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00데이를 챙기는 게 너무 싫어!
난 빼빼로 데이가 싫어. 밸런타인데이도 화이트 데이도 모두 싫어. 나만 그런 거야?
어른들은 알까? 어린이들에겐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몇 개나 받았는지가 마치 '인스타그램 속의 좋아요 수'같다는 걸.
어떻게 먹을지 고민 끝에 다이어트 먹 코치님들의 조언을 따라서 핏 콩 바는 얼려서, 솔단바는 에어프라이어 180도에 6분을 돌려서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의도 하진 않았지만 11의 의미를 잘 살려 버렸네. 선호와는 상관없이 마케팅의 무서움이 여기서 드러난다. 자각하기도 전에 이미 마케팅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래서 마케팅 업무에도 흥미를 느낀다는 점이다. 의도를 읽어서 마케팅으로부터 자유롭고, 진짜 내 가치관과 오로지 자유의지에 따라서 선택을 하고 싶어서 마케팅과 기획 업무에 관심이 간다. 글을 쓰는 것도 결을 같이 한다.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함께 하고, 더 전파하고 싶고, 더 옳은 진리로 나아가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기획과 마케팅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글쓰기와 기획, 마케팅을 모두 좋아한다. 분석적이고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모든 일련의 과정과 업무를 좋아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그 과정과 결과로 인해서 피해를 입거나 상처를 받는 사람이 최소한이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무지로 인해서 상처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또 다른 사람이 입는 상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말이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서 비싼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할까? 그만큼 맛이 있나?라는 생각에 내 돈 내산을 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 먹진 않았던 핏 콩 바를 다이어터 지인에게 선물 받아서 먹어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달았다. 그리고 이전에 먹어보았던 타사 브랜드의 시리얼과 맛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것을 뭉쳐서 바 형태로 응축시켜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일단 인공적인 단맛, 설탕 대체제로 만들어낸 듯한 단맛, 당이 높은 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딱 그런 맛이라서 아쉬웠다. 오히려 솔단 바가 훨씬 맛있었다. 어제 먹은 푸드 바랑 비교했을 때, 카카오 풍미가 훨씬 높아져서 씁쓸한 맛이 잘 느껴졌고, 에어프라이어에 돌렸을 때, 좀 더 바삭했다. 씹는 맛에서도 만족스러웠다. 다만, 푸드 바가 좀 더 오도독 씹히는 재미는 있었다.
먹 코치님은 솔단 바를 캐슈 너츠유에 말아먹으라고 했는데 잊어버리고 요구르트 볼로 먹었다. 그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니 만족스럽다. 배고픔에 집중하면서 먹었더니, 덕분에 세 끼 식단을 배고픔과 상관없이 때가 되면 챙겨 먹어야 한다는 강박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조회수가 1.5만을 넘은 날이 있었다. 글을 쓴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정말 놀라운 숫자였다. 내 글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봐준다고? 어떤 면에서 메리트를 느껴서 봐주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렇게 매일 봐주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금방이라도 책을 내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서서히 조회수가 줄어가면서 부풀었던 풍선의 바람이 빠져나가듯 내 몸에서도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현타가 찾아왔다. 글을 열심히 쓰고자 했던 열정도 같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건강과 행복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곧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하는 일들은 결국 나를 만든다. 그것은 내가 된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때로 무섭다. 빼빼로를 주고받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지 않는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