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공기를 바꾸려고 문을 열어두면 예의 바른 고객님들께서 정중하게 닫아주신다. 열린 문으로 고개를 꾸벅이며 입장하셔서 나가실 때'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많이 파세요' 등의 인사를 남기시며 문을 살포시 닫으신다. 가끔 '문 닫을까요?'물어주시는 분도.
"아아아아. 잠깐 열어두려고요. 감사합니다!"
귀여운 예의범절 덕이라면 닫히는 문도 행복하다.
입가에 번진 불닭볶음 양념(친구 소스까지 나누어 받아 양념 소스 1.5개를 넣는다고 했다.)은 신경 안 쓰면서도 바닥의 쓰레기를 정리하는 친구, 학원 시간이 빠듯하다면서도 보드게임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친구, 지나가는 길에 가게 출입문 앞에서팔하트를 그리고 섰다 내가 고개를 들면 손을 흔드는 친구, 가게가 북적이면 음료를 들고 눈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다 살짝 목례하고 퇴장하는 친구, 매일 살던 동네인데 군대 있다 나오니 왜 신기하냐며 이게(초코 버블티) 진짜 먹고 싶었다는 첫 휴가 나온 친구. 아아. 잠시만 방심하면 큐피드 화살처럼 '훅'하고 귀여운 행복이심장을 파고든다.
흰 후드티를 자주 입고 웃으면 반달눈이 되는중학교 남학생. 말수가 많지 않지만 이 친구만의 필살기가 있다. 딱 한마디.
"앞 주문 음료 수가 많아 기다리셨어요.죄송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아아아. 음료를 주문하고 음료를 기다리고 음료를 받아 드는 단순한활동에서'행복'을발견하다니. 포춘 쿠키에서 '하트와 물음표'만 그려진 종이를펼친 기분이다. 생각이 깊어진다. 주문과 제조와 전달, 그 잠시에 행복을 느끼시게 하려면 나는 무엇을 더 해야 할까.
야망이고 작전이고 다 잊은 채, 나는점점 더 고객님들 귀여움에 빠져든다.
"엄마, 오늘 학원 선생님께서 안 나오셔서 자습하고 왔어."
"행복한 시간이었겠다!"
"엄마, 나 오늘 친구가 약속에 늦어서 혼자 투썸에서 사십 분이나 기다렸어."
"행복한 시간이었네!"
빠져든 문장이 멋대로 튀어나와 주관식 문제였으면 0점 처리될 대화를 하고 만다. 중독 증상이 심각하다.
여름이면 큼직한 학교 가방에 문법, 독해, 듣기, 단어까지 아우르는 책더미 가득 들어간 영어가방까지 짊어진 아가가 처마 끝 고드름 녹듯 땀을 뻘뻘 흘리며 입장하곤 한다. 초코 버블티를 주문하며 '얼음 많이'를 두 번 세 번 강조한다. 한 모금 크게 쭉 들이켜면 바람 빠진 튜브에 공기 채운 듯 꾸러기 미소가 부풀어 오른다.
"아 이제야 살겠네. 행복하다 진짜."
이제야 살겠어서 행복하다는 그 귀여운 문장이 행복해서 산다. 이 작은 가게에서.
다른 카페에 앉아 행복의 '아아'가 터지기도 한다. 일주일 피로를 풀어주는 말차 휘낭시에를 먹기 위해 들르는 곳이 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바삭하게 구워진 말차 휘낭시에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옆자리에서 익숙한 단어들이 들린다.
"아 버블티 좋아하세요?"
"네 이사 와서는 공차만 가봤어요."
"여기서 조금만 가면 버블티 가게 있어요. OOOO, 가보세요."
아아. 시현이와 준우가 학교 급식실에서 밥 먹을 때 종종 가게 이름이 들린다더니 이 기분이었구나.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 앞 두 글자가 보일 때의 기분! 나 맞나? 우리 가게 얘기 맞나? 맞네 맞네! 아아아아. 혹시나 알아보실까 부끄러워 고개를 핸드폰으로 더 깊이 파묻었다.
'행복' 하면 중 1 때부터 가끔 들러 근황을 들려주는 예쁜 아가도 떠오른다. 이제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있어 예전 수다거리였던 학교 밴드 이야기, 남자 친구 이야기보다는 공부 이야기가 많아졌다. 사람이 많으면 블랙펄과 화이트펄을 추가한 아이스티를 마시며 문제를 풀거나 핸드폰을 보다 가곤 한다. 하루는 매장이 조용하자 카운터에 다가와 환하게 웃었다.
"흔치 않은 둘만의 시간이잖아요. 너무 행복해요."
고객님께 이런 고백을 듣는 사장. 작전은커녕 매일 귀여운 유혹에 쓰러지는 사장. 패배여서 더 행복한 나의 일.
작은 가게로의 출근이 버거운 나이가 되면 이 귀여운 친구들을 이 귀여운 행복을 어디에서 만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