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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Oct 22. 2024

으아

감동

 "만약 제가 합격한다면 여기 버블티가 한몫한 거예요. 정말입니다."


 감탄사 중독이라고 지적하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문장에 어떻게 '으아' 소리를 참을 수 있습니까요. 으아. 무채색 응답만도 감사할 고3이 이렇게 알록달록한 말을 하다니.


 야망 품은 버블티를 만들고는 있으나 이응 공격이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객님께 드리는 인사에만 고객님 질문에 대한 답에만 함축된 공격을 담으려 노력한다. 공감도 감동도 살짝 누르는 편이다.(감추어서 이 정도입니다. 하하.) 내가 느낀 그대로의 양만큼 전하다가는, 핸드폰 볼륨이 최대로 설정된 걸 모르고 영상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의 당혹감을 느끼실 것 같아 조심스럽다. 부담스러워 도망가실까 봐 참고 참지만, 수험생의 예쁜 문장에는 '으아'를 누를 수 없다. 으아. 오늘도 귀여움 파티 시작이다.


 귀여운 감동은 시험 직전 듣게 된 후크송처럼 여운이 길다.  


 "우리 애가 먹는 게 뭐였더라. 초코였나. 아니 시험이 내일인데 축구 본다고 잔소리하고 나왔어. 들어갈 때 이거 사다 주려고."

 고백하시듯 자녀분과의 이야기를 하시곤 건치 드러나는 미소와 함께 음료를 주문하시는 아버님. 초코를 전할 아버님도 초코를 받아 들 아드님도 귀여우시다. 화날 때는 초코 버블티인 시현이 같아 더욱 귀엽다. 화나면 아무것도 안 먹겠다 선언하고도 치킨 냄새면 방문을 여는 준우도 생각나고. 거북목이라 목과 등이 아파 일어날 수도 없다더니 한자리에서 도넛 서너 개는 단번에 먹어치우는 남편도 떠오르고. 음식으로 풀리는 화는 으아. 귀엽다.


 "아아안니어어엉하시에요오오(안녕하세요)."

 밤사이 내린 눈이 얼어 미끄러운 길을 걸을 때처럼 느린 말투로 인사하던 아가가 있다. 눈이 크고 손도 크고 강호동 님처럼 짧은 스포츠머리에 편하게 입은 상하복이 태권도 도복처럼 보이는 체형의 고객님.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 친구인데 '가아암사하압니다으아(감사합니다)', '니에에에에에(네)'로 길게 끌어서 하곤 했다. 조금 천천히 발음하는구나 생각하며 나도 천천히 또박또박 크게 답했다.


 하루는 2명의 친구와 함께 방문해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시작했다. 그런데 으아!

 "야 너 뭐 먹냐? 나는 초코랑 달고나만 먹어 봤다. 코코펄도 맛있어."


 지금 누구? 으아앗. 다른 친구들과 매우 빠른 속도로 대화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껏 늘어난 피자 치즈 같던 말투가 내게 보여주고 싶은 애교였던 것인가 생각하니 입꼬리가 눈꼬리까지 올라오려 했다.

 거북이 목 내미는 것 같은 그 말투는, 울적한 감정이 올라오는 날 의자 틈에서 빼꼼히 나를 바라본다. '이래도 안 웃을래?' 하면서 말이다. 귀여움은 그림자가 길다.


 작은 가게에 지내는 나는 꿈 집착인이다. '꿈'이라는 말만 나오면 두근두근, 탈수 모드에 들어간 세탁기처럼 격렬해진다.


 올해 초인가. 희끗한 단발에 노란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스카프를 두르신 고객님께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셨다. 매장에서 좀 마시고 가도 되냐 우아하게 물으신다. 그리고 한참 창밖을 바라보고 책을 읽으시다 말을 건네셨다.


 "추웠는데 커피 덕에 녹았어요. 감사해요. 맛있어요."

 하늘거리는 스카프처럼 잔잔한 고객님의 음성을, 매서운 바람 부는 거리를 배경 삼아 듣자니 영화 제작 현장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고객님의 독백이 이어졌다.


 "나도 작게 카페를 해보고 싶어요. 나는 개구리를 좋아해요. 여행 가는 곳마다 개구리 인형이나 열쇠고리나 장식이 있으면 사 모아요. 외국에서도 사 오고. 사람들이 개구리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걸 아니까 사다 줘요. 집에 개구리가 정말 많아요. 모은 개구리를 전시하는 카페를 하고 싶어요. 우리 아들들도 엄마 꿈 멋지다고 응원한대요. 이 나이에 꿈이 있냐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꿈을 이루고 싶어요."


 으아. 고객님 정말 멋지세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이 고이려 했던 것 같다. 작은 가게에서 누군가의 꿈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이응이응, 동그랗게 끓어오르는 펄처럼 보글거린다.

 

 지금은 회사로 떠나신 갈비찜 사장님께서는 작곡가가 꿈이라 하셨고, 조기축구 마니아이신 우리 상가 소장님께서는 통기타 가수가 꿈이었다 하셨다. 전직 펜싱 선수이신 부러운 몸매의 관장님과는 여행 다니며 책 읽는 삶으로 꿈 대화를 나누었고, 힐끗힐끗 바라보게 되던 미모의 학원 선생님(과목은 여쭙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은 먼저 묻지 않는다.)께서는 꿈을 찾아 잠시 일을 쉰다는 말을 남기셨다. 아가들의 꿈만큼이나 어른의 꿈도 오래 귀엽다.


 "아이들이 로또 되면 뭐 하고 싶냐 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고민도 없이 바로 '건물을 사서 학원 할 거야' 했죠. 그랬더니 애들이 학원이 그렇게 좋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내가 가르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이게 내 꿈이구나."

 나의 수다 파트너가 되어주시는 5층 수학 선생님과의 대화에 '꿈'이 등장하자 또 숨이 멎었다. 들어주는 사장 마스크를 벗고 내 꿈 이야기를 재잘거리고 싶어졌다. '작은 가게'의 앞글자를 따서 줄이면 '작가'가 되는데 아시느냐고. 으아아. 그 '작가'가 바로 내 꿈이라고. 선생님의 꿈도 내 꿈도 이루어보자고 호들갑 떨며 손을 잡고 싶었다.


 늘 바삐 움직이시는 수학 선생님 로또가 당첨되어 건물을 사셔서 큰 학원을 여시고, 그 건물 1층에는 보라색 풀리오 종아리 마사지기를 장착하신(도보 중에도 빼지 않으시는 편) 관장님께서 작은 서점을 여시고, 그 서점에는 검은 뿔테에 살짝 긴 헤어스타일의 갈비찜 사장님께서 작곡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비가 오면 이문세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소장님의 통기타 연주회도 열리고. 새로운 꿈을 찾으신 예쁜 선생님께서 손님으로 등장하시고.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하며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만약 제가 작가가 된다면 모두의 꿈 이야기가 한몫한 거예요. 으아 정말입니다!

다음에 또 선물 주시면 죄송하니 좀 쿨하게 받았어요. 그래도 '으아'는 감추기 어려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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