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 여행이 다시 되기를 소망하며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해 한 번도 겪지 못한 일들을 겪어내고 있다. 불과 1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일상에서 사람들을 마주 볼 때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은 생각하기 어려워서 마스크를 벗은 본 얼굴은 어떤지 눈, 코, 입의 조화는 어떤지 얼핏 본 맨 얼굴의 상대방에게 낯섦을 느끼곤 했다. 일상이 이러니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안에서 거의 모든 시간이 소비되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용기와 염려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라는 일상의 영역에 있던 글자는 이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글자가 되어 추억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게 되었다.
대중 매체에서 보이던 숱한 여행지와 여행 프로그램,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왔던 여행 방송들은 이제 감추어진 채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는 일상 공간으로 대체되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삶의 낙으로 생각했던 나에겐 안타까운 변화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떠나고 싶다는 마음 자체를 삭제된 기분이 어떤지 잘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시간이 있어도 갈 수 없는 장막에 가려진 세상 밖에 대한 갈망은 지나온 여행을 들춰보면서 희석시킬 수밖에 없었다. 작년부터 멈추어진 여행의 시곗바늘을 언제 돌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루빨리 예전으로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던 진짜 일상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아내와 나는 결혼 이후 여행 계획을 쭉 세워놓았다. 처음에는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아내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재미를 가졌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눈을 돌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후 1년이 안 되었을 때는 가까운 홍콩, 마카오를 갔었고 그 이후 오키나와, 중국 동부, 일본 큐슈, 필리핀 등 우리나라에서 멀지 않은 지역들을 여행하면서 갓난아기였던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아이도 서서히 크기 시작했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여행 스타일은 무조건 자유여행으므로 우리가 비행기, 숙소, 현지 식당, 현지 이동수단, 관광지 예약 등 모든 것을 준비해서 가야만 했다. 장거리 여행 계획을 짤 때 여행지와 전체적인 이동 루트와 먹어볼 음식과 구경할 곳 등은 내가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정하고 그 세세한 곳을 아내가 챙겨서 만들어 갔다. 그래서 각종 예약은 아내 몫이 되었고, 여행 가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내 몫으로 나뉘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 가기 전에 소아과에 가서 소화제, 해열제 등을 처방받고 유의사항을 듣고 준비했다. 아이 짐을 챙길 때는 최대한 현지에서 세탁을 할 예정이었기에 옷은 많이 챙기지 않았다. 사실 옷 때문에 짐의 부피가 늘어나기에 옷을 적당히 3벌 정도만 챙겨도 2~3주 여행을 다니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지난 터키와 그리스에서 어머니와 함께 했던 여행과 그다음에 나와 아내, 아이 셋이서 떠났던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여행은 생각지 못한 지출이 생기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순조롭고 서로의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또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여 떠났는데 영어를 좋아하는 아내에겐 1순위로 가고 싶었던 나라가 미국, 캐나다였다.
미국과 캐나다는 나에겐 익숙하긴 하지만 그렇게 가고 싶다고 느낀 나라들은 아니었다. 할리우드와 뉴욕, LA 등 세계 대중 매체를 지배하고 있는 장소들이지만 그것보다는 문화와 역사가 오랜 시간 쌓아 올려진 유럽이나 아시아 대륙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물론 북미 대륙도 그들의 역사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적들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본래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갈 계획이었지만 아내의 뜻에 따라 변경해서 미국, 캐나다를 가게 되었고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여행과 하늘길이 막힌 현재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해외 여행지가 되었다.
미국은 대개 미 서부와 동부를 나뉘어서 여행하지만 우리의 여행 리스트에는 많은 나라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1번만 방문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곳을 집어넣었다. LA에서 시작해서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니언을 거쳐 캐나다 토론토를 간 다음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둘러보고 그곳에서 국경을 넘어와 미국 워싱턴, 뉴욕, 보스턴을 방문하는 코스로 정했다. 그리고 뉴욕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니 16일 정도의 여행 일이 잡혔다. 미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한 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여서 이번 여행은 4명이 함께 움직였다. 역시 각자의 역할 아래 추억 가득한 여행이 되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인 여행이었다. 우리가 북미대륙에 있을 때 대한민국에는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세계가 이렇게 되리라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고, 미국 안에서도 그에 대한 소식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이상해 보이는 일상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하던 때였다.
장거리 여행을 가기 전에 단둘이 아이와 여행을 떠났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짧지만 둘만의 추억을 가득 만들었던 여행이 있었다. 명절 연휴를 틈타 하늘 높았던 가을에 연해주의 바람을 맞으며 아이와 둘이서 아르바트 거리를 걷고 수블라키를 먹고 아늑한 게스트하우스의 방에서 함께 잠을 청했던 기억을 남겨본다. 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아이를 데리고 나도 처음 가보는 러시아를 단둘이 가는 것이 내 딴에는 준비된 용기가 필요했는데 이 또한 행복한 기억을 잔뜩 만들어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전한다.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그 너머 거대한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삶의 궤적을 남겨보는 기쁨이 다시 느껴지는 때가 어서 오길 바란다. 잠시 멈추어진 여행의 시계가 다시 흘러가는 때가 오길 빌며 아이와 다시 긴 여행을 떠난 기록을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