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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Mar 23. 2020

와튼 MBA를 졸업하다. 백수로. <2>

목표지향주의자의 함정

가을비가 내리던 날, 내가 용기를 내어 연락했던 동문 할아버지가 보낸 또 다른 동문을 만났다. 이제 막 40대쯤에 접어들었을, 키가 큰 아시안 아메리칸(미국에서 나고 자란 동양인)이었다. 갓 옮긴 회사의 사장님(내가 연락했던 동문 할아버지)의 부탁에 생판 모르는 한국 여자와 만나는 게 재미도 없고 피곤했을 텐데, 친절한 그는 내색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떤 인더스트리나 롤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직무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개인적으로 열정을 느끼는 분야는 어떤 것들인지  나에게 질문했다. 졸업한 지 10년이 좀 넘어서 다양한 분야에 동문들이 정착해 있으니 재무부터 이벤트 플래닝까지, 원한다면 어디든 다리를 놔주겠다 했다.


친절한 이야기에 솔직히 당황했다. MBA에 진학할 때 에세이에도, 수많은 풀타임 면접에서도, 수없이 많은 버전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해왔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서 "정답"을 이야기하고 이유를 만들어내는 연습은 지겹도록 해 왔었다 - 자산운용사 면접장에서는 리서치/분석이 내 적성에 얼마나 잘 맞는지, 인터넷 네트워크 회사에 가면 빠르게 변화하는 연결성의 시대가 얼마나 날 가슴 뛰게 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정답'이 없는 공백의 상황이 되자, 내 머릿속도 백지장이 되었다. 그날 내가 뭐라고 그 동문에게 둘러댔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뭐라고 대충 얼버무렸겠지.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가을밤의 찬 공기 속에서 느꼈던 헛헛함은 기억난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틀렸다는 걸 발견했는데, 앞으로 가야 할 방향조차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암흑 속에 선 기분이었다.




목표와 꿈은 다르다는 걸 몰랐다. 내가 더 막막했던 이유는 내가 유난히 목표지향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겐 항상 목표가 있었고, 그것을 성취하는 데서 보람을 느꼈다. 성적에 예민한 엄마에게 혼나지 않고 싶다는 목표를 위해서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는 남들 다 가는 대학이라는 데를 가긴 해야 하니까, 그리고 기왕 가는 거 좋은 데 가는 게 좋으니까 공부했다. 대학에 와서 잠시 2년간 목표 없이 살아본 적이 있긴 했는데,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날 보다 못한 엄마의 권고(라고 쓰고 강요라고 읽는다)에 공인회계사 준비를 시작했다. 합격 후 무사히 법인까지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일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서 탈출하기 위해 MBA 유학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고 운좋게 와튼까지 왔다. 시험 공부는, 자격증 준비는, 회사 일은 어디까지나 해야 되니까 하는 책임이었고, 주어진 목표는 성실하게, 나름대로 잘 완수해 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운빨'이 통하지 않았다. 도리어, 대신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라고 물어왔다. 남들은 10대 때, 늦어도 대학 때는 하는 이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니. 생각해 보니 그때까지 내 삶의 목표들은 모두 남이 정해줬거나 영향을 미친 것들이었다. 그제야 돌아보니 이미 위험신호가 오래전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회계법인 일이 재미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무작정 유학을 목표로 잡는 게 아니라 '대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최소한 유학 와서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렇게 넌더리 나게 싫어했던 파이낸스 쪽 자리를 알아보진 말았어야 했다. 멋진 투자은행 인턴십은 '정말 재무는 나랑 안 맞는구나'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열정 없이 이뤄온 성취는, 모래밭 위에 지어진 성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열정을 일로 연결하는 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연예인이나 화가처럼 창의력과 예술가적 끼가 넘치는 사람들. 특별한 적성이 없는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일이란 생계유지의 수단에 지나지 않기에 거기에서 재미를 발견할 수는 없다고 굳게 믿었다. 후배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탄하면, "일이 재미있으면 그게 일이냐?"라며, "일이라는 게 오래 하면 숙련되고, 숙련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러면 없던 열정도 생기는 거" 라며 단칼에 핀잔을 줬다. 하지만 예술가가 아니어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내가 치를 떨던 통계가 너무나 재미있다며 술자리에서 몇 시간씩 '신비롭고 아름다운 통계의 세계'에 대해 떠들더니 결국 석사도 하고 지금은 게임 통계 분석 회사를 차린 친구가 있다. 회사에 와서 함께 일한 상사 중에도 있었다. 점심 먹으면서도 가상의 회계처리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하는 사람들. '아니, 내가 금융감독원도 아닌데 저런 복잡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가상의 회계처리를 나에게 왜 물어보는 거야? 재미있나?' 그저 신기하게만 보였다.


