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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an 24. 2024

프롤로그

마흔에 다시 태어나는 K장녀 해방일지


"어맛, 나 왜 저래~. 내 평소 표정이 저렇구나." 

 

나 혼자 사는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배우 게스트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리얼리티로 찍힌 일상의 표정이 부끄러워서다. 그동안 브라운관을 통해 얼굴이 많이 

비춰졌을 텐데 드라마의 설정된 모습과 평소 표정이 다르긴 한가 보다.

 

나도 언젠가 아이를 씻기던 중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지쳐있는 무표정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애써 눈썹을 치켜뜨고 입꼬리를 올려 교정해 보았다. 아이에게 우주와도 같은 존재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보는 심정이 어땠을지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 후 더욱 곤란한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도 내 표정을 배워 내게 애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뿔싸! 큰일이다. 

 

그렇게도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나를 너무 모른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가까운 사람의 얼굴을 내 세상이라고 알고 자라난다.

감추고 싶었던 나의 세상을 내 아이의 표정에서 발견한 나는 더 이상의 정서적 대물림은

내 대에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딩동~'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초인종 벨소리가 울렸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엄마는 오래간 만에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숨을 돌리고 서로의 안부를 나누기도 전에 여느 때와 같이

주방 찬장을 열어 여기저기 잔소리를 늘어놨다.

 

"아휴~ 반찬통 좀 착착 정리해~

화분은 안 치우고 저게 뭐니? 너는 식물 키우면 안 돼.

이 수납장은 여기 말고 저기에 두는 게 나. 내가 바꿔놨다.

환기 좀 시키라고 했지~!"

 

엄마는 평소 잔소리를 끊임없이 내뱉는다.

둘째 아기가 생후 3개월이건 돌이건 나의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다. 

집안살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엄마와 내가 생각하는 기회비용은 달랐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선으로 집안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다른 곳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건 나라는 주체가 결정한 상황이다. 평생 들어온 잔소리와 잣대는 내게 보이지 않는 사슬이 되어 매일매일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장난감과 살림들을 보는 족족 물에 젖은 솜이불 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아기를 보고 먹이고 재웠다.

 

내 안에 들어앉은 부모님의 잣대와 수많은 비난이 좀비 바이러스처럼 들러붙어 나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학대했다. 왜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한지도 몰랐다. 불편한 친가에 자주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둘째 아기'의 탄생과 '코로나'가 2020년 거의 동기인 바람에 마스크 못 쓰는 아기를 데리고 마음 편하게 밖에 나가기도 힘들었다. 엄마는 그런 내게 어쩌다가 와서는 자신과 동일 시 여기는 딸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일깨워주고 집으로 돌아가곤 하셨다.

 

 

다른 때 같았으면 화가 나지만 속으로 삯히고 넘어갔을것이다..

그런데 육아를 하며 체력과 마음이 바닥 날 데로 난 나는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라 이렇게 소리치고 말았다.

 

 "엄마, 그만 좀 해. 남의 살림을 왜 자꾸 간섭하는 거야!

엄마 집이나 잘 관리해. 환기를 시켜야 겠으면 그냥 조용히 창문을 여셔요!"

 

"너는 매번 토를 달고 '네' 하는 적이 없어. 나는 뭐 오고 싶어서 오는 줄 아니?

희연이는 이모가 아무리 혼내도 ‘네’ 한단다.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데 내가 할머니가 되면 오죽할까 싶다.

이럴 거면 우리 인연 끊자! 자식 복도 없지 나는!!"

 

"오고 싶지 않은데 왜 오는 거야? 의무는 받지 않아요.

그리고 누가 누구를 무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자식 복? 나는 다른 부모랑 비교할 줄 몰라서 여태 안 했는 줄 알아?!

그래 인연 끊어! 집에 가세요~!"

 

 

엄마는 논리 없는 언어 구조로도 자녀의 마음에 연민과 죄책감을 심어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엄마’라는 이름자체가 무기고 방패, 아니 깡패다.

손녀를 보러 오신 푸근한 할머니가 아닌 불편한 감찰자다.

