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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Oct 13. 2021

그래서 결론은, Histoire de l'art

사실은 건축사이긴 하지만

브런치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프랑스, 불어불문학에 이은 프로필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프랑스에서 새로운 전공을 배우게 된 계기를 써보려 한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하게,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20년이 넘는 당신(moi)의 생애를 설명하는 건데? 혹자는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빼놓고서는 프랑스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룩해 놓은 10년의 직장 생활과 그 결과로 모은 돈과 자산, 안정적 생활, 사회적 지위와 맞바꾼 나의 이 우회도로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보다 가진 게 없어 자책하며 자신의 인생을 초라하다고 느낄 당신(vous)에게 지름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신대륙을 발견하다 

프랑스가 좋아서 불어불문학과에 갔지만 나에게 불문학은 프랑스를 가기 위한 기본 토대였다. 이 불문학을 기반으로 한국보다 프랑스가 앞서다고 여겨지는 학문들, 즉 유학까지 가서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학문을 공부하고 싶었다. (사실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프랑스 대학원은 학부와 전공이 같아야지 입학할 수 있다. 물론 싸데펑이다)  불문학, 불어학 외에 패션, 미술, 제빵, 향수, 건축 등등 (+ 가서 보니 의외로 많았던 음악 등)의 실용 학문 또는 예술 분야로 유학을 많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불문학으로는 더 공부하고 싶지 않은 데다 실용 학문보다는 순수 학문을 더 좋아했던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 2학년 2학기 때 '현대 유럽의 사회와 문화'라는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은 나의 인생을 바꾼 수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내가 평생 사랑할 분야를 만났기 때문인데 그건 바로 유럽연합의 문화정책이었다. 유럽연합의 문화정책, 그리고 유럽연합이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한 프랑스의 영향은 그동안 내가 왜 프랑스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는 핵심 열쇠였다. 마침 이 수업을 듣기 전 2학년 여름방학 때, 첫 과외비를 모아 유럽 자동차 여행을 떠났었는데, 그전에는 가보지 못했던 명소 곳곳을 여행하며 숨겨진 문화유산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샹보르 성(Château de Chambord)을 갔을 때였나. 프랑스에서 문화유산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문득 프랑스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도 많고, 문화유산이 참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인식했다. 그 순간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는지(사실 14년 전인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수업 시간에 배운 프랑스와 유럽연합의 다양한 문화유산 정책이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잘 보존된 문화유산이 결국 관광으로 직결이 되고, 나라의 브랜드 이미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 모든 게 문화정책이라는 분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제 신대륙에 내려야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신대륙에 닻을 내리기 위한 기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방황은 먼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자리가 잘 잡혔지만 내가 졸업하고 대학원에 갈 때쯤 문화예술경영이라는 분야가 새롭게 뜨기 시작했었다. 그나마 내가 하고 싶은 분야와 비슷한 게 '문화예술'경영인 것 같았는데, 문화예술'경영'은 너무 경영 느낌이 났다. '현대 유럽의 사회와 문화'라는 수업은 유럽지역학 연계전공 수업 중 하나였고, 그래서 연계전공을 한 유럽지역학을 살려볼까 했는데 지역학도 아닌 것 같았다. 파리에서 프랑스사를 전공한 교수님과 면담도 해보았지만 집에 돈이 많냐는 질문을 받았다.(나쁜 뜻으로 물어보신 건 전혀 아니었다) 다시 프랑스로 눈을 돌려보았다. 프랑스에서도 마땅한 전공이 없어 보였다. 유럽학은 국제학에 가깝고, 박물관학은 박물관 쪽이고, 문화 경영이나 매개도 상동의 이유로 아니고... 아 나 진짜 어디로 가야 하지?! 공부할 수는 있을까?


공부는 공부대로 고민하는 와중에 나는 예술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떻게 문화예술정책이 실행되는지 현장에서 직접 배울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벤치마킹을 하는 문화예술의 나라이다. 문화예술에 투자를 많이 하고 문화유산을 잘 보존한다. 연중 내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열린다. 근데 왜? 프랑스는 문화예술에 투자를 많이 할까. 왜 프랑스에서는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왜 프랑스에서는 1년 내내 문화예술을 즐길까? 문화예술은 왜, 그리고 어떻게 프랑스인들의 삶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신대륙에 도착한 것이다. 




Rome ne s'est pas faite en un jour.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나의 답은 인문학밖에 없었다. Rome ne s'est pas faite en un jour.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프랑스는 하루아침에 문화예술의 나라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문화유산 보존에서만큼은 못해도 프랑스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의식의 변화를 공부하기로 했다. 이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미술사학과라고 부르는 예술사학과(Histoire de l'art)라 판단했고, 먼 길을 돌아온 나는 마침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https://www.chambord.org/fr/ 문화유산 보존에 눈을 뜨게 해 준 샹보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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