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가운데 신은 빛과 어둠을 나누고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공간을 꾸민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을 창조한다. 신 홀로 존재하던 세계에 또 하나의 기준점이 생긴 것이다. 기준점이 하나에서 둘이 되면서 관계성과 영역성이 생긴다.
영역성이란 두 기준점 간 긴장감을 해소하거나 관계성을 담보하기 위한 공간의 크기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과 인간 사이에는 피조물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했다. 이후 정체성을 망각한 인간에 의해 침범되고 말지만.
피조세계에 만족한 신은 자신을 닮게 지어진 인간에게 활동을 명한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한 것이다. 관계의 시작이다. 관계는 퍼즐 조각과도 같은 상호작용(interaction)으로 시작된다. 상호작용이 쌓이면 관계가 된다.
인간은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신이 창조한 피조세계의 위계와 질서를 관리할 능력이 확인된다. 이 능력은 상징화 능력으로 사물이 어떤 경로를 거쳐 변화해왔고 어떻게 변해갈지를 유추하는 능력이다.
한 번은 데어봐야 뜨거운 맛을 아는 고양이와는 달리 그러지 않고도 난로를 조심하는 것도 이 능력 때문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 능력은 문명을 건설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함과 동시에 세상에 고통을 불러들이는 원천이 된다.
그런 인간에게 신은 모든 걸 허락한다.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를 제외하고는. 이 열매는 창조주와 피조물 간 관계성 담보를 위한 상징과도 같은 장치였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금한 것에 눈길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루는 뱀이 인간을 찾온다. 그리고는 깜짝 놀랄만한 정보를 전한다. 신이 금한 열매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거다. 그걸 먹기만 해도 신처럼 될 수 있단다. 게다가 인간이 신처럼 되는 게 싫어 금한 게 아니겠느냐며 가짜 뉴스까지 덧붙인다. 어쩌면 이 말 한마디에 그동안 누리던 모든 것들이 달리 보였을지 모른다.
뱀이 보인 행동은 갈등 상황에서 흔히 일어나는 편짜기다.
갈등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는 가서 하소연한다. 그럼으로써 이해받았다 느낌과 함께 일시적인 안도감을 얻는다.
반면 예후는 나빠진다.
갈등 당사자 수와 폭력성은 늘고 해결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신과의 관계가 틀어진 뱀이 인간과 모종의 편짜기를 한 셈이다. 편짜기가 주는 짜릿함과 신이 될지 모른다는 환상은 뿌리치기에는 너무도 강렬했다. 사다 주는 것만 쓰다가 처음으로 용돈을 받고 쓸 계획을 세우는 아이처럼 가슴이 설렜을 거다.
인간은 혼란에 빠진다. 무엇이 사실일까? 손을 대 말아? 우리가 하루에도 수차례 경험하는 내적 갈등이다. 고대 히브리 기록에 나타난 인류 최초의 갈등은 내적 갈등이었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욕구가 들어설 때 내적 갈등이 발생한다. 그리고 내적 갈등이 관리되지 못하면 외적 갈등으로 번진다.
마음은 이미 금단의 열매에 가있었고, 이를 저지하는 정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확증편향이다. 신의 준엄한 명령과 나아지고 싶은 욕망 그리고 신으로 군림하는 환상이 뒤엉킨 상태에서 인간은 일을 저지르고 만다.
사실 확인에 소홀했던 결과는 참혹했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은 상관없다는 태도로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조화로운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틈으로 적개심이 스몄다. 온전함이라고 하는 숨결을 오염시킨 인간에게 신은 분노 했다. 불멸성이 거두어들여지고 죽음이 몰려와 피조 세계에 급속도로 퍼졌다.
편짜기를 통해 생겨난 내적 갈등이 외적 갈등으로 그리고 관계의 파괴와 단절로 이어진 것이다.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이, 남자에게는 호구지책에 대한 무한한 책임이 형벌로 내려졌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건 평화보다는 이기적인 욕구에 지배당한 최초 인간들의 속성이 다양하게 조합된 사람의 아들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갈등의 뒷면에는 상호의존적 관계가 있다. 한 때 좋았던, 의미 있는 것들을 주고받던 관계에서 갈등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법원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원래는 서로 계산하겠다며 몸싸움을 벌이던 사이인 경우가 많다. 기분 나쁘면 다른 가게에 가버리면 되는 동네 빵집 주인과는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초에(In the beginning)’라는 제목을 가진 고대 히브리인들의 기록은 인간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갈등이 특별히 좋았던 관계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갈등은 필연적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사람 둘 이상 모이면 피할 수 없는 게 죽음과 갈등이란 사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