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알 마셨습니다! (야구모자를 살짝 비스듬히 쓰시는 어르신. 나이가 들수록 아이 얼굴이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는 귀여우신 고객님. 웃음 뒤로 뭉클해지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다음에 또 올게. 친구들이 다 죽어서 놀 친구가 얘밖에 없어. 둘이 또 올게. 살아서."
웃기는 대화가 좋다. 농담이 좋고 말장난이 좋다. 아재개그도환영!
축구 유니폼 입고 축구화 신은 꽁지머리 아가. 가게 들어오기 전부터 '야 너 뭐 먹을 거냐! 나는~.'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발성 좋은 고객님이시다. 검은색반팔 운동복 위로 밤색 태권도 띠를 두른 친구에게 퀴즈를 내다 나를 부른다.
"야 손흥민이 좋아하는 가게가 어딘지 알아? 사장님 아세요?"
"앗 모르겠는데요!"
"공차요 공차!"
으핫. 밤색친구는 그 무슨 밤껍질 먹는 소리냐는 듯 '어후. 야 그게 뭐야.' 했지만 나는 또 넘어가고 말았다. 으하핫. 공차라니. 이렇게 장소와 딱 맞는 퀴즈를 내다니.
파란 체크무늬 셔츠의 아빠와 분홍 공주님 티셔츠 아가가 키오스크 앞에 선다.
"엄마는 뭘까?"
"타로!"
"타로? 글쎄. 내가 아는 엄마라면 흑당일 텐데."
그냥 '아니야'도 아니고 점잖은 '내가 아는 엄마라면'에서 또 '으핫'이 터진다.
"와 고객님 오늘 정말 예쁘세요."
오늘따라 화사하게 화장하시고 'H라인 브라운 오리엔탈 플로랄 벨트 원피스'로 검색하면 나올 법한 우아한 원피스로 입장하셨다. 평소에도 늘 예쁘시지만 오늘은 정말 우와!
"미용실 가느라고 하이힐 좀 신었더니, 하이힐이 아니고 쏘리힐이야. 무거워서 굽이 깨질 것 같지? 봐봐."
으핫. 하이힐 아니고 쏘리힐.
고객님 선물에 '으핫'이 터져 나오는 순간도 있다.
멜론 버블티를 좋아하는, 눈이 동그랗게 큰 초등학생 아가가 하루는 두 손 가득 푸른 상추를 들고 입장했다. 그리고 카운터에 올려둔다.
"왜요~!"
"사장님 드세요."
학교 텃밭에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심어져 있다고 했다. '가족들과 먹어야지요.' 했더니 전에 집에 가져가고 오늘은 내 생각이 나서 '뜯어왔다' 했다.
"그냥저한테 친절하게 잘해주시니까 감사해서요. 학교에서 뜯어왔어요."
어른의 상추는 좀 익숙해졌으나 아가가 뜯어온 상추는 처음이라 웃음이 쉬이 멈추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완벽하게 귀여운 존재. 으핫. 야망의 이응이응을 던져볼 구석이 없다.
청바지를 입으시는 60대 여성 고객님과 길게 대화 나누었던하루. 자녀분 키울 때 이야기를 해주시고 내 나이 때 추억들을 풀어주셨다. 그리고살짝 비밀 얘기 하듯이 목소리를 낮추시며,'자식 키울 때는 바빠서 다른 걸 생각 못했는데 이 나이 되니 시간이 많아져서' 하셨다. 앞대화 분위기상 '적적하다'가 이어지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으핫‘소리를 부르는 근황으로 문장을 완성하신다.
"그래서 매일 쿠키 굽느라 바빠. 웹툰에 빠져서!"
으아으앗. 쿠키라니. 실제 쿠키였어도 귀여우신데 웹툰 쿠키라니.열 살 넘게 젊게 보이시던 동안 비결은 '무료 충전용 쿠키' 굽기였구나! 노후준비로 해야 할 일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틈틈 쿠키 구워두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가가 그림책을 살피다 까르르 뒤로 넘어간다. 가게의 모든(키링 인형, 스티커 속 캐릭터, 동화책 표지의 등장인물 그리고 나의) 눈동자가 아이의 웃음에 함께 떼굴거린다. 뭐가 재밌냐는 엄마에게 아가가 웃음 비집고 나오는 입을 틀어막으며 겨우 말한다.
"으하하. ㅂ이랑 ㅂ이랑 합쳤어요. 진짜 웃겨요. 푸하하."
(가시고 테이블 정리를 하며 보니 아가를 배꼽 잡게 했던 책은 <아빠, 나한테 물어봐>였다.)
감정이 실린 된소리도 그저 웃긴 쌍자음으로 만드는 힘을 아가에게 배웠다. 식빵 언니 생각나는 된소리를 사용하는 고객님 등장하셔도 화보다 먼저 망상 농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