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건축가를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연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설계하고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를 하다 보니 몸에서도 무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이 가끔 파르르 떨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머리가 무겁고 아픈 날도 있었다. 그래도 타고난 체력이 있다고 자부한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새벽잠을 자면서 설계 수정을 하거나 아니면 관련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건축 소개 프로그램 시청은 공부도 되지만 나에겐 쉼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왠지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을 계속 말해주는 듯했고 정답이 없는 전원주택의 세계에서 각자의 정답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았다.
계약이 완료되고 다음 주에 부동산에서 소개해 준 건축사를 부동산 중개소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평가받는 마음이라 약간 설레고 떨리기도 했다. 건축사와 인사를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패드를 가지고 집을 지을 장소와 건축 방법, 외부 모습, 내부 설계 등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나가고 내가 궁금한 것도 질문했다. 지금까지 준비한 것에 수정이 불가피한 것은 예산과 공법이었다. 예산이 무엇보다 부족해 보였다. 2020년에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가 멈칫하면서 각종 공사가 멈추거나 지연되어 자재 가격이 오르지 않았는데 2021년이 되어서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전 세계에서 공사를 많이 벌리다 보니 자재 가격이 급속도로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모르지 않았고 나름 준비를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특히 경제성을 따져서 경량 철골조로 집을 지으려던 생각도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리고 늘어날 대출금 생각에 아득해졌다.
경량 철골조는 우리나라에서 주택으로는 많이 짓지 않는 공법이지만 공사 기간이 짧고 시공비의 경제성으로 인해 선택했고 그에 따라 단열, 자재 공부도 많이 하고 정리했지만 철 가격이 두 배 이상 상승하면서 오히려 철근 콘크리트와 가격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면 오히려 경량 철골조로 하는 것이 손해이고 철근 콘크리트로 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튼튼하게 지을 수 있었다. 콘크리트를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고 기밀성에서도 뛰어나 경량 철골조보다 하자가 적은 공법이었다. 그렇게 간과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던 첫 미팅이 끝났다. 1시간 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차후에 또 사무소에 방문해서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외삼촌에게 전화하면서 시공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계는 설계대로 가지만 공법이 바뀌는 일이라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해서 상담한 내용을 전달했다. 다른 벽을 만났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확인할 수 있어서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나와 외삼촌이 직접 연결된 건축사는 없었기에 인터넷으로 찾아가면서 건축사사무소를 찾아보고 지인에게도 연락해서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두 건축가를 정해서 또 만나보기로 했다. 시작하기도 했고 하루빨리 전원주택으로 들어가고 싶은 어머니를 생각하니 하루하루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고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자책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나간 건 지나간 것이고 앞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중요했다.
설계안 포트폴리오
두 번째 만난 건축사는 외삼촌의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전문가로 역시 내가 사는 도시에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에 만났던 건축사와의 미팅에서 설계의 단순성과 비용 문제를 들은 터라 어떨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여러 건축사를 만나서 상담받는 것이 좋다는 것은 익히 들었기에 우리가 준비한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기로 했다. 나 혼자 만났던 첫 번째와는 달리 이번에는 나와 아내, 아이 그리고 외삼촌까지 모두 가서 만나기로 했다. 건축사사무소는 처음 가보는 것이라 이것도 낯선 경험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러 단순 설계 모형이 있었고 각종 감사패가 눈에 가득 찼다. 아직 외출하고 돌아오지 않아서 우린 테이블에서 기다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정리해보았다. 이윽고 건축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첫인상은 인품이 있게 느껴졌다.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개요 설명과 함께 내가 만든 설계도를 보이며 디테일한 설명을 했다. 내가 하는 말을 경청하면서 내가 설계한 도면을 존중하고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전원주택에는 정답이 없고 의뢰인의 의도나 가지고 온 설계가 정답이라면서 동선이나 가족의 삶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획 설계를 내는 것도 그렇고 나와 외삼촌의 뜻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며 대화를 이끌었다. 빠듯한 건축비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건축이 될 수 있도록 긍정적인 고민이 될 듯했다. 시종일관 정확하면서 의뢰인의 구상을 이해하는 태도는 신뢰가 가기에 충분했다. 일단 정확한 견적이 건축사를 통해서 나와야 했기에 상담이 끝나고 오늘 중으로 내가 작성한 자료를 보내주기로 했다.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외삼촌과 괜찮은 느낌이라면서 비용은 물론 빠듯하고 많이 들어가지만 있는 한도 내에서 잘 조절하며 갈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어서 나쁘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두 번의 미팅을 잡았다. 처음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건축사와 따로 찾아본 건축사를 만나서 상담을 받기로 했다. 점심때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마시듯이 먹고 바로 외삼촌을 만나서 건축사사무소를 방문했다. 모두 내가 사는 도시에 있는 건축사사무소였기에 가서 상담받는 데에는 부담이 없었다. 이번에는 만나서 구체적으로 철근 콘크리트 공법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건축사가 설계한 다른 설계도를 보면서 설명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미팅이 끝나고 다른 건축사를 만나기 위해 차에 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에 가면서 내내 쏟아진 폭우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름 소나기 치고는 꽤 오랫동안 쏟아졌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근처 주민센터 앞에서 내리는 비와 거리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세 번째 건축사가 있는 곳은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위치한 사무소로 오래된 주택을 쓰고 있었다. 골목길에 있는 정겨운 디자인의 간판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때 추억도 간간히 생각났다. 나뭇가지로 만든 손잡이를 밀고 들어가니 조그마한 응접실이 나왔다. 조금 기다리니 바로 건축사와 만날 수 있었다. 다소 긴 백발을 멋지게 묶은 건축사였는데 굉장히 꼼꼼하게 절차와 내용을 설명해줘서 믿음이 생기는 곳이었다. 하지만 비용이 워낙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차이가 커서 많이 고민이 되었다. 현실적인 상황을 생각했을 때 도저히 마련해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이후 자재 가격이 2배로 급상승해서 그 가격에 멋진 디자인과 실용성을 생각해 책정된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고 많이 배운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세 번의 각기 다른 건축사와 상담을 끝내고 외삼촌과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하기로 했다. 순조롭게 간다면 설계 인허가가 나는 9월 말이나 10월 초에 공사가 시작되고 4개월 정도 걸리는 시공이 끝나면 2022년 1월 말에 입주가 가능할 듯했다. 어머니는 겨울에 공사가 끝나고 마무리되는 것에 대해 약간 걱정과 우려를 했다. 그건 나와 외삼촌도 생각하던 것이었는데 우리의 진행상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설계가 나오고, 허가가 나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사는 그 기간이 있기에 다소 시간차는 있더라도 잘 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설계도를 그리고, 여러 건축 영상을 보면서 공부하고, 건축사와 상담하고 하는 일들이 작년의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인생사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실감 났다.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