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게 길을 묻다

평화와 공존의 길

by 장동혁

* 2022년 서귀포 치유의 숲


감상이 관찰로 바뀐 건 유독 시선을 끄는 한그루 나무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데크 가까이 서있던 그 나무는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듯 내게로 다가왔다.


다가가서 보니 나무 표면이 마치 굵은 뱀이 기어오르는 것 같은 무늬로 부풀어 있었다. 원인에 대한 짧은 토론이 벌어졌고, 아마도 주위 덩굴식물과의 생존경쟁 흔적일 거라고 결론지었다.


숲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홀로 서는 게 익숙한 나무가 있는 반면 스스로는 서지 못하는 나무도 있었다.

칡이나 등나무 같은 덩굴식물들이다. 이 식물들은 홀로 자랄 때와는 달리 다른 나무들과 공존할 때 문제에 부딪친다.


다른 나무들에 가려 생명의 원천인 하늘에 가 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식물들은 다른 나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근처 나무에 슬쩍 가지를 얹은 뒤 감아 올라간다. 공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뻥 뚫린 하늘이 좁아지면서 공생은 경쟁으로 바뀐다. 맘껏 오르기 위해 덩굴 식물은 굵기와 옥죄는 힘을 키운다. 이에 질 새라 기둥이 되는 나무도 굵기를 키운다.


한 치 양보도 없는 고집스러운 힘겨루기는 밤낮없이 지속된다. 그러다 덩굴 식물이 기둥 나무를 파고들어 가기도 한다. 이 치열한 싸움은 결국 버티지 못한 나무가 죽으면서 끝이 난다.


팽팽하게 버티던 덩굴이 땅으로부터 분리되고, 더 이상의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서 나가떨어져 흙으로 돌아간다. 서로 밀착한 채 고집스러운 힘 겨루기를 한 결과 승패가 갈린 것이다.


승리한 나무는 패자의 양분을 흡수하며 자라지만 치열한 경쟁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는다. 거기서 승자의 영광은 느낄 수 없다. 사생결단의 결투가 끝난 원형경기장의 냉혹함만이 감돈다.


덩굴식물들끼리 만나 서로를 옥죄며 감아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서로를 놓지 못하고 평생 기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공생하는 나무도 만났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를 덩굴식물이 보기 좋게 감싼다. 마치 더불어 살아갈 나무가 굳건히 자리 잡을 때를 기다려 주기라도 한 것처럼.


덩굴도 거칠거나 드세지 않아 기둥이 되어주는 나무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덩굴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유연하게 감싸 오르며 초록과 붉은 이파리를 내기도 한다. 마치 음식 위에 올려져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가니시(garnish)처럼.


흥미롭게도 삼엄하게 열을 이루어 자라는 삼나무 주변으로는 덩굴식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과는 맞지 않는 상대란 걸 알고 얼씬 거리지도 않는 것처럼.


초록의 빛과 그윽한 향기로 쉼과 회복을 주는 숲 속 세계에도 살아있는 것이라면 어김없이 마주할 ‘평화와 공존’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갈등 관련 일을 하며 얽히고설킨 문제 푸는 걸 돕고는 있지만, 관계는 늘 어렵다.


그날, 척박한 화산섬에 뿌리내리고 자라나 숲을 이룬 나무들은 자기만의 내밀한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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