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별 Oct 27. 2024

돌고 도는 둥근 마음

내일 또 도전

 "샷 추가하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음료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앗. 독감 주사 맞는다더니 벌써 다녀온 거야? 아프지 않았어? 와 인디 핑크 잘 어울린다! 고양이 니트 너무 귀엽잖아. 벌써 다 읽었어? 으아 부끄러워. 그럼 잠깐만 기다려봐. 약속했잖아. 코코넛 버블티 선물하기로.


 으하하. 맞아. 웃기지. '매일 실패하는 이응이응 작전'이라니 맙소사. 오늘 작전은 성공하고 있냐고? 음 '오늘은 통했나!' 하고 혼자 착각에 빠지려던 참이야.


 지금 막 나가신 고객님께서 오전에 흑당 버블티를 사가셨거든. 응. 활짝 웃으며 나가신 그분. 그런데 오전에는 화가 나 있으셨어. 음료 기다리시며 함께 오신 분과 언성을 높이시고. (날 신경 쓰실까 봐 음악 볼륨을 한번 더 올리고 냉장고 청소를 해서 내용은 모르지만 말이야.) 한참 말씀 나누시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고개만 살짝 숙이시며 음료를 받아가셨거든.


 그런데 지금 다시 오신 거야. 반대표로 계주 경기에 나가서 역전승 성공한 아가처럼 양손을 크게 흔들면서 들어오셨어. 긴 생머리를 한쪽 어깨로 쓸어 모으시며 '잠 깨려고 또 왔어요.' 하시고. 기분이 좋아 보이셨어. 오전에 '감사합니다' 인사드릴 때, '흑설탕 시럽 우유에 풀어지면 고객님 마음도 다 풀릴 거예요. 얍!' 하고 주문을 속으로 외웠단 말이야. 혹시 작전이 좀 통한 것 아닐까? 하하.


 초콜릿 같이 먹을까? 대학생 딸 두신 고객님께서 어제 주신 거야. 받기 죄송해서 '와 감사해요. 그런데 저 오늘부터 다이어트할 거예요. 고객님 더 많이 드셔주세용.' 하며 살짝 거절하려 했어. 그랬더니 '아니 왜 지난번에 나도 호두과자 받았잖아요. 그때 옆자리 선생님이랑 같이 먹었거든. 그분이 제주도 다녀왔다면서 많이 주셨어요.' 하셨어. 그리고 캘리그래피 엽서로 만들고 싶은 말씀을 하시지 뭐야.

 

 "받아요. 좋은 마음은 돌고 돌아요."


 아아. 돌고 도는 좋은 마음. 정말 좋아.  맞아! 어딘가 이응이응 작전 같지. 나도 너무 신나서 하마터면 '아악 고객님, 고객님도 이응파 요원이셨군요!' 하며 악수 청할 뻔했다니까. 으핫.


 작은 가게는 있잖아. 마감 시간도 소중해. 다음날 깔끔한 운영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바쁠 때 내려두었던 문장들을 주워 담아야 하거든. 매장을 구석구석 쓸고 닦으며 하루 동안 고객님들 두고 가신 귀여운 말씀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는 거야.


 의자에 우르르 앉으며 하신 말씀, 입구에 놓인 책을 쓱 올려 들며 하신 말씀, 빨대 비닐을 살포시 버리며 하신 말씀, 주문 중인 친구 등을 툭 치며 하신 말씀, 텀블러를 쨍그랑 떨어뜨리며 하신 말씀, 무거운 가방을 낑 내려두며 하신 말씀, 지팡이를 한쪽에 조심조심 세워두며 하신 말씀, 두고 가신 실내화를 급히 찾아가며 하신 말씀. 감탄사 터졌던 귀여운 문장들.


 잠자리 잡아 고이 채집통에 넣는 아이처럼 단어 하나 다치지 않게 메모장에 넣어야 해. 그리고 생각하지. 내가 보낸 귀여운 마음 펄들은 오늘치 임무를 수행했을까. 제주도에서 날아온 초콜릿처럼 돌고 돌아 어디까지 갔을까.


 지친 표정, 화난 표정, 서운한 표정만 가득한 세상인가 생각할 때도 있었거든. 가게를 하기 전에는. 그런데 손을 덥석 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눈 맞추며 만난 세상은 정말 귀여운 거야. 천 원 한 장 넣었더니 동그란 캡슐이 줄이어 나오는 고장 난 뽑기 기계 같은 분들이 많아. 야망 이응 하나 전하면 끝판왕 귀여움 캡슐 열 개.

 반은 노랗고 반은 투명인 그 귀여운 문장 캡슐을 하나씩 열 때마다 감탄사가 또. '와, 아니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고? 으아 나는 오늘도 진 건가. 인정!' 하고 말이야.


 이 동전들 봐. 날이 더웠는지 겉옷 없이 하늘색 반팔 티셔츠만 입은 채 들어온 아가가 올려둔 동전이야. 동전을 잔뜩 가지고 온 게 벌써 네 번째거든.

 

 "아니 동전이 계속 나와요. 혹시 저금통에서 나온 친구들은 아닐까요?"

 "아 어떻게 아셨어요?"

 "으아. 그럼 엄마께 허락받은 거지요?"

 "뭐 제가 모은 돈이니까 꼭 허락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물어봤죠. 엄마가 제 돈이니까 알아서 해도 된대요. 전요. 밤 10시까지 공부하려면 이걸 꼭 먹어야 하거든요."


 으흑. 귀엽지. 안경테보다 더 큰 원을 그리려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말하는 친구라 만나보면 더 귀여워. 넌 무조건 반할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나 오늘도 또 진 것 같지? 이 귀여운 동전더미 좀 봐. 저금통에서 꺼내왔다는데 '으아악' 감탄사 안 터질 수가 없잖아. 백 원, 이백 원, 삼백 원, 팔백 원. 어떻게 이겨!


 10시까지 완주하려면 꼭 있어야 하는 음료, 일상 마라톤 대회에 나선 고객님들께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버블티 급수대, 귀여운 타피오카펄에 '더 귀엽게 아자, 할 수 있어요 아자아자!' 하는 응원 담아 전하는 사장. 버블티와 작은 가게 그리고 나의 일이야.


 지금 함께 코코넛 버블티를 마셨잖아. 그럼 오케이! 오늘 애들 모의고사 성적표 받아와도 괜찮겠지 우리? 잔소리 꿀꺽 삼키고 칭찬해 주자. 한숨은 걱정하지 마. 블랙펄이 통통거리며 한숨을 잠재워줄 거야. 흐흐 어쩐지 귀여운 숫자가 보일 것 같지만, 일단 기다려 보자!


 우리 기대해 보자. 귀여웠던 오늘보다 더 귀여울 내일이 오고 있잖아.

전요, '이' 버블티가 있어야 공부할 수 있거든요. '응'원해요 오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