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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Jan 28. 2024

모성애 너마저

속성반이라도 좋다. 아이가 자라기 전에 내가 급하게 자라자.

나의 아이들은 수중분만으로 태어났다.

양수 안에 헤엄치며 살던 아이는 따뜻하고 익숙한 물속에서 태어났다.

분만실의 분위기는 자궁 환경과 최대한 근접하게 만들었다. 형광등은 끄고 곳곳에 켜진 촛불로 따듯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평소 아기에게 들려주던 클래식 기타 연주도 흘러나와 집에 있는 듯한 마음을 느꼈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탯줄을 자르지 않고 산소를 공급받았고 엄마의 가슴 위에 올려져 익숙한 심장 리듬에 귀를 대고 한동안 엎드려 있었다. 캥거루 케어다. 상견례처럼 예식처럼 아빠와 아이도 캥거루 케어로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첫 만남을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야~ 나오느라 고생했어. 사랑해."


자연출산에서 캥거루 케어를 독려하는 이유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실로 가지 않고 캥거루 케어로 살을 맞대고 있는 부모와 아이와의 애착도가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좋은 점이 정말 많다.

 

나는 아이가 없을 시절에도 귀여운 생명체들과 놀아주는 일에 서툴렀다.

그런 나를 잘 알기에 아이를 소중하게 맞이할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연출산을 택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거저 오는 게 아니고 부단한 노력을 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그래도 그렇지, 이게 웬걸.

출산 후 아기가 태어나면 모성애가 자동 장착되어 핑크빛만 펼쳐질 줄 알았다.

수유할 때마다 분비되는 옥시토신 호르몬으로 도대체가 처음 겪는 우울한 이 기분.

세상 밖으로 향했던 기운을 끊임없이 내부로 향하게 만들었고 그 환경은 오로지 아이를 지키는 데만 최적화되었다. 먹이고 재우고 똥오줌을 가리고 숨은 잘 쉬고 있는 지 밤낮으로 아기의 기본 생명에 신경을 곤두 세우며 원시인이 되어버린 나는 세상과 단절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혼시절 남편과 나는 결혼 전 처럼 개인의 삶을 유지한 채 살아왔다. 그런데 타인을 위해 나의 모든 것과24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보다.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와 아이의 아름다운 사진, 엄마의 희생을 당연 시 여기고 포장한 사회적 이미지에 제대로 뒷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단순히 산후우울증이라는 딱지를 붙여 대중 공장으로 보내질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생존에 집중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된 생물학적인 나

세상과 단절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존재 자체 로서의 나



내 안에는 둘의 '나'가 싸우고 있었는데 어느 한쪽도 져서는 안 될 육아전쟁이 선포되었다. 필시 아이가 아닌 나와의 전쟁이었다.


낄끼빠빠를 모르는 '체력'은 언제나 둘의 전쟁 사이에 끼어들었다.

사고로 뼈가 부러져도 온전히 붙는 데 1,2년은 걸린다. 그런데 릴렉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뼈 나사들이 헐거운 상태로 생명이 빠져나온 뒤 재활 기간 없는 육아는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인간의 기본권이고 뭐고 없는 인간 본연의 시스템은 생각보다 야만적이었다.


24시간 쪽잠을 자는 엄마는 아기가 깨서 울면 벌떡 일어나서 30여분 간 수유를 하고

15분 정도 등을 문질러 트림을 시키고 다시 재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태에서 체력은 회복하기 힘들었고 아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2~3간에 한 번씩 깨어 먹고 다시 잤다. 이렇게 중요한 생명을 돌보는 일이 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지 의문이다. 무방비로 맞닥뜨리는 우주와도 같은 아기의 양육과정은 당혹스러움 자체였다. 

 

알랭드 보통은 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설명서와 함께 온다."

 

한번은 엄마께 질문을 했다

 

"엄마도 출산하고 이렇게 힘들었었어?"

"나는 제왕절개해서 기억이 없다. 너가 잠을 하도 안자고 유별났던 것 말고는."

"엄마도 수유할 때 정말 힘들었겠다."

"글쎄, 나는 둘다 분유로 키워서...."

"그래도 처음엔 엄마젖 먹었을 거 아니야~."

"모유가 안 나와서 거의 안했을 걸?"

"아휴~ 거짓말도 할 줄도 모르고. 백과사전 나셨어 증말."

"너는 자꾸 살갑게 대한 적이 없다는데, 애기 때 널 얼마나 이뻐했었는지 아니?"

 

 

사람 새끼도 강아지 새끼도 아기 땐 누구나 귀엽고 이쁘다.

엄마의 대답은 언제나 과거형인 것과 내 기억에 별로 없다는 게 애석할 뿐이다.

엄마는 비록 잊어버렸을 지라도 내 주변 엄마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산통은 산통대로 겪고 끝끝내 제왕절개를 한 힘듦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육아를 돕는 육아템 이라곤 거의 없던 시절 힘들었을 엄마의 마음을 공감하고자 이야기를 건넸는데 뒤 이어 할 말이 뚝 떨어졌다. 여기까지 민감성이 낮은 사고형 엄마와 민감성이 높은 감정형 딸의 궁합 이야기였다.


나의 첫 강아지 누리의 출산도 떠올랐다.

내가 정말 예뻐했던 강아진데 출산 후 약한 몸 상태로 영양섭취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잠을 못 자는 누리의 예민성은 더욱 뾰족해 졌다. 새끼 강아지들이 꼬물거리는 강아지 집 근처를 지나가기만 하면 나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까치발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최대한 멀리 뺑 돌아다니면서도 하루는 '어허, 무서운 이빨~!' 하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 땐 누리에게 무척 서운했지만 내가 출산 후 상황을 맞이하니 누리가 떠올랐다. 그때 당시 누리 사진을 보니 털도 푸석푸석하고 이목구비가 깡마르고 너무 안 돼 보였다. 새끼 강아지도 태어나느라 천지개벽이지만 밤새 혼자 출산을 감당

했던 누리도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에 천지개벽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주와도 같은 존재인 나의 우주 새끼는 내가 바라보는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살아갈 텐데 그 창이 그리 탄탄하지 못해서 어찌하나. 세상의 비바람에 나풀대는 엄마인데 하는 불안이 쓰나미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속성반이라도 좋다. 아이가 자라기 전에 내가 급하게 자라자.

아이를 위하여 산다는 말은 틀렸다. 내가 먼저 탄탄하게 살아야 아이도 산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유약해 진 틈을 타 나를 파괴하는 타인들의 입김과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상대의 비난은 상대의 것이라고 진심으로 여길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는 연습을 하자. 인간의 시스템에 ‘고통’이 기본값으로 주어져 있다면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평온의 창을 물려받지 못했다면 책육아를 통해서라도 멘토를 만나자. 임신 전부터 시작된 태교, 신체, 정신, 인지 교육 등 많은 육아책의 표지에는 이목을 끄는 카피들이 많았다. 그런데 육아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핵심 메세지는 하나였다.


'아이 자신이 온전히 느끼는 부모의 사랑과 신뢰'


이 메세지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보다 훨씬 중요했다.

부모 자신의 불안과 걱정으로 아이를 잠식 시키기 보다 사랑과 신뢰의 언어로 아이가 그 사랑을 온전히 느낀다면 아이는 반드시 자신의 때에 꽃을 피우고 자기만의 열매를 맺는다. 아이의 생명력은 대자연과 같이 대단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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