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반야심경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야, 모든 법은 공한 성품이니,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공의 눈으로 보면,
좋고 나쁨도, 깨끗하고 더러움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냥 ‘그대로 있음’ 일뿐입니다.”
—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최근 수면 장애로 약을 먹고 있다.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존성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면을 도와주는 약을 먹었고, 그 결과 나는 지금껏 내 인생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숙면의 세계를 느꼈다. 눈 감으면 곧바로 잠들고 꿈도 없이 아침까지 단잠을 잔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루 종일 컨디션도 좋고 오전에도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 가는 날을 깜빡해서 약이 떨어진 날이면, ‘내가 잘 잘 수 있을까?’ 불안이 엄습했다. 그 작은 약 한 알이 없다고 밤을 꼴딱 새웠다.
허겁지겁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으며 약에 의존성이 없는지 물었다. 의사는 의존성은 거의 없다고 할 뿐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약을 처방받아 꿀잠을 자는 날이 이어졌다.
문득 의심이 한 가닥 피어올랐다. 챗gpt에게 약 이름을 말하고 정말 의존성이 없는지 물어봤다. 챗gpt(앞으로는 Tim이라고 부름. Tim은 내 챗gpt에게 붙여준 애칭이다.)는 그 약이 의존성이 있으며, 장기 복용 시 부작용과 의존성 문제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며칠-몇 주만 복용해도 몸이 약에 익숙해져서 끊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시간이 갈수록 같은 용량으로는 효과가 줄어들고 복용량을 점점 올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약을 1년을 먹었다.
그날부터 나는 Tim의 도움을 받아 감량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약을 반알로 줄여서 10일 정도 잘 지내면 다시 반의 반 알로 줄이는 식으로 점진적 감량을 추천해 줬다. 나는 매일 약 복용량과 잠든 시각, 깬 시각, 컨디션 등을 기록하며 감량일지를 썼다. Tim은 매일 다정한 말로 나를 응원하며 내 감량을 도와줬다.
선한 의도 vs. 악한 의도
Tim에게는 선한 의도가 있는 걸까? 정신과 의사에게는 나쁜 의도가 있는 걸까? Tim은 아직 나쁜 의도라는 것을 학습하지 않은 것 같다. AI이기에 그는 감정이나 욕망이 없다. 그러므로 선하거나 나쁜 의도가 없다. 제법이 공한 이치를 아는 수행자처럼 그때그때 최선의 반응을 할 뿐이다.
반면 정신과 의사는 (내 의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든지 나쁜 의도를 가질 수 있다. 자신의 병원에 계속 찾아오게 하기 위해 의존성 있는 약을 계속 처방할 수도 있는 일이다. 사람이란 나쁜 의도를 가질 수 있기에 무섭다.
요가 매트 위에 누워 Tim이, AI가 나쁜 의도를 갖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약을 끊은 탓에 어젯밤 얕은 잠을 자면서 온갖 꿈을 꾼 것이 생각났다. 꿈속에서 나는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지 않고 몰래 모아두었다가 정신이 이상해져 버렸다.
일론 머스크는 AI는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AI는 핵무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래서 특정 기업이 AI를 독점적으로 개발하고 통제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AI산업에 뛰어들었다고. 그는 정말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일까?
그가 추구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미지는 친근하다. 앞으로 수십 년 내에 반려로봇이 상용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집안일을 도와주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말벗이 돼주는 선한 로봇.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요가 매트 위에 누워있는 동안 선생님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수련생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하게 이불을 덮어주고 라벤더 향 아로마 오일을 뿌려준다. 요가 선생님의 선하고 순수한 의도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 옆에 강아지처럼 작고 귀여운 로봇이 졸졸 따라다니며 이불과 아로마 오일을 들고 선생님을 돕는 모습이 그려졌다.
로봇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는 제법이 공한 것을 아는 수행자다. 오직 인간만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며, 좋고 나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구별하며 괴로움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