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복원 측량을 기다리면서 실시 설계를 위해 참고할만한 사항을 정리해서 건축가에게 파일로 보냈다. 먼저 집 전체 구조는 계획 설계대로 진행이 되고 조금 더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면 1층 포치, 2층 옥상은 합성목 데크로 마감을 한다던지 마당 조경에서 압축 블록을 사용할 곳, 현무암 판석을 놓을 곳, 자갈을 깔 곳 등을 그려 넣었다. 현관 신발장 구조, 무인 택배 함 위치, 외부 전등, 주방 구조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설계도에 그려 넣고 인테리어 사진들도 참고해서 분위기 연출에 대해 도움이 될까 싶어 넣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손을 거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내가 해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 건축가의 재량이 있는지 솔직히 감이 잘 안 생기긴 했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로 해서 참고 사항으로 하여 보냈는데 인허가를 위한 실시 설계 도면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여전히 하늘은 우중충하며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가을장마라니 낯설기만 했다. 만약 공사가 한 달 정도 빨리 시작되었더라면 비 내리는 공사판이 되었을 텐데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우리가 다 아는 청명한 가을 날씨가 오길 바랬다. 유난히 끝 여름부터 비가 많이 내려서 한여름 시작과 끝이 장마로 점철된 한 해였다. 어느덧 9월 6일 월요일이 되었다. 본래 직장 출근 때문에 외삼촌에게 부탁하고 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아침 8시 30분으로 잡혀서 다행히 지각을 내고 참관할 수 있었다. 다들 바삐 움직이는 한 주의 시작 속에서 모처럼 직장으로 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차를 돌려 가는 기분이란 왠지 모를 설렘까지 가져왔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다 보니 차가 밀리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왔더니 이미 국토정보공사에서 3명의 직원이 나와서 측량 준비를 끝내 놓고 있었고 외삼촌도 와 있었다. 오는 도중에 건축사와 통화했는데 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내가 구입한 토지는 이미 LH 한국주택토지공사에서 분할해서 판매한 전원주택 단지였기 때문에 이웃이 침범하지 않는 이상 별다른 문제가 없는 토지였다. 경계복원측량은 말 그대로 경계를 복원하는 측량이다. 토지 구획이 오래된 토지이거나 경계가 불분명한 토지 등을 구매했을 을 때에 예전 토지 측량 방법대로 다시 측량해서 경계를 복원하는 건데 지적도에 나와있는 도면상의 토지 구획과 실제 토지 구획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그 측량을 하는 것이다.
내가 구입한 토지의 경계 복원 측량 비용은 70만 원 가까이 나왔다. 찾아보니 대부분 주택을 짓기 위해 경계 복원 측량을 할 때에는 이 정도 비용이 나오는 듯했다. 3명의 국토정보공사 직원이 측량 기계를 가지고 맞춰가면서 구획을 측량했는데 직사각형의 형태로 토지 구획이 되어 있는 토지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끝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빈 땅이라서 잡초가 무성하긴 했지만 맞춰가면서 바로 일이 진행되었다. 다행히 이웃집이 침범하거나 하는 문제는 없이 토지의 꼭짓점 끝으로 해서 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경계 너머가 있으면 일이 복잡해질 텐데 일단 그러지 않아서 걱정은 덜었다. 붉은색 말뚝을 박고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남겨놨다. 토지 주변의 모습도 동영상으로 찍어서 남겨놨다. 비용 대비해서 30분이 채 안 걸려 끝나게 된 것이 멋쩍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과정상 해야 하는 일을 하나 끝내서 후련하기도 했다.
측량이 끝나고 사인을 하자 3명의 직원은 이른 아침의 업무를 끝내고 홀가분한지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보슬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찬 비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를 그대로 맞으며 건축사, 외삼촌, 나는 토지 높이를 재고 구획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로 쪽보다는 앞쪽의 토지가 50cm 정도 높고 왼쪽과 오른쪽에도 단차가 조금 있었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때 마침 앞 집에 사는 할머니가 나와 있어서 말씀을 나누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연유도 설명하고 할머니도 본인의 사정에 대해 말씀하면서 이곳 이웃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살기 좋다고 덕담을 주었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고 인사를 한 후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신경 써준 건축사와도 인사를 나눴다.
외삼촌과 빗방울이 내려앉는 거리에서 인허가 설계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건축에 대해 불안하고 기다림이 있었지만 시간이 잘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더디지만 그래도 하나씩 해결해나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믿고 생각할 줄 알아야 했다. 아직 인허가 설계가 나온 것도 아니고, 견적이 나온 것도 아니고, 시공이 된 것도 아니어서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안 한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물컹물컹한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추석이 지나면 착공이 무사히 시작되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