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은 듣는 자의 몫

커뮤니케이션 오류

by 장동혁

* 2018년 인천 송도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다음 텀 책으로 호르몬에 관한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요. 그것도 좋지만 혹시 다른 책은 없을까요? 그날 그것 말고도 다른 좋은 책들을 언급하셨던 것 같아서요. 혹시 다른 마땅한 책이 없다면 그냥 그 책으로 하셔도 되고요”


북 클럽 리더에게 이런 전화를 받았다고 하자. 어떨 것 같은가. 물론 리더와의 관계나 책에 대한 애착 정도에 따라 반응도 달라지겠지만.


몇 년 전 동네 북 클럽 회원에게 이 말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좀 더 좋은 책을 찾아보자는 내 의도가 전혀 다른 뜻으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함께 읽고 나눌 책을 선정하고 있었다. 좋은 책을 찾기 위해 다들 여념이 없었고 이런저런 책들이 올라왔다.


집에 돌아와 제안된 책들로 일정을 잡던 중 한 권의 책이 마음에 걸렸다. 건강과 호르몬에 관한 책이었다. 모임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있는데 그 주제가 과연 적합한지 우려가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책을 선정할 때도 그 회원은 함께 모여 책을 선정하는 방식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냥 대학교 선정 도서 목록에서 정하면 안 되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몇 권의 책을 언급했는데 주로 서양 고전이었다. 당연히 그중에서 하나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회원이 생기를 보이며 책 한 권이 떠올랐다고 했다. 일전에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란다. 나는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아뿔싸! 전혀 예상 밖의 책이 나왔다. 건강과 호르몬에 관한 책이었다. 나이가 들다 보니 건강에 관심이 생겨 구입했다고 덧붙였다.


기대감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 ‘인문 고전을 그렇게 나열하더니 왜 하필..., 다른 책은 없느냐고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전환시켜서 다른 책으로 바꾸게 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맘먹고 내놓은 책인데 괜히 찬물 끼얹는 일이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개입할 타이임을 놓쳐버렸다. 그리하여 다음 날 전화로 의사를 물었던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다른 책 없느냐는 제안에 잠시 서늘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왜, 제가 선택한 책이 맘에 안 드세요?


그 답을 듣는 순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서둘러 분위기를 전환시켜야 했다. “아, 그게 아니고요. 그날 다른 책들도 많이 언급하셨는데 그중에서 한 권 추천해 주셨으면 해서요” 불 끄려다 기름 부은 격이 되었다.


아니 맘에 안 들면 안 든다고 하시지 왜 말씀을 돌려서 하세요?


나는 그때 직감했다.


‘망했다...’


이후로 나는 그 뜻이 아니었노라 설득하느라 몇 개월을 고생해야 했다. 그리고 회원들 앞에서 사과까지 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규정 하나가 추가되었다. “추천된 책에 대해서는 절대 왈가왈부하지 말 것”.


무엇이 문제였을까. 많이도 생각했다.

'리더가 그 정도 개입도 못하나?'부터 '그래도 초창기 멤버인데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주나' 하는 서운함까지.


어쨌든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가 나빴다. 그 책을 나누기로 한 날 그 회원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모임에서 나갔다.


만일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모임 초창기였고, 모임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의욕과 책임감이 앞섰다. 모임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좋은 책만이 좋은 나눔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 사건을 통해 나는 교훈 하나를 얻었다.

메시지를 만드는 건 화자지만 해석은 청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당시 나는 ‘좀 더 좋은 책을 함께 찾아보자’라고 하는 나쁘지 않은 의도를 언어에 담아 보냈다. 어조나 태도도 나름 정중했다. 그리고 원치 않으면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함으로써 배려도 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다. 차라리 안 하니 만도 못한 개입이 되어버렸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통신기술 발달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말을 바꿔가며 밤새 달리지 않고도 방대한 정보를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 손쉽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전화기 선이 사라졌고, 노이즈도 잡혔다.


이처럼 기계적 오류들은 거의 잡았지만 심리적 오류만큼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 회원은 내 메시지를 자신을 존중하지 않은 무례한 행위로 해석했던 것 같다. ‘내가 왜 당신을 무시하겠어요’라고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상대는 그렇게 느꼈으니까.


나는 쉐리 캐스크에서 오랜 숙성을 거친 투명한 호박색으로 빛나는 최고급 위스키를 내밀었지만 상대는 주정(酒精)에 인공색소와 감미료를 첨가한 무늬만 위스키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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