물론 취업에 열정이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봤다. 회계사를 준비할 때는 수험준비에 쓸 시간도 빠듯한데,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복잡한 이슈를 놓고 장시간 토론을 펼치는 수험생들도 봤다. ("합격"이라는 목표만을 두고 볼 때는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운 좋게 어쩌다 시작한 일이지만 열정을 발견하는 사람들도 봤다. 또, 내가 꿈에 그리던 회사에, 이쪽 업계에는 1도 관심 없는 (하지만 스펙은 나보다 월등한) 친구가 합격하고 나는 보기 좋게 떨어지는 경험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 친구는 얄밉게 별로 좋아하지조차 않는다). 내가 만일 미국에 오지 않았고, 마침 졸업 시기와 최악의 금융위기가 맞물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아마도 재무와 관련된 포지션을 찾았을 거고, 또 진절머리를 내며 일했을 것이다. '일이란 원래 재미없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열정이 차이를 내는 지점은, 취업의 순간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순간에 빛을 발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용기와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한 친구는 남과는 다른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었다. 결국 바라던 대로 외교관이 되었는데, 일이 그 친구를 따라다니는 건지 스스로 일을 쫓아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 야근을 제일 많이 한다! 험지 근무에, 강도 높은 근무시간에, 그 외에도 나라면 이미 포기했을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일에서 보람을 찾는 걸 보면서 열정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특정 스포츠를 너무 좋아해서 공인회계사가 된 사람도 봤다. 전문직의 안정이나 주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낙후된 국내 프로리그의 발전(특히 비즈니스/재무적 운영 면에서)을 견인하겠다는 열정 때문이었다. 와튼에서 만난 사람들도 많다. 특히 우리 동기 중에는 정말 똑똑한데도 불구하고 최악의 시기에 졸업을 하다 보니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로, 그마저도 불리한 조건으로 간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가장 빛나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빛나는 열정을 가졌던 이들이다. 어려움 없는 직업은 없기에, 열정은 누구에게든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준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야말로 오히려 '열정의 부재'라는 늪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들은 성취의 기쁨을 알기에 목표를 위해 성실하게 달리고 목표가 없는 상황을 불안해한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2년간 공인회계사 준비를 위해 핸드폰도 없애고 독서실에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던 시간이, 대학 1, 2학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던 불확실성의 시간보다 마음이 훨씬 편했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몇 번 시도했지만, 익숙지 않은 상황이 막막함이 영 불편했다. "변호사가 돼라, 컨설턴트가 돼라"와 같은 목표는 남이 정해줄 수 있지만 꿈이나 열정은 나 스스로가 발견해야 하는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주어진 목표는 편하지만, 익숙해져 버리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가려버린다. 본인이 목표지향적, 성취지향적인 사람이라면 스스로 달리기에 중독되진 않았는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나에게는 무엇이 중요하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무엇을 하고 싶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꼭 어떠한 직업 - 특히 '사'자로 끝나는-의 형태로 답을 주지는 않을 수 있다. 당신은 정의(justice)나 연결성(connectivity)과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다. 혹은 다른 무엇보다 게임업일 수도 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흥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보니 숫자가 아닌,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이었다 (not a  number-person, but a people-person).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고 연결해 해는 일이, 상장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일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대학생이라면 인턴이 좋은 기회가 된다. 이력서에 한 줄 넣을 목적으로 건성으로 하지 말고, 내가 어떤 포인트에서 재미와 기쁨을 느끼는지를 찾아야 한다. 내게는 원점으로 돌아가서 나를 들여다보는 이 과정이 무척 힘들었다. 스스로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시라 - 나처럼 와튼까지 가서 백수로 졸업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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