었다.
작가님! 고마워요. 다시 힘을 내볼게요.
저 지난주에 남편 없이 시부모님과 해외로 여름휴가도 다녀왔어요. 글감이 아주 넘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