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새 생명이 탄생한다. 인간 몸에서 비롯된 첫 생명이었다. 하나 형벌의 결과로 축복받지 못할 생명이었다. 괴로움 가운데 필멸의 삶을 살다갈 운명을 지닌 채 울고 있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두려움이 앞섰다.
얼마지 않아 둘째가 태어났고,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그때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여자에게 출산의 형벌이 내려질 때 곁에 있던 남자에게는 생계에 대한 무한 책임이 벌로 내려진다. 한시도 끼니 걱정을 멈출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모든 게 처음인 데다가 환경도 낙원과는 달랐다. 땅은 거칠고 가시덤불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날의 사건 이후로 환경과의 관계도 형편없어진 것이다. 이때 웃을 일이라고는 잘 자라 주는 두 아들뿐이었으리라.
입이 두 배가 되자 가장 홀로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힘이 부쳤다. 그러자 대견하게도 자식들이 제 몫을 하겠다고 나섰다. 형은 곡물을 재배했고 아우는 양을 쳤다. 그렇게 모든 게 불안하기만 하던 형지(刑地)의 삶도 점차 익숙해졌다.
하루는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주홍글씨와도 같은 낙원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신비로운 탄생과 신과의 첫 만남, 부족할 것 없던 낙원의 삶 그리고 범죄로 인한 추방까지. 이야기 뒤에는 불꽃 검으로 낙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천사와 인간을 미혹한 뱀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지 않았다. 같은 비극을 자식이 겪게 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형제는 두려웠고, 신을 노엽게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시험에는 늘 풀어보지 않은 문제가 등장하는 법이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터로 돌아온 형제는 신을 기쁘게 해 드리기로 했다. 형이 먼저 갓 수확한 작물을 정리해 단에 올렸다. 이어서 동생도 맨 처음 얻은 양 새끼를 잡아 기름과 함께 올렸다. 그리고 기도를 올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기이한 일이 벌여졌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더니 동생 제물을 태운 것이다. 너무 놀란 형제는 뒤로 자빠졌고, 주위를 맴돌던 연기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다. 정신을 차린 형제가 형의 제단을 바라봤다. 그대로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 봤지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격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동생을 보자 형은 초조해졌다. 그리고 초조함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거부였다. 형은 별일 아니라는 듯 제단을 정리했지만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당혹감은 서서히 분노로 바뀌었다. 금쪽같은 소산 아닌가. 가시덤불에 긁힌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그는 집안의 장자이자 형이다.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는 동생을 형은 질투심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느 날 형은 동생을 들로 불러낸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덤벼들어 동생을 쓰러뜨린 뒤 돌로 내리친다. 흘러나온 피가 들판을 적신다.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그에게 신이 동생의 행방을 묻는다. 그러자 비아냥거림으로 응수한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라도 된단 말인가요?”
그날로 그는 종적을 감춘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그것도 끔찍하게 동생을 살해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낙인찍힌 채.
그렇다면 형은 왜 아우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윤리나 도덕이 오늘날 같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든든한 지원군인 동생을 제거한 건 이해하기 힘들다.
'인간이 갈등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갈등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갈등은 마치 생물과도 같아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힘을 키운다는 뜻이다. 긴장과 당혹감 속에서 생겨난 갈등은 관리되지 않으면 분노를 먹고 자라나 폭력성을 띤 에너지로 폭풍성장한다.
그리고 그 종착역은 공멸이다.
공멸은 상대를 제거하는데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전면전 상태다.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유일한 희망은 상대와 함께 죽는 것이다. 육체적 죽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적 죽음인 ‘매장’을 뜻한다.
이 상황에서 갈등 당사자는 분노와 공포로 눈이 멀고 만다.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다 상대방으로부터 왔고, 행복을 되찾는 유일한 길은 상대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이 단계에서는 공권력 외에 공멸이라고 하는 파국을 막을 수단은 없다.
기록은 형의 상태를 보여주는 단서를 보여준다. 신으로부터 거부당했다고 생각한 형은 깊이 분노한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서 공멸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한다. 그 징후는 행동에서 드러난다. 낯빛이 변했고 고개를 들지 않고 다녔다. 복잡한 심경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제사를 마친 뒤 동생은 부모에게 달려가 제단에서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자랑했을 수도 있다. 뭔가 성취했을 때 막내들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은 무척 속이 상했을 것이다. 동생만도 못한 형이라는 자괴감도 들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제단에서의 장면이 재생되고, 고약한 감정들이 올라왔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이야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라도 하겠지만, 고대 근동의 황량한 들판에는 괴로움을 돌릴 그 무엇도 없었다. 깊어가는 고통과 커져만 가는 제거의 유혹을 오로지 자제심만으로 견뎌야만 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형은 결국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너게 된다.
누구보다 억울한 건 동생일 것이다. 그는 형을 괴롭게 할 의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갈등이 그렇다. 그 어떤 의도도 예고도 없이 일어난다. 그것도 한 때 좋았던 사이에서.
만일 동생이 아닌 동네 아저씨와의 사이에서 그 일이 벌어졌더라도 같은 결과가 일어났을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동네 아저씨야 안 보면 그만이다. 대체 가능한 존재란 뜻이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던 가족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심각한 갈등에 빠져 공멸로 가는 다리를 놓고 있는 형에게 신이 경고한다.
“너 낫 빛이 왜 그러지? 당체 고개를 들고 다니지 않는구나? 네 마음속에서는 지금 제거의 유혹이 싹트고 있다. 잘 관리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