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눕 Oct 22. 2023

퇴근 후 회사 스위치를 끄는 방법

 

"엄마, 오늘도 회사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요?  그래도 웃으세요."


퇴근 한 나를 보자마자 아이는 본인의 양손 검지 손가락 하나씩을 내밀어 내 입꼬리에 댄 후 두 손가락을 힘컷 추켜올린다.


한 동안 아이는 그렇게 무표정한 내 얼굴에 강제 수동 스마일을 장착해 주었다.  그리고 긴 연휴가 시작되던 어느 날,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신난다. 엄마 회사 안 가니까 연휴 동안은 엄마 웃는 얼굴 볼 수 있겠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  


집으로 출근하던 시절,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의 표정을 살펴야 하는 일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을 왜 집에까지 가져와서 나머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거지?'


그 당시에는 퇴근만 하면 업무 스위치가 자동으로 꺼지는 줄만 알았다.  


5년 전, 분명 너무도 간절히 다시 밖으로 나가서 일하고 싶었던 경단맘이 맞다. 첫 출근 후 한 동안은, 아침마다 회사 가는 게 진심으로 벅차고 행복했었다.  하지만,  올해로 5년 차가 된 워킹맘은 처음 느꼈던 그 벅차고 감동스러웠던 순간들이 이제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자꾸만 늘어나는 내 한숨 소리에 스스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며, 아이와 남편은 자꾸 내 표정이 안 좋다며 퇴근 후 내 눈치를 살피는 일이 많아졌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나는 그렇게 퇴근 후 회사 스위치를 끄는 나만의 방법 찾기에 몰두하였다.  평소 좋아하는 것, 힐링이 되는 것 위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으나, 딱히 효과적이진 않았다.  평소 하늘과 구름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구글이 알아챘는지, 어느 날은 인공위성으로 지구의 모습을 촬영하여 라이브 방송으로 보여주는 NASA 동영상이 유튜브 피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연히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영상을 보다 보니, 내가 오늘 하루 느꼈던 괴로운 문제들이 새삼 먼지보다 작은 티끌처럼 느껴졌다.  광활한 우주 안에서 지구를 들여다보니, 어딘가에 보이지도 않는 점 보다도 더 작은 존재로 살아가며, 고군분투하는 내 삶이 새삼 우습게 느껴졌다. 영상을 한참 보고 있자니, 오늘 하루 회사에서 있었던 여러 문제들과 업무 스트레스들이 별일 아닌 일처럼 느껴져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만하면 오늘 하루 할 만큼 다 했다. 부족한 것에 대해서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그리고 그 일은 내일 다시 해보자. 이제 나는 스위트홈으로 가는 중이니, 회사와 업무 관련된 스위치는 지금부터 모두 끄자.  조금 후 아이를 만나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어주자.  친절하고 예쁜 목소리로 아이 이름을 부르고 꼭 안아주자.‘


그렇게 나만의 업무 스위치를 끄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이후, 퇴근 후 아이와 남편을 대하는 내 마음이 한결 수월 해 졌다.  사실 지금도 이 방법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예외적인 상황에선, 여전히 스위치에 계속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게 제때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아도, 이젠 괜찮다.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 계속 나아가는 일에 이제 제법 재미가 들린 것 같기 때문이다.

멍때리며 방구석 지구여행도 가능하다.

Photo by NASA live stream

 


이전 14화 상사와 방송 촬영 중 입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