 

 

엄마는 본인이 하고 싶은 아무 말을 기어코 배출했고 나는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어

엄마를 현관으로 안내했다.

 

엄마는 그 후 나의 연락을 받지 않으셨고 다소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을 때 조차

내 전화를 거부했다. 우리는 그렇게 6개월 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 더 멀어졌으니 차라리 다행이야. 내가 차마 못하고 있던 몸과 마음의 거리두기 엄마가 먼저 발 뗀 거다. 어린아이가 아닌데 아직도 조건부 유기 협박이라니.

 

“자꾸 울면 할머니 집에 갈 거야.”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 애정을 철회하겠다는 손녀에게 하는 농담같은 말도 내겐 힘든 말이다.

세상에는 ‘그냥 하는 말’이라는 천리말은 없다. 자신의 입맛대로 조종하는 그런 말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부모덕에 내가 이렇게 살아있잖아.’라고 되뇌이며 스스로를 이해시켰던 수많은 나날이 있었다. 요즘은 서른은 넘어서들 결혼하는데 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부모가 자신도 안 자란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니 오죽 힘들었을까 싶었다.

 

얇은 애정의 끈이라도 잡고 있어야, 그래야 세상에 나가 살아갈 힘이 생기니까.

그러나 그 끈이 썩은 동아줄이었고 의존적 집착의 끈이었다면 이제 그만 놓자.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서로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길이니까.

 

첫째 출산 후부터 시작된 마음치유를 위해 여러 서적을 통해 가다듬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꺼트리려는 불에 기름을 부은 엄마와의 만남 이후 나는 참 오랫동안 깊은 무의식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제야 잊어야 숨을 쉴 수 있었던 희미한 기억들까지 더욱 선명하게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똑똑똑

 

반투명 유리 너머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나먼 과거로부터 힘겹게 찾아온 어린 시절의 나였다.

누군가 왔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아이 5살의 울음에 나의 5살 기억이 소환되었다

6살, 7살 끝없이 소환되어 계속해서 내 삶을 뒤흔든 지는 오래되었다.

 

할 수 없이 문을 열었고 소녀를 마주했다.

소녀는 무기력한 표정과 몸짓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완벽해야 가치가 입증될 것 같은 압박,K장녀로서의 책임감, 존재자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결핍, 어린아이를 한 인격체로 대우할 여력이 없었던 사회분위기, 아버지는 하늘이라는 권력 안에 정당화 된 잔인한 폭력들, 자아가 다져지지 않은 땅 위에 세운 타인의

감정, 남동생에게 양보하고 나 자신의 감정은 억제하고 어른을 헤아리기를 요구 받았던 부모의 역기능, 앞으로도 계속해서 속 깊게 굴어야 할 것 같은 속 깊다는 부담스러운 칭찬. 삶의 기준은 우리 가족이 아닌 이모나 남의 가족이었던 엄마의 과도한 요구와 비교, 자신의 옛 시절과 비교하면 나 정도 는 힘든 것도 아니라는 아빠의 불행배틀

 

집에서 있던 일을 어린이도 모르게 밖에 나가 흘렸을 때 감당해야 했던 폭력들,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베갯잇에 얼굴을 파묻고 흘렸던 바다같은 눈물.

이 모든 것들을 부모님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소녀에게 모든 책임과 감정으로부터 해방되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매사 마음 졸이느라, 긴장하느라, 양손 양발을 동원해도 자꾸만 스러지는 모래성을 지키느라 고생했다고. 그리고 삶을 점검할 수 있는 마흔이란 분기점에 나를 찾아주어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은 죽음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지금 내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은 내 얼굴에 뱉는 침이 아닌 생존이다. 부모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고발이다.

나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낸다는 건 나 자신을 자세히 분석하고 정면대결할 수 있는 용기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자책, 비난, 비교를 그만두고 건강한 방식으로 성장하는 내가 되자. 목표치에 빠르게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노력하고 있는 나를 칭찬해 주자.

.

내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내 아이와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고나로 살아가기 위한 치유